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금만사 Mar 27. 2023

세금과 내 개인 정보는?

국가는 세금을 거두기 위해 모든 것을 표준화하고 기록하려 했다. 하지만 근대 이전 국가는 맹인과 다름없었다. 국가는 개인의 재산, 토지소유, 경작면적, 거주지, 신분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세부 정보가 없었던 국가의 행정은 당연히 거칠고 자의적이었다. 


세금은 실제 수확량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것이 정확하나 국가는 이를 정확하게 파악할 능력이 부족했다. 정보 처리능력이 부족한 국가는 대신 표준수확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이 방식은 매년 평균수확, 평균강우, 평균생산이 이루어진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근대 이전 국가는 지방 엘리트나 공동체를 통해 정보처리 능력의 한계를 극복했다. 국가는 지방 엘리트를 통해 세금을 관리했고 개인에 부과되는 인두세도 공동체가 납부하는 형식을 취했다. 러시아의 악명 높은 ‘영혼세’도 농노(農奴)를 지배하는 귀족이 납부했다.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공동체가 처벌받았다. 


토지사용세와 십일조를 걷기 위해 농가를 방문하는 사람은 지방 귀족 및 성직자였다. 국가는 마을까지 침투하여 상세 내역을 기록하고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국가는 대신 과거의 납세 내역과 전체 경작 면적을 통해 특정 지방이 납부해야 할 조세 총량을 결정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국가는 징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지방 엘리트를 견제하기 어려웠다. 지방 관리는 납부세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실을 조작했다. 지방 관리는 과세대상 인구를 줄이고 경작 면적을 최소화하며 태풍 피해를 과대 포장했다. 


국가가 보는 손해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농업 이외에 어업, 임업, 사냥, 숯 가공, 의복 제작 등을 통해 부수입을 얻는다. 이러한 소득은 부지런한 지방 관리만이 알 수 있으며 국가가 과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국가는 정보처리를 위해 도식화와 표준화에 큰 노력을 기울었다. 국가의 이러한 노력은 근대국가에서 결실을 보았다. 근대국가는 도량형의 표준화, 지적도, 성씨 사용, 주민등록, 표준 언어 및 법제, 도시 설계 및 운송 체계를 만들었다. 지방 엘리트의 권력은 국가가 모든 정보를 통제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정보의 힘이 권력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한 단순화의 정점은 지적도이다. 측량에 의해 일정 비율로 만들어진 지도는 모든 토지의 소유관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지적도는 안정적인 조세 징수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우리나라도 조세 징수의 기초로 지적도를 활용했다. 8세기경 발해 시조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大野㔜)이 편찬한 역사서인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 토지를 측량해 조세율을 개정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는 양전제(良田制)를 통해 전국의 논과 밭 전결(田結) 수를 측량하며 누락된 토지를 적발하여 탈세를 행하는 토지가 없도록 점검했다. 조선의 경국대전(經國大典)은 20년마다 토지 조사를 실시하고 대장을 만들어 호조와 해당 도읍에 각각 보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대의 토지대장 같은 어린도(魚鱗圖)는 물고기 비늘같이 생긴 일정한 구역의 토지를 세분하여 기록한 지도이다. 명나라에서 유래된 이 지도는 각 토지의 자호(字號,) 번호, 지번, 면적, 세율, 소유자 성명 등을 기입하여 징세와 기록 유지를 쉽게 만든 지도이다. 실학자 정약용은 어린도를 작성하여 양전良田의 편의를 도모하자고 주장했다. 조선총독부는 수탈을 위한 토지조사사업으로 어린도를 작성했으며 이는 현재 토지주택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소득세 신고 내용은 민감한 개인정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과거 미국에서 이는 공공기록이었다. 남북전쟁 당시 북부의 소득세법은 공개 여부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신고 내용은 자연스럽게 공개됐다. 소득세는 부자만이 납부대상이었기 때문에 누가 얼마를 납부하는지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소득세 납부 내역은 당연히 출판되고 판매됐다. 지면이 제한된 신문들은 소득세 10,000달러를 기준으로 고소득자 명단을 발간했다. 미국 정부는 명단을 공개하면 질투하는 이웃이 탈세를 신고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에서 1865년 유행한 <그래서 웃긴 거야 That’s where the Laugh comes in>라는 제목의 노래는 소득 공개를 활용해서 성공한 남자의 이야기다. 노래 가사는 잘 생겼지만 빈털터리인 남자가 친구에게 빌린 귀중품을 팔아 모두 소득세로 납부한다. 고소득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면서 그는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그의 빈곤은 아내가 부자이기 때문에 해결된다 라는 풍자이다.


