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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Dec 12. 2024

한무제 강의 5

태자 자리의 진정한 주인, 유체

경제의 태자 자리를 둘러싼 구중궁궐의 암투는 도저히 예측 불가의 상태로 가고 있었다. 경제의 큰아들, 태자 유영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나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왜 경제는 자신의 큰 아들을 야박하게 대했을까? 경제의 동생 양효왕 유무의 야심도 대단했다. 그러나 경제는 그를 심하게 다그치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은연자중하게 했으며, 권력의 중심에서 거리가 멀었던 유체는 어떻게 진정한 패자가 되었을까?


저자는 경제의 깊은 심기를 두태후와 양효왕은 전혀 읽지를 못하였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는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점은 효자로서 유명한 경제가 모후의 말을 따르지 않고 동생을 택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직계 혈육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 조상들이 확립한 원칙이 두 번째 이유였다. 한고조에서 한문제에 이르기까지 황제 자리 계승은 부자 계승이 아닌 적이 없었다.


세 번째는 양효왕이 평소 교만하고 전횡이 지나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왕궁을 출입할 때 자신을 천자와 동일시했다. 두태후마저 이런 행위에 분노해서 양나라 사신이 무례하다고 질책하였다. 그때 양나라 사신인 한안국이 장공주를 찾아가 울면서 반란을 진압한 양효왕의 공을 들먹이며 호소했다.


그의 읍소는 가능하면 ‘무거운 주제는 피하고 가볍고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을 건의하기로 전략을 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장공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였고, 황궁에는 양나라 사신들이 공손하지 못하다고 결론이 났다. 왕뤼친은 이를 '여우의 꼬리가 한 번 드러나면 두 번째도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어떤 사람의 의사결정 패턴이나 행동유형 패턴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행동 심리를 고대 중국의 정치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양효왕의 실책은 '원왕이 조정대신을 이끌고 두태후에게 가서 직언을 고한 사실'에 분노하여, 경제가 원로 대신들을 자객을 보내 죽여버린 것이었다. 후한을 두려워했던 한안국이 직언을 고하자 양효왕이 자신의 궁중에 피신한 자객들을 내어 놓기로 결심을 하였고, 이에 자객들은 스스로 자결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양효왕은 참회의 뜻을 전하면서 장안에 머무르게 해달라고 경제에게 탄원하나, 경제는 동생의 요구를 과감하게 거절하였고 그는 양나라로 돌아가 열병으로 죽게 된다.


이제 태자 자리를 둘러싼 암투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왕미인의 아들이자 열 번째 아들인 유체만이 유일했으며, 그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승리했다. 기원전 150년 경제는 왕미인을 황후로 봉한 다음 아들 유체의 이름을 유철로 고치고 태자로 책봉하였다. 한무제의 나이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저자는 어머니 왕미인의 권력 중심으로 지향하는 단계를 사보기(四步棋: 권력을 지향하는 행보를 네 걸음 옮기면서 두는 바둑에 비유한 한자)라는 말로 표현한다.


왕미인의 1보는 어머니 장아의 명령에 복종한 것이다. 2보는 황실의 총애를 광범위하게 얻은 것이다. 3보는 예민한 통찰력으로 장공주라는 정치적 동지를 발견한 것이다. 4보는 자신을 위하여 대대적인 홍보를 한 사실이다. 그것은 유철을 낳을 때 스스로 '태양이 배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은 스타를 만들기 위해 당사자를 비롯해 프로젝트 매니저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왕미인은 그것을 혼자 다 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행보를 하는 왕미인을 보고 경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저자는 "이건 대단히 귀중한 상징이다."라는 말로 요약이 된다고 한다. 즉 마지막 카드인 자기 아들을 숨겨놓고 네 여자들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역할을 한 장기짝은 바로 두태후였다. 저자는 두태후의 심성을 탐패준(貪覇蠢: 탐욕과 지배욕 그리고 우둔함)으로 간략하게 정의한다.

이런 두태후는 유철의 태자직 계승에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왕뤼친은 중국 특유의 집약된 한자로 그것을 요약한다. 바로 연기(延期: 미룸)이다. 경제는 태자의 책봉에 대하여 시종일관 느긋한 행보를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경제는 유철이 태자가 될 것을 미리 선택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중에 후회를 한 것은 아니었는가?


이런 물음은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한 번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무가 성장하는데, 기한이 필요하고, 겨울을 견디는데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떤 권력 엘리트들도 마키아벨리즘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환기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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