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해방
한 번 느껴본 자유와 해방감은 사람을 해이하게도 만들지만, 사람을 백지로 만들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높은 산에 가로막혀있다가 시원하게 뻥 뚫린 고속도로처럼 말이다.
여행으로 찾은 그 감정은 하루하루 내가 버틸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시끄럽고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집 안팎에서 작은 소음에도 반응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을 사서 집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름의 건강과 양질의 수면을 위해 늘 힘들었던 밤에 침대를 벗어나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돌아다녀도 힘들 만큼 체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멀리 다녀오기는 어려웠지만, 가까운 정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들어가면 평소보다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도 변함없이 아픈 건 여전했고 예기불안이 찾아와 침대에 누울 수 없어 방바닥에서 잠을 자니 다행히도 잘 잘 수 있었다.
하지만 방바닥에 누웠을 때 전신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서 한동안 그 거울을 보기 힘들기도 했다.
많은 고민을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나아지려나 하는 생각. 그래서 헬스장을 등록하고 오전 운동을 한 뒤 오후에는 카페에 나가 헤드셋을 끼고 한 두 페이지라도 책을 읽던지 영상을 보든 게임을 하든 집에 있는 시간을 줄여보려 노력했다.
이 방법은 꽤나 효과가 있었다. 집에 구속된 것 같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벗어나기 힘들었는데 벗어나려는 시도는 나의 증상에 큰 효과를 주었다.
처음엔 한 장, 다음날엔 세장, 그 다음번엔 5장 이상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기도 힘들었던 증상이었는데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게 사무치게 기뻐서 홀로 밤 산책을 나와 펑펑 울기도 했다.
너무나도 기뻐서.
일찍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과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던 강박들을 벗어던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책이 주는 가르침에 홀로 시간을 가질 때면 마음이 붕 뜨는 듯 가벼워졌다.
졸업도 했고 나이도 점점 들어가는데 성과가 없으니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 너무 어렸다. 24살인데 인생이 끝난 듯 살고 있으니 힘들었을 수밖에…
그래서 홀로 아파했던 나를 위로하고 아직 앞길이 창창한 나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조급함을 버리고 오롯이 나 자신, 내면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 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다른 곳에 쓰던 돈들을 나에게 쓰기로 했다.
옷을 사서 나를 가꾸고, 방 청소를 하고, 여행도 다니며, 좋은 카페에 가 책도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