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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Jun 29. 2024

데닛의 12가지 생각 도구 9

굴드의 꼼수 세 가지: 그게아니라술, 침소봉대술, 굴드 2단계술

데닛이 반성적 사고를 권유하는 9번째 사고방식은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가 사용했던 논리적 추론 형식이었다. 굴드는 오랫동안 하버드대의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말년에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하며, 인근의 뉴욕대에서 생물학과 진화 이론을 강의하였다.


굴드의 과학적 업적인 ‘단속평형설‘은 생물이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종을 유지하다가 특정한 시기에 종분화가 집중된다는 이론으로,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계통점진설‘에 반하는 이론이다. 그리고 굴드는 진화론에서 자연선택만을 강조하며, 이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 등에 대해 반대하였다.


우선 데닛이 지적하는 굴드의 추론 방법, 즉 '그게아니라술(Rathering)'은 '그릇된 이분법(false dichotomy)' 혹은 거짓 딜레마(False dilemma: 어떠한 문제 상황에 제3의 선택지가 존재함에도 이를 묵살하고 2개 선택지만 있는 것처럼, 이른바 잘못된 흑백논리로 상대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를 사용하는 것이다.  

데닛은 굴드가 <단속평형설>을 주장하면서, '그게아니라술'을 사용한 예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대체로 변화는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점진적으로 종 전체가 바뀌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 적은 개체가 지질학적으로 찰나에 새로운 종으로 변형됨으로써 일어난다."


굴드의 이 글을 읽으면 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대부분의 진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은 점진적 변화이다. 우리 인간 종 역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변화해서 현재의 종이 되었다. 만약 짧은 시간에 종의 전형적 개체의 키가 50cm에서 1m로 증가했다고 치자. 그래봐야 100년에 일미리미터 증가한 셈이다. 진화론에서 '찰나'라는 것도 사실 세밀하게 보면 점진적이다.


데닛은 논란이 있는 다음의 가정을 예로 들어서 다시 '그게아니라술'의 맹점을 지적한다. "종교는 마르크스가 말한 바 대중의 아편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인류가 죽음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깊고도 위로가 되는 표시다." 데닛은 이 가정에 대하여 다시 반박한다. '종교가 아편이면서 동시에 위로가 되는 표시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이런 글에서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그릇된 이분법을 사냥하는 것보다 '그게아니라술'을 사냥하는 것이 더 쉽다고 조언한다.


데닛이 이어서 비판하는 굴드가 즐겨 쓰는 그게아니라술의 변종은 '침소봉대술 piling on'이라 부를 수 있다. 데닛은 굴드의 다음 글을 예로 든다. "사람들은 '모나드에서 인간에 이르는 행진(이번에도 케케묵은 단어를 썼다) 운운하며 진화가 단절 없는 계통을 따라 지속적으로 진보하는 경로를 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진실과 동떨어진 것은 없다."

데닛은 이 문장에서 특별히 진실과 동떨어진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언뜻 보기에 모나드(단세포동물)와 우리 사이에 지속적이고 단절 없는 계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런 계통은 당연히 존재한다. 다윈의 위대한 생각 보다 더 확실하게 이것을 입증하는 예는 없었다. 진화론의 핵심 명제를 굴드는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한다. 작은 사례를 크게 부풀려 전체 이론의 핵심을 가려버리는 점에서 그는 '침소봉대술'을 쓴 것이다.  


마지막으로 데닛이 지적하는 굴드의 세 번째 수법은 '굴드2단계술 Gould Twice-step'이다. 이 이름은 진화 이론가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Ludlow "Bob" Trivers, 1943-)가 발명자의 이름을 기려 붙인 것이다.


"1딘계에서는 허수아비를 만들고 이 허수아비를 '논박'한다.(이 수법은 누구나 안다) 2단계에서는-여기가 기발한데-1단계에서 채택한 증거, 즉 내가 상대방에게 부여한 견해를 실은 상대방이 견지하지 않는다는 증거에 이목을 집중시키며, 이 증거를 인용하면서 나의 공격을 상대방이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해석한다."


데닛이 예를 드는 진화론적 논쟁은 사실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너무 전문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쉬운 예를 어제 벌어진 미국 대선후보 토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토론에서 찾아보자.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강대국 미국 몰락의 원인이 <불법이민자의 증가>때문이라고 쉬지 않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것이 미국 경제를 후퇴시키는 핵심 원인이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바이든은 허수아비를 세워서 공격하는 트럼프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당장 증명할 수 없는 수치를 들며 바이든이 자신의 입장을 반대하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은 그가 늙었기 때문이라고 몰아붙였다. 굴드2단계술을 쓴 것이다. 만약 바이든이 트럼프가 내세운 허수아비를 제대로 공격했다면 2단계 수법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워싱턴의 정가가 이 정도라면 한국의 정계는 어떨까? 온갖 허수아비가 넘쳐나고 교묘한 굴드2단계술이 군중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최소한 철학계 특히 영미철학을 전공한 교수들만큼은 이런 논법의 오류를 지적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지적이 신문의 논평에 실려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철학자들의 현실 참여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아테네라는 소의 등에 붙은 쇠파리로 비유했다. 소의 게으름을 질책하는 유일한 비판가가 자신이라는 것이다. 한국 철학계는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일까? 필자부터 자성하고 싶다.  (아래는 뉴스위크지 화보에 실린 굴드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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