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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Mar 28. 2023

조공을 뒤집어 보면 보호비?

중국이 야만족에게 바친 역조공

악명 높은 해적 두목이 체포됐다. 해적은 사형에 처하는 중대 범죄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쁜 마음에 두목을 직접 심문했다. 그는 약탈한 재물은 돌려주기 어렵더라도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물었다. 해적은 두 눈을 부릅뜨고 왕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부끄러운 삶을 참회해야 한다면 대왕은 더욱더 참회해야 한다. 나는 세력이 없어 겨우 배 몇 척을 약탈하는 데 그쳤지만 왕은 세계를 약탈했기 때문에 그 죄가 더 크다. 배 몇 척을 빼앗은 나는 해적이라 비난하고 전 세계를 갈취한 사람은 황제라고 칭송한다.” 알렉산더는 해적 두목의 당당함에 반하여 그를 살려 주었다 한다.


고대 제국은 이웃 나라를 정복하고 직접 통치하지 않았다. 군대를 주둔하고 세금을 직접 징수할 행정 능력이 없었고 그 비용 또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대신 피정복 국가의 지도자를 통해 조공(朝貢) 받는 것을 선호했다. 조공은 일종의 국제적 후견에 대한 세금이었다. 조공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집트는 모세 시절에도 조공을 받았다. 조공의 가장 큰 문제는 흉년 등으로 조공을 납부하기 어려우면 반란(조세 체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제국은 조세를 잘 징수하기 위해 군사력 시위, 마을 소거, 정략결혼, 조세의 위탁징수(Tax farming)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조공을 바치는 왕에게 후한 답례를 주어 돈으로 매수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었다.


고대 아시리아는 군대를 동원하여 조세 반란을 진압하느라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 아시리아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처벌은 반란 민족 전체를 청산하는 일이었다. 아시리아는 반란을 자주 일으키는 민족을 흩어 서 이주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의 잊힌 10 지족이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하고 주민을 흩어 이주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란에 실패한 민족은 광산, 건설현장 등에 노예로 팔려나갔다. 반란의 문제는 사람을 흩어서 청산하면 해결할 수 있으나 앞으로 그 지역에서 조공을 바칠 사람도 없게 된다. 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용이 들더라도 정복지를 직접 관리했다. 로마는 독재 권력을 가진 총독과 군대를 파견하고 해당 지방의 군대를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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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조공을 다르게 설명한다. 중국은 황제를 신격화하는 도구로 조공을 활용했다. 중국은 천하의 중심이고 왕은 천자이다. 황제는 유교의 덕을 지닌 자비롭고 경외스러운 존재이다. 황제의 덕과 지혜를 흠모하는 이민족은 신하의 예를 갖추어 조공을 바치었고 인자한 황제는 후한 선물로 자비를 베풀었다. 황제는 우수한 중국 문화를 알리는 서적, 실크, 악기 같은 물건을 야만인에게 선물했다. 황제가 이민족에게 기대하는 최고의 조공은 기린(麒麟)과 같이 보기 힘든 구경거리였다. 황제는 기린을 백성에게 공개 전시하여 천자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기린은 멀리 있는 이민족까지 조공을 바치는 황제의 덕과 위력을 백성에게 홍보하는 도구였다.


중국은 주변 국가에서 항상 조공을 받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중국은 오히려 이민족에게 많은 조공을 바치고 평화를 샀다. 중국은 자신이 바친 이러한 뇌물을 조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국이 퍼주는 조공은 이민족에 대한 선물 또는 보상이었다. 중국은 때때로 이민족에게 무역 독점권을 주거나 방위비라는 뇌물을 주고 평화를 구입했고, 이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다른 이민족과 싸우게 했다.


조공국 중국의 참모습은 흉노와의 관계에서 잘 알 수 있다. 한나라는 흉노 묵돌선우(冒頓單于, Chanyu)와 전투에서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흉노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방어가 가장 약한 지점을 약탈하고 도주했기 때문에 골칫거리였다. 한나라가 군대를 보내 흉노를 정벌하는 것은 많은 위험이 있었다. 방어할 도시가 없는 흉노는 말을 타고 나무도 없고 물도 없는 황폐한 땅으로 사라지거나 적군을 유인했다. 