미 의회는 1870년 납세자 명단을 발간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다른 사람의 기록을 열람하는 것은 허용했다. 이후 소득세는 입법에 의해 대통령의 명령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후버 대통령은 이 규정을 빌미로 FBI를 통해 정적들의 소득세 기록을 기웃거렸다. 소득세 정보공개는 1924년 재개됐다. 공개 정보는 소득자의 이름, 주소, 납세액이었다. 공개된 정보는 부자들의 명단이기 때문에 납치범, 결혼 중개인, 도둑, 기부금 모집인 등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였다. 


사람들은 유명 인사의 소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개인정보공개 요청은 주로 여성이 했다. 약혼자의 소득을 알고 싶거나 이혼 위자료 청구액을 정하는데 소득 정보는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여성은 단순히 배우자가 얼마나 버는지 알고 싶어 청구했다. 기업인은 가공의 소득이 있다고 허위신고하고 일부러 세금을 납부했다. 자신의 사업이 손실이라고 하거나 소득을 낮게 신고하면 채권자가 자금을 회수할 위험이 있었기 때 문이다.


이후 미국에서는 소득 정보가 일반에 금지됐지만 다수의 정부기관은 이를 활용할 수 있었다. 다른 정부기관에서 필요 이상의 자료를 받아 남용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미국은 1976년 소득세 신고 내용을 비밀로 만들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정보 제공의 이익이 클 때만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 것이다. 


9·11 테러 이후에는 상황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소득세 정 보는 테러 조사에 필요하다고 하면 쉽게 확보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는 시대에 따라 변하여 왔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유사하게 세금과 관련하여 통계적 목적으로 가공된 정보만을 공개하고 고액 체납자와 세금 때문에 국적을 포기한 사람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


과거 국가는 농부가 얼마를 수확하는지, 상인의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수입물품의 가격이 얼마인지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는 자진신고(自進申告)라는 근사한 제도를 만들었다. 자진신고는 명예로운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 행정의 기본이다. 하지만 자진신고는 말처럼 명예롭지는 않다. 대부분의 국가는 처벌을 통해 법규 준수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세청은 납세자의 소득 및 거래에 대해 거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국가가 모든 정보를 가지고 처리할 능력이 있는 상황에서 일반 시민에게 자진 신고하도록 강요하고 잘못했다고 처벌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세청이 시스템에 의해 정확한 납세액을 산출할 수 있음에도 납세자에게 신고를 강제하고 틀렸다고 가산세를 부과하는 것은 일종의 괴롭 힘이며 권력 남용이다. 


이는 국가가 의도적으로 가산세를 징수하기 위해 시민을 괴롭힌다는 인상을 주며 국가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된다. 국가가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과거 자의적이고 권위적이라고 천대받던 부과고지(賦課告知)가 국민을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다. 국가는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즐겁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편하게 해 줄 의무가 있다. 전문사업자 아닌 개인이라면 국가는 세금을 쉽게 납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가령 과거 양도소득세는 국세청이 토지거래 내역 사본을 복사하여 입수할 때까지 거래 관련 정보가 없었다. 세법은 부동산 거래 후 2개월 이내 자진신고 하도록 하고 세금을 징수했다. 부동산거래 자료를 전산으로 즉시 입수하는 현재에도 양도소득세 납부 절차에는 변한 것이 없다. 국 세청에서 예상 세액을 계산하여 사전 통지한다면 어떨까? 


통보받은 납세자는 이를 검토하여 세금을 납부하거나 납세자만이 알고 있는 자료가 있다면 이를 추가하여 조정한 세금을 납부한다면 얼마나 편할까? 세무사도 포기한 복잡한 양도소득세라면 부동산 거래 전에 납부할 양도소득세를 미리 조회할 수 있도록 국세청이 납세 예상 금액을 제공하면 국민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다.


