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닛의 12가지 생각 도구 10
'당연하지'연산자: 정신적 블록
데닛이 10번째로 제시하는 생각도구는 보다 학술적이고 나아가 철학적 논문의 타당성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어떤 철학자의 논변이 과연 일차적으로 근거가 빈약한지 아니면 충분하지 여부를 빠르게 알아보는 방법은 그 글에서 '당연하지 surely'를 찾아보는 것이다. 데닛은 자신의 경험으로는 바로 이 문구가 그 논변의 약점을 알려주는 훌륭한 경고 신호가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논문이나 논변 혹은 논쟁의 끝부분에서 저자 혹은 논자는 그러하므로 자신의 주장은 '당연히' 타당하다는 결론으로 독자나 청자를 유도한다. 그러나 데닛이 보기에 바로 이 '당연하지'의 논법이 바로 근거 없이 제시되는 이른바 자명한 진실-하지만 진실이 아닌-이 담겨있는 장소라고 본다.
데닛은 미국의 심리철학자 네드 조엘 블록 (Ned Joel Block, 1942-)의 '논문'을 논평하면서 '당연하지'의 유용한 역할을 처음 알아차렸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블록은 자기주장의 명백함을 활자상으로 강조하기 위해 이탤릭체를 썼다. (아래는 네드 블록의 사진)
"하지만 어떤 두뇌 표상이 기억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을 제어하기에 충분한 만큼 지속된다는 것은 당연히, 문화적 구성물이 아니라 바로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사실이다." 이 주장은 인간 의식이 사실상 학습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즉 타고난 습성이 아니라 인지적 미습관의 집합이어야 한다는 데닛의 이론을 논증 없이 반박하려는 것이었다.
데닛은 블록의 주장에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블록이 '당연하지'라고 말할 때는 이른바 정신적 블록(mental block: 감정적 요인으로 생기는 사고나 기억 등의 차단)을 반드시 찾아봐야 한다." 데닛의 이런 문장은 너무 전문적이고 아카데믹한 표현이라서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쉽게 설명하면 누군가 자신의 주장에 '당연하지' 혹은 '그러므로 당연히... 이러하다'라는 말을 결론으로 쓸 때 과연 그 '당연함'을 뒷받침하는 <실험의 데이터가 충분히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블록(block)이란 영어 단어는 네드 블록의 성이자 동시에 구역과 경계 혹은 정신적 차단의 의미를 지닌다. 즉 데닛은 네드 블록의 이론에는 서론과 결론 사이에 일종의 정신적 블록이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데닛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의 심리철학 논문 약 60건을 검색하여서, 그 안에서 '당연하지'라는 단어가 얼마나 사용되는지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논문에는 이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6개의 논문에서 데닛의 귀에 경보음을 울리는 '당연하지'의 단어가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주장은 도입부와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구성된다. 소위 삼단논법이 가장 대표적 예이다. 이 논법이 가장 많이 범하는 형식적 오류는 <매개념 부주연의 오류(fallacy of the undistributed middle term)>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는 난다. 잠자리도 난다. 그러므로 비행기는 잠자리이다. 과거에 군사독재 시절 가장 많이 쓴 오류가 바로 이것이다. 북한은 남한 정부를 비판한다. 당신도 남한 정부를 비판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종북인사 거나 아니면 간첩이다.
물론 반대 경우도 많다. 재벌은 부유세를 반대한다. 당신도 부유세를 반대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친재벌이거나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이다. 이런 오류를 발견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논증 안에 존재하는 정신적 블록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고의적으로 조작되거나 선택된 통계수치를 사용하여, 논증을 정당화하는 경우 일반인들은 쉽게 설득당한다.
이 정신적 블록을 발견하는 법은 데닛의 책 64장에 조목조목 잘 설명되어 있다. 하여튼 이런 문제가 학술적 논문에도 많이 발견된다는 점 더 나아가 수많은 사회적 담론 속에서도 정신적 블록이 숨겨져 있다. 특별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선동적 발언 속에는 수많은 논리적 비약과 오류가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코딩을 교육하는 것 이상으로 논술이 아니라 <논리학>을 공부하게 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