보병이 다수인 한나라는 보급 라인이 길어지면서 식량 수송이 힘들었고 날씨가 추워지면 스스로 전투력을 상실했다. 반대로 기동력을 가진 흉노는 별도의 물자 공급이 필요 없다. 흉노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황량한 초원 지대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시간, 장소를 선택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싸웠기 때문에 이기기 어려운 상대였다.


기원전 200년경 한나라 황제 유방은 흉노의 횡포를 참지 못하고 정벌 전쟁에 직접 나섰다. 생각과 달리 유방은 흉노에 대패했고 평화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평화협정의 주요 내용은 4가지였다. 첫째, 한나라는 흉노가 원하는 물자를 제공한다. 둘째, 한나라 공주를 묵돌선우에게 바친다. 셋째, 한나라는 흉노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한다. 넷째, 만리장성을 국경으로 한다. 이는 한나라에 굴욕적인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다.


다만 한나라는 흉노에게 조공을 바치더라도 조공을 받는 형식을 유지했다. 이는 재물을 마련해야 하는 백성을 달래기 위한 위선이었다. 한나라는 흉노가 먼저 충성을 서약하고 조공을 바치면 이에 대해 푸짐한 ‘선물’을 주는 방식으로 조공을 주었다. 한나라의 역조공은 재정수입의 1/3을 흉노에게 주는 엄청난 규모였다. 


당나라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만리장성도 이민족의 침공을 막을 수 없었다. 당나라는 비단 50만 필 을 위구르족에게 매년 상납했다. 서류상으로는 위구르족이 당나라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는 약소국이었으나 돈의 흐름은 그 반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목민들은 당나라를 침공하지 않는 조건으로 보호비를 받고 있었다. 이는 송나라에서도 계속됐다. 이민족들은 때로는 조공을 받는데 만족하지 않고 중국을 직접 통치하면서 더 많은 세금을 걷었다. 몽골의 원 나라와 만주족의 청나라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나라를 공포에 빠트린 흉노는 북방에 있는 하나의 유목 민족일 뿐이었다. 실크로드의 반대편에는 로마가 조공을 바치거나 용병으로 고용한 이민족들이 있었다. 페르시아는 시시안(Cissians)족에게 매년 조공을 바쳤으며 로마는 셀트(Celts)족에게 기원전 4세기 금화를 바쳤다. 로마는 훈족과 고트족에도 조공을 바쳤다. 5세기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는 흑해 주변과 중북부 유럽을 통치했다. 그는 고트족과 연합하여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엄청난 조공을 받아냈다. 로마에는 행운이었지만 아틸라는 452년 조공을 받고 로마 침공을 중단했다. 아틸라가 사망했을 때 그의 추종자들은 아틸라를 동서 로마제국을 공포에 떨게 한 지도자로 추앙했다.


페르시아 다리우스왕, 한무제, 당태종은 골치 아픈 북방 민족을 정복하려 했다.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이들은 유목민을 상대로 하는 장기 원정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재정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반대의 평가도 있다. 이들은 승리하지 못했으나 북방 세력을 약화시켜 침입이 잦아들었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이다. 평범한 황제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유목민이 원하는 대로 뇌물을 주고 침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북방 유목 민족에 조공을 바치는 유라시아의 전통은 총포의 발달로 사라지게 된다. 총과 대포가 전쟁의 기본 무기로 자리 잡으면서 전쟁에서 기병보다는 총포를 잘 사용하는 보병이 더 중요하게 됐다. 유목민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동력이 장점이었으나 총포 기술의 발전으로 전투에서 우위를 상실했다. 이후 유목민들은 무서운 존재에서 그저 그런 민족으로 퇴락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목 기병들은 총포로 무장한 농민군에 땅을 빼앗기고 더 척박한 오지로 추방당했다. 퇴락한 유목민들은 오지에서 모피를 만들어 조공을 바치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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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조공은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한다. 조공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을 뿐 그 내용을 살펴보면 조공인 경우가 많다. 승자는 폭력에 의한 조공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패자가 빚을 졌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부채를 지고 있다는 말을 사용하면 승자의 폭력은 사라지고 패자의 의무만 남게 된다. 조직폭력은 피해자가 보호라는 서비스를 받았기 때문에 그 비용을 납부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승전국은 패자를 죽이고 약탈하는 대신 목숨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패자가 원초적인 빚을 지고 있다 한다. 폭력적인 조공이 정당한 부채가 되면 승전국은 거리낌 없이 조공을 요구할 수 있다. 국가가 강제로 징수하는 세금 또한 이러한 변화를 거쳐 반드시 내야 하는 납세의무가 됐다.


