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세계화 시대의 국가(1)
저자는 국가라는 주제에서 우선 <제1차 세계대전이 낳은 비극>이란 항목으로 시작한다. 1차 세계대전의 대학살은 한 세대의 기억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 전쟁이 남긴 가장 비극적 유산은 그 후유증, 즉 공산주의자의 러시아 지배(1917), 파시스트의 이탈리아 지배(1922), 나치의 독일 지배(1933)였다. 이런 여파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더 많은 사람이 죽었고, 지금도 우리 삶을 괴롭히는 직간접적 유산-북대서양조약기구 대 러시아, 한국의 분단-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더 치명적이긴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많은 후유증을 남겼기 때문에 더 큰 재앙이 되었다는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2차 대전이 1차보다 더 파괴적 무기, 더 빨라진 전투기, 엔진 4개를 장착한 거대한 폭격기, 독일의 V-1, V-2 미사일, 원자폭탄 등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1차 대전은 주로 참호전이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태에서 독가스를 대규모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를 제외하면 현대전의 대부분의 방식이 1차 대전 동안 고안되고 다듬어졌다.
그 후 디젤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잠수함이 상선 호위함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고, 최초의 탱크가 전쟁터에 배치되었다. 비행선과 비행기를 이용한 공중 폭격도 이루어졌고, 1914년 최초의 항공모함이 진수되었다. 프랑스는 1916년 공중에서 지상으로, 1917년에는 지상에서 공중으로 음성을 전달할 수 있는 휴대용 송신기를 개발했고, 이것은 효율성 높은 전자 부품을 향한 긴 여정의 발판을 놓았다. 이 중에서도 저자는 중대한 혁신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코 4년간 봉쇄된 독일이 두 전선에서 견디게 만든 '암모니아 합성'을 든다. 원래 합성 암모니아는 고형 비료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전쟁이 벌어지자 이것은 곧 폭발물을 생산하기 위한 질산으로 전환되었다.
그다음 항목은 <미국은 정말 예외적인 국가인가?>라는 물음이다. 왜 갑자기 전쟁 이야기에서 미국에 관한 스토리로 넘어가는 것일까? 소위 미국예외주의(American exceptinalism: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독특하고 특별하며,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국가라는 믿음)는 경제와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더욱 공고해진 이상과 생각 그리고 자유가 독특하게 결합된 이론으로 지금도 건재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에는 이를 마지못해 인정했지만, 그는 2009년 4월에 "영국인이 영국예외주의를 믿고, 그리스인이 그리스예외주의를 믿는다고 해서 의심할 만큼 나는 미국예외주의를 믿는다"라고 말했다. 즉 그는 초반에는 이 이념을 부정하는 견해를 확고히 드러냈다. 그러나 2014년 5월에는 "나는 온몸으로 미국예외주의를 굳건하게 믿는다"라고 돌아섰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해당 국가의 GDP 규모나 핵탄두의 보유 수량이 아니라, 시민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안녕을 평가하는 변수들이다. 예를 들면 삶과 죽음, 지식 등이 이런 변수에 속한다. 유아사망률로 따지면 미국은 비율이 낮은 상위 25개국에도 끼지 못한다. 더 중요한 요소는 부모의 지식, 적절한 영양 공급, 경제 불평등의 정도, 보편적 건강관리의 접근성이다. 미국은 부유한 나라에서도 보편적 건강관리가 보장되지 않는 유일한 국가로 악명이 높다. 기대수명에서도 상위 24개국에 들어 기지 못했고, 교육 성취도도 2018년의 미국은 수학에서 러시아, 슬로바키아, 스페인보다 아래였고, 캐나다, 독일, 일본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정도였다.
이제 저자는 <왜 유럽은 현재 상태에 만족해야 하는가?>라는 다른 물음으로 전환한다. 1958년 1월 1일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핀란드, 서독이 유럽경제공동체를 결성하여 관세동맹 내에서 경제통합과 자유무역을 목표로 정했다. 그 이후 1994년에 유럽연합이 탄생했고, 1999년에는 공동화폐인 유로를 도입했다. 현재 유럽연합의 회원국은 27개국이다. 인구는 거의 4억 5000만 명 애 달하고, 세계 인구의 약 6퍼센트를 차지한다. 경제 생산량은 세계 전체의 20퍼센트로 미국의 25퍼센트에는 미치지 못한다. 유엔인간개발지수에 따르면 27개국 중 절반이 삶의 질에서 상위 30개국에 속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유럽연합 내에서 불안과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영국은 완전히 탈퇴하고 회원국의 결속력이 느슨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연합 내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설명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그 원인으로 브뤼셀의 과도한 관료주의적 통제, 국가 주권에 대한 재천명, 형편없는 경제, 정치적 선택, 특히 개별 국가의 재정을 공동으로 책임지지 않으며 채택한 공동 화폐 등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한다. 저자가 보기에는 평화와 번영의 수십 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동안 반복된 실수와 곤경이 해묵은 편견과 적대감에 다시 불을 붙였다고 이야기한다. 혹 21세기의 한국도 이와 유사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의 사정을 통계 지수로 알아보자. 저자는 <브렉시트: 가장 중요한 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영국의 현실을 살펴본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는 실질적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가장 중요한 것부터 생각해 보자. 우리는 누구나 먹어야 한다. 현대 사회는 전례 없이 다양한 식품을 전반적으로 알맞은 값에 공급해 왔다. 그리고 연료와 전기를 끊임없이 채굴, 생산하면서 건물과 산업체 그리고 교통수단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영국은 수세기 전부터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였다. 수입 의존도는 최근에 40퍼센트로 증가했다.
북해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한 덕분에 얻은 에너지 순 수출국으로서 영국의 지위는 2003년에 막을 내렸다. 최근에는 일차 에너지의 30-40퍼센트를 수입하여 쓰고 있다. 한때 영국은 현대 과학에 기초한 산업에서 경쟁 상대가 없는 발명국이자 선구자였지만 이제는 캐나다보다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이 떨어진다. 2018년 영국의 제조업은 GDP의 9퍼센트에 그쳤는데, 일본과 독일과 한국은 차례로 19, 21,27퍼센트였다. 영국은 고령화 사회이고, 제조업 비율이 크게 떨어지고, 활력을 상실했으며, 1인당 GDP도 아일랜드의 평균치를 조금 웃도는 국가이다.
저자의 평가에 의하면 영국의 현실은 참혹하다. "한마디로 영국은 한물간 강대국으로, 이제 유일무이함을 주장할 것이라곤 골칫덩이인 왕족, 지나치게 많은 하인들이 우글대는 음침한 저택을 무대로 펼쳐지는 TV용 시대국의 수출이 전부인 듯하다." 그러면 이제 아시아로 눈을 돌려보자. 일본과 중국의 미래는? 그리고 인도는? 영국의 현실과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인도의 미래에 대한 분석은 곧 한국의 미래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저자는 특별히 한국의 미래에 대하여 국가에서 다루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