사업자가 아닌 개인의 종합소득세 신고도 같은 방식으로 할 수 있다. 국세청은 소득 및 거래 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자진신고를 협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국세청에서 납세자가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세금을 계산해서 알려준다면 최소한 세금을 납부하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세무사를 고용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세금을 잘 모르는 일반 시민이 홈페이지에서 신고하는 것은 너무 복잡하다. 국세청 홈 페이지에서 개인 맞춤형으로 제시된 소득 및 납세 정보를 확인하고 클릭 한 번으로 납세를 끝낼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납세자만이 알고 있는 비대칭 정보가 있을 경우 해당 내역만 입력해 신고하도록 한다면 국세청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것이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 논란도 조세 정보 차원에서 볼 수 있다. 국가는 과거 자료 부족으로 주택 임대사업에 대한 과세가 어려웠다. 전산화로 주택임대 관계를 파악한 국가는 주택 임대소득에 과세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당연히 납부해야 할 세금이나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전통이 세워진 이후에는 조세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가 임대 수입을 과세하면 결국 이 세금은 가난한 세입자에게 전가될 거라는 우려도 있었다. 


정부는 이를 피하기 위해 주택임대사업 등록제도를 만들고 과감하게 조세 특혜를 주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상황은 뒤바뀌었다. 정부가 세금 징수를 위해 장려하던 임대사업자는 부동산 투기의 주범으로 몰리었다. 


부동산 폭등의 원인은 낮은 금리와 주택공급 부족이 더 클 수 있지만, 정부는 임대사업에 대한 혜택을 대폭 축소했다. 정부의 조치는 공정할 수 있으나 앞으로 임대주택이 급격히 사라지거나 세입자가 더 높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다. 최근 국가는 전월세 신고 제도를 통해 정확한 임대소득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정보라는 칼을 가진 국가는 결국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를 과세에 활용할 것이다. 정부는 현재 전월세 신고 제도는 과세 목적이 아니라 말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항상 있어 왔던 거짓말이다.

***


19세기 이전 국가가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한 목적은 과세, 징병, 정치적 통제였다. 현대국가는 여기에 더하여 국민 개개인의 삶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국가는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한다. 토지, 인구, 소득, 직업, 가용 자원의 목록은 국가의 기본 자료이다. 국가는 확대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공공 위생, 기후, 교육, 농업, 임업, 공업, 외환, 무역, 국제수지 등에서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국가의 정보처리 능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비록 방역 목적에 한정하고 있으나 정부는 휴대폰, 신용 카드, 교통카드, CCTV, 사물 인터넷 등을 통해 사생활을 추적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기술적으로는 사회를 통제하는 빅브라더 시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보여준 개인정보 추적과 통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부정적인 미래 사회를 묘사하는 파놉티콘(Panopticon)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국가위기가 아닌 정치위기에서 정부가 개인정보를 침해한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소수가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현실에서 개인의 사생활과 정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숙제가 생긴 것이다.


프랑스 사회주의 정치인인 프르던(Pierre-Joseph Proudhon)이 한 말은 이 현상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이 말은 국가가 IT기술로 무장하기 전인 19세기 중반에 했지만 국가에 의해 디지털 관리가 가능한 현재 더 유용해 보인다.


“‘지배받는다’는 것은 감시되고, 검사당하고, 염탐되며, 규율되고, 세뇌되며, 설교받고, 명단에 기록되어 체크되며, 추정되고, 평가되고, 인구 조사받고, 명령받고 (…) 지배받는다는 것은 모든 일, 거래, 움직임이 기록 및 등록되고, 세어지고, 가격이 메겨지며, 훈계되고, 예방되며, 교정되고, 손질되고, 수정되는 것을 말한다.”


***

서스킨드(Jamie Susskind)는 《미래의 정치 Future Politics》에서 앞으로 디지털 세계에서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암울하지만 개인 사생활과 정보 보호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결론이다. 그는 디지털 기술로 복잡하여 전체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개인의 삶이 상호 검증될 것이라고 했다. 검증은 사생활이라고 생각되는 은밀한 공간까지 확대될 것이다. 검증에서 수집된 자료는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의 기억과 삶을 초월하여 남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컴퓨터에 의해 쉽게 예측 가능할 것이다. 


지금도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300개를 분석하면 배우자보다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을 예측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점수로 기록되고 점수 순위가 서열화될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검증을 당하게 될 것이며 이에 상응하는 권력을 맛보게 될 것이라 했다.



참고 문헌


맵시(Map 視), 토지주택박물관 2019.

The Sex of a Hippopotamus (Jay Starkman, Twinser Inc 2008), A Prurient Interest, page 317- 321.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The Congress shall have power, page 232

Seeing like A state (James C. Scott, Yale University 1998), The Social Engineering of Rural Settlement and Production, page 183.

Daylight Robbery (Dominic Frisby, Penguin Random House UK 2019), Data: The Taxman’s New Friend, page 187-189.

작가의 이전글 노예에 세금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