프랑스는 1895년 마다가스카르를 침공하여 주민들을 순화시켰다. 프랑스는 이 전쟁 비용을 주민들에게 세금으로 징수했다. 프랑스는 여기에 더하여 식민지 관리에 필요한 철도, 도로, 농장 건설 자금을 징수했으며 여기에 저항하는 주민 50만 명 이상을 살해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 주민들이 프랑스에 빚을 지고 있다 주장했고, 국제사회는 프랑스를 비난하기보다 마다가스카르가 빚을 갚는 의무를 태만이 한다는 데 동조했다.


아이티(Haiti) 또한 프랑스 식민지였다. 프랑스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었다. 문제는 프랑스혁명 정신을 계승한 아이티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나폴레옹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이후 다른 제국들의 침공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티인들은 이를 모두 물리치고 1804년 정식 독립했다. 


아이티는 미주에서 미국 다음 두 번째 독립국이며 노예제도를 폐지한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었다. 프랑스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패전 이후 아이티가 프랑스에 약 180 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비용은 프랑스 군대의 침략전쟁 비용에 플랜테이션 농장의 보상비를 부풀린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프랑스는 이 빚을 갚기 전까지 금수(Embargo)를 주장했고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이 이에 동의했다. 이로 인해 아이티는 부채와 가난에 시달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됐다.


프랑스를 포함한 식민 제국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이들은 자신들이 다른 나라를 무력침공하고 조공을 받는다고 생각했을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시대적 사명에 의해 미개인을 개화하고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신성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 생각했다. 이는 제국의 특징이다. 


중국 황제는 천명에 의해 이민족을 교화시켜 문화와 인간 본성을 찾게 했다고 믿었다. 로마 또한 미개인에게 평화와 정의 그리고 문화를 전수한다고 생각했다. 소련은 자본주의의 폐해에서 노동자를 구하고 이상 사회를 전파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대동아 공영을 위해 식민 침탈을 정당화했다. 현재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인권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이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백인의 책무(Whiteman’s burden)를 지고 있다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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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의 다른 이름은 전쟁 배상금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는 독일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엄청난 규모의 배상을 원했다. 독일은 국민총생산의 3배에 달하는 배상금을 내야 하는 베르사유조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천문학적인 배상금은 전쟁으로 허약해진 독일 경제를 무너뜨리고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배상금은 이후 추가 협상을 통해 조정됐고 돈으로 독일을 굴복시키고자 하던 프랑스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조공에 대한 독일 국민의 분노로 히틀러가 등장했고 히틀러는 새로운 전쟁을 통해 잃어버린 땅과 제국을 찾고자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등 승전국은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패전국에 배상책임을 묻지 않았다. 패전국 독일과 일본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이다. 다만 이런 행운이 공짜는 아니었다. 독일과 일본에는 미군이 주둔하게 됐고 여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매입하는 나라이고 미국으로부터 지속해서 방위비 분담 요구를 받고 있다. 


이 점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인류학자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우리나라가 매입한 미국 채권은 군대 주둔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일종의 현대판 조공이라 한다. 그레이버는 조폭이 권총을 겨누고 보호비로 천만 원을 달라고(방위비 분담금) 하는 것과 돈 천만 원을 빌려 달라고(채권 구입)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면서 별차이가 없다고 한다.


참고 문헌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Ancient Egypt, page 10-11, page 12-13, The Early Republic, page 83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Ancient Egypt, page 20, The Early Republic, page 59-60

Debt (David Graeber, MelvilleHouse 2011), On the Experience of Moral Confusion, page 5-8,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How a Good Tax Goes Bad, page 393, Daylight Robbery (Dominic Frisby, Penguin Random House UK 2019), The Nation that won the war but lost the peace, page 123-125, The unofficial taxes: Debt and inflation, page 138

Sapiens (Yuval Noah Harari, HarperCollins Publishers, 2015), Imperial Visions, page 198

Against the Grain (James C. Scott, Yale University, 2017), Raiding, page 236-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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