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원사회: 삼기능적인 불평등
저자는 이 책의 전반부(1-2부)에서는 불평등주의체제의 역사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 다음 후반부(3-4부)에서 그는 20세기 소유자사회와 식민사회가 주로 세계대전과 공산주의의 시련이라는 충격 아래 겪었던 위기를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20세기말 21세기 초의 포스트식민적이고 신소유주의적 세계에서의 이 사회들의 쇄신 및 가능한 변화 조건들에 대한 연구들을 제시한다.
1부의 첫 장에서 논의되는 '삼원사회'는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퍼진 불평등체제의 범주를 구성한다. 이 삼원사회는 현 세계에서 지속적인 자국을 남겼고, 사회적 불평등과 이에 대한 정당화의 기원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도 은연히 사람들은 사회 구조가 상류층, 중산층, 서민층으로 분류되는 것을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있다. 계층 이동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부여되어 있지만 실제로 과거 고도성장 시대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피케티가 분석하는 삼원사회는 형태상 가장 단순한, 별개의 사회 집단인 사제와 귀족과 제3신분으로 이루어진다. 이 집단 각각은 공동체 전체에 복무하는 본질적 기능과 그 존속에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한다. 사제는 종교적이고 지적인 계급이다. 이 계급은 공동체의 영적인 지도 및 공동체의 가치와 교육을 책임진다. 즉 공동체의 역사와 형성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위해 필수적인 지적 도덕적 규범과 자표를 공동체에 제공한다. 귀족은 군사적인 전사계급이다. 이 계급은 무기를 다루고 사회 전체의 안위와 보호와 안정성에 기여한다. 제3신분은 노동하는 평민계급으로, 농민과 수공업자와 상인을 비롯해 사회의 나머지가 모인 것이다.
사회조직의 이런 일반적 유형은 프랑스혁명까지의 기독교 유럽 전체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바깥의 매우 많은 사회에서도, 대부분의 종교에서도, 특히 힌두교와 시아파 및 수니파 이슬람의 틀 안에서, 상이한 양상들을 따라 확인된다. 예전에 인류학자들이 내놓은 가설에 땨르면, 유럽과 인도에서 관찰되는 사회적 삼분체제들은 공통의 인도-유럽적인 기원을 가졌으며, 이를 신화와 언어구조에서 간파할 수 있다. 특별히 비교종교학자인 멀치아 엘리아데는 인도-게르만족의 종교나 신화가 다신론에서 삼신론으로 그리고 그 삼신론은 삼원화된 사회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삼원 도식은 더 나아가 거의 모든 고대사회에서, 중국과 일본은 물론 극동에 이르기까지 세계 전역에서 확인된다. 고조선-삼국-신라-고려-조선 시대의 한반도에도 이런 삼원 도식은 일반화되어 있다. 전통적인 삼원사회에서 소유권과 왕권적인 기능들은 국지적 수준에서 권력관계라는 틀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다. 일반적으로 두 계급이 대부분의 농토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소유지가 모든 농촌사회에서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권력의 초석을 구성한다.
중앙집권화된 근대국가에서도 이 삼원 도식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영국의 상원은 중세 삼기능세계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한 귀족적 사제적 제도이지만, 19세기 전반에 걸쳐 그리고 20세기 초까지도 최초의 세계 식민제국의 통치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이란의 시아파 사제 계급 역시 헌법수호위원회와 국가지도장자운영회의와 더불어 그들의 정치적 지배역할을 20세기말 이슬람 공화국에서도 합헌성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러한 구조가 붕괴되고 대체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어떤 중앙집권화된 국가구조가 옛 전사 귀족과는 점점 더 상관없는 행정 및 특정 인적수단들(경찰관, 군인, 관료)을 동원하여 대규모의 영토에서 사람과 재화의 안전을 보장하게 된 순간부터 귀족제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인식과 지혜를 생산하고 교육하기 위한 시민기관, 학교단체, 대학기관과 그 과정이 발전되어 가면서 교사, 지식인, 의사, 과학자, 철학자가 이전의 사제 계급과 다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끄는 순간, 공동체의 영적 보증인으로서 사제 계급 자체의 정당성이 위협을 받는다.
근대 사회 이후 시민들의 탄생과 결혼 그리고 상담과 장례를 담당하던 성직자들이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결혼식장, 심리분석가, 상담심리가와 장례식장과 장례사들에게 전통적 역할을 빼앗기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며, 그 결과로 20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신학교에 진학하려는 인원의 급격한 감소로 나타났다. 그러나 반대로 신분 또는 종교적-인종적인 상이한 기원과 연결된 불평등은 현대의 불평등에도 계속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이란 새로운 신분이 등장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데, 소위 정치-경제-언론 엘리트들의 상당수는 학벌이란 새로운 인맥으로 연결되어 지속적으로 자기들만의 고유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기득권을 보호하고 있다. 과거에는 익명으로 나오던 출신 대학이 이제는 드라마나 예능에 버젓이 등장하여 그 상표적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언론 엘리트들 중 방송국 PD의 상당수가 거의 비슷한 레벨의 출신 대학의 분포를 가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학벌사회는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 특히 소유체제 즉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의 재투자 그리고 소비사회에서의 브랜드화나 앞선 지식정보의 독점과 선점으로 말미암은 독과점적 행태로 나타나며, 국민 소득의 상당부가 사교육에 투자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선진국의 일반적 특징 중 하나는 교육과 의료 복지의 공공화인데 한국은 이 점에서 좌파 정권이든 우파 정권이든 근원적 요인의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 '한국병'의 한 요인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잘 살려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 소득 중 높은 비율이 자녀들의 조기 교육부터 투자되어야 하고, 동시에 가급적 질 높은 사교육 기관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한다.' 이런 인식이 만연한 사회가 과연 건전한 사회인가?
사교육법의 개혁은 사학연합과 밀착된 보수 정권의 집권으로 세습구조를 끊어내지 못한채 여전히 사학재단의 경영 및 이사 세습화는 기업 경영권의 세습화 문제에 가려져서 부각되지 못한채 이면으로 가라앉았는데, 교육재정의 상당 부분이 사교육 재단의 유지에 사용되는 현 상황에서 사학법에 대한 21세기적 개혁과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부분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이 문제에도 더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 임기가 보장된 교육 대통령을 따로 선출하는 핀란드의 모델을 왜 도입하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