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피게티는 서문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우선 정의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다시 말해 사회란 어떻게 구조화되어야 하는가를 진술하기 위한 일군의 그럴듯한 선험적 관념 및 담론을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식으로 이 개념을 사용하겠다." 여기서 주요 개념은 사회의 구조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선험적 관념 및 담론이다. 사회와 구조화에 대하여서는 기존의 정치체제와 소유체제의 정당화와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선험적(경험, 담론의 가능조건)이란 표현은 그 체제를 설명하는 이데올로기들의 조건들을 다루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조선사회에서 왕권을 정당화하고 양반제도와 평민 그리고 노비란 계급으로 이루어진 정체체제와 그 계층에 따른 소유체제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기본적으로 유교적인 통치이념에 비롯된 것이다. 유럽절대군주국가 시대에서 [왕권신수설: 국왕의 권한은 인간이 아닌 신(神)으로부터 나온다]과 마찬가지로 중세 조선사회 역시 조선의 국왕을 인정하는 중국의 천자는 [왕권천수설: 황제와 왕은 하늘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았다]로 인해 천자나 그가 책봉한 제후(왕)는 왕국의 모든 소유(땅과 재화)의 주권을 가지며, 소유의 일부를 양반이나 평민에게 나누어준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체제가 유지되었다.
저자는 정체체제 문제를 공동체와 그 영토의 윤곽에 대해, 공동체 내부에서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메커니즘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의 정치권환에 대하여 설명하는 일련의 규칙을 다루는 문제로 본다. 지금 한국은 대의민주주의 즉 국민이 지역별로 직접 투표로 선출한 국회의원들의 입법기관인 국회의 단체적 결의와 직접 투표로 뽑아서 국민이 결정권을 위임한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통치 행위란 메커니즘으로 정치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정치체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소유체제 문제이다. 소유가능한 것들의 상이한 형식들에 대한, 관련 사회집단 간 소유관계를 정의하고 양식화하는 적법한 절차와 실무를 담당하는 일련의 규칙에 대한 문제이다. 여기에는 사회적 소유와 공적 소유, 부동산소유와 금융소유, 토지소유와 광물소유, 노예소유와 농노소유, 지적 송유와 비물질적 소유의 역할에 대한 설명과 소유자와 임차인 관계, 귀족과 농민의 관계, 주주와 임금노동자 관계의 조정에 관한 설명도 포함된다.
저자의 이러한 복잡한 설명이면 이제 이 책의 독자는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아! 이 책은 전문가용이구나. 일반 독자가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를 초과한 내용들이 너무 많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모든 문제를 일일이 부동산 전문가나 투자 전문가를 믿고 맡길 정도로 안정되거나 느리게 변화하는 사회가 아니다. 소유 관련 법들은 수시로 변경되고, 투자나 신탁에 관한 법이나 시스템 역시 기존의 전문가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좀 더 안전하고 확실한 정보를 원한다면 인터넷의 일반적 정보에 의존하거나 주위의 관련 상담사를 찾아보는 것과 더불어 직접 여러분들의 두뇌 한 부분에 21세기 자본과 이데올로기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변해가는 것인지에 대한 지도를 새겨보는 것을 권유한다. 발품을 팔지 않고 그리고 직접 현장조사를 하지 않고, 간접적인 정보만으로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혹은 금융투자 상품이나 보험을 고르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최소한 그 분야에 대하여 가족의 구성원들 중 누군가는 세밀하게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실용적인 경제학 책이 아니다. 저자의 학문적 포커스는 불평등주의체제 혹은 불평등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이다. 우선 저자가 전제로 하는 것은 모든 사회에서 정치체제와 소유체제가 서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대 사회에서는 정체체제와 소유체제의 문제가, 달리 말해 개인들에 가해지는 권력 문제와 사물들에 가해지는 권력 문제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삼원적(ternaire) 또는 삼기능적(trifontionnnel: 기능별 세 계급으로, 종교적 사제계급과 군사 귀족계급과 노동하는 평민계급으로 분리된) 사회들의 경우도, 더 교묘하지만 사정은 같다. 근대 이전의 대부분의 문명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역사적 형태에서는 왕권적 권력이 부여되는 지배자계급과 소유계급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지배계급을 이룬다. 앞에서 이미 우리는 조선사회를 예를 들었다.
그러면 저자는 과거의 불평등에 관한 이데올로기들에서 무엇을 찾아내고 어떤 부분을 새롭게 복원하려는 것인가? "원칙상 나는 어느 이데올로기든(소유주의 이데올로기, 시민주의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삼기능 이데올로기, 노예제 이데올로기, 식민주의 이데올로기) 특정 유형의 불평등 또는 평등을 옹호하느라 극단적이고 과도하게 보일 수 있더라도 저마다 방식으로 정의로운 사회와 사회정의에 대한 특정한 비전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겠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비전에는 언제나 그럴듯함과 진솔함과 일관됨이 담겨 있으며, 다음과 같은 조건하에서 이 비전에서 후일을 위한 유용한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발전들을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이며 비제도적인 방식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소유-조세재정제도, 교육제도의 특정한 형태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개별 사회, 역사적 시기, 특정 제도 안에서 체현되었던 모습 그대로 연구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그는 최소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 조세, 재정, 교육제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를 이끌어낸다. 이 네 가지 제도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가장 절실한 개혁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지금 우리가 수 십 년 동안 경험한 것처럼 이런 제도의 개혁은 엄밀한 학문적, 실제적 연구와 실증의 뒷받침 없이 어떤 정당을 지배하는 정략가들이 그들의 편에 있다고 믿는 집단의 대중심리를 이용한 프로파간다(선전)로 이용될 때마다, 심각한 부작용을 겪어왔다. 이제 다수의 국민들이 정치꾼 혹은 정략가들보다 더 스마트해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