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우리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2)
이제 저자가 이야기하는 평균 신장이 점점 커지는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자. 동 시대인의 평균 키에 대하여서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사람은 18세기 프랑스의 몽베야르였고, 그를 이어서 르클레르가 1977년 발행한 [박물지]에 몽베야르의 아들 신장 측정표를 실었다. 10대 후반에 그 아들은 네덜란드인의 평균 신장에 가까웠다. 그 후 여러 학자에 의해 1830년대에 대규모로 갖추어졌다.
발육 부진이 많은 빈곤국에서 여전히 흔한 현상이지만, 중국에서 빠르게 이루어진 덕분에 세계적 차원에서는 1990년 약 40퍼센트에서 2020년에는 약 22퍼센트로 크게 줄어들었다. 따라서 키가 점점 커지는 현상은 20세기의 범세계적 추세였다. 더 나아진 건강관리와 영양 공급, 특히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을 더 많이 섭취함으로써 변화가 앞당겨졌다. 더 커진 키는 놀랍도록 많은 긍정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한 기업을 운영하는 최고 경영자일수록 상대적으로 키가 더 크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반면에 키가 커지면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도 높아진다.
산업화 이전 유럽에서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9-171 센티미터였고, 200개국에서 확보한 인류학적 자료를 분석하면, 20세기 들어서 평균적으로 성인 여성은 8.3 센티미터, 성인 남성은 8.8 센티미터가 커졌다. 한국 여성은 평균 신장이 무려 20.2 센티미터나 커지며 20세기 최고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20세기 후반에서 가장 평균적인 신장이 큰 나라는 남성의 경우, 네덜란드, 벨기에, 에스토니아, 덴마크이고 여성의 경우에는 라트비아, 네덜란드, 에스토니아, 체코, 세르비아이다. 여러 조사 결과 어린아이의 키를 가장 쉬운 방법은 더 많은 우유를 마시게 하는 것이다.
다음 물음은 기대 수명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기대 수명이 마침내 정점에 달한 것인가?라는 문제를 통계학적으로 다룬다. 구글의 수석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우리에게 2029년까지만 꾸역꾸역 버틸 수 있으면 의학의 발전으로 "당신의 기대 수명에 매년 1년씩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기대 수명은 출생일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 시점에 남은 기대 수명을 가리킨다"라고 말했다. 그가 내리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부유한 국가에서 노인의 기대 수명은 연간 약 34일씩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이런 추제는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화 과정에 변화를 주는 근본적 발견이 없다면, 장수를 향한 추세는 결국 약화해 종국에는 꺾이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장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는가? 아마도 독자 중 누구도 오래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할 것이다. 저자는 사람에 대한 가장 진지한 질문인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한가?를 던진다. 통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중 하나는 유엔 지속가능발전 해법 네트워크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를 참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2019년 보고서에는 핀란드가 두 번 연이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되었고, 덴마크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가 그 뒤를 이었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그다음은 스웨덴이었다. 북유럽 5개국이 상위 7개국에 들었으며, 뉴질랜드, 캐나다, 오스트리아가 상위 10개국 안에 들었다.
행복 점수는 1인당 GDP, 사회적 지지, 건강한 기대 수명, 관용, 부패에 관한 인식 등 여섯 가지 요인을 기초로 산정한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은 54위, 일본은 58위, 중국은 93위를 차지했다. 우연의 일치로 저자는 바로 그 해 상위 3개국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핀란드 사람들이 다른 두 나라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보고서의 순위가 그렇게 실질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행복과 자살 사이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도 이야기한다. 실제로 행복 점수가 최상위권에 있는 몇몇 국가는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낮은 몇몇 국가에는 자살 빈도가 무척 낮다.
저자가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행복 지수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권유하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지만 다음과 같은 교훈이다. "당신이 북유럽이나 네덜란드, 스위스, 뉴질랜드, 캐나다에 살고 있지 않다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라!'라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뉴질랜드와 캐나다의 젊은이들이 자국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는 2023년 이후의 수치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사람에 관한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자. 그것은 바로 메가시티의 등장이란 주제이다. 1800년에는 세계 인구의 2퍼센트 이하가 도시에 거주했고, 1900년쯤에도 그 비율은 여전히 5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1950년에는 그 비율이 30퍼센트까지 치솟았고, 2007년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는 첫 해가 되었다. 2016년의 조사에 의하면 인구 100만 명 이상인 도시가 512곳이었고, 31곳은 1000만 명을 넘었다. 이렇게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를 <메가시티>라는 특별한 이름이 붙여졌다.
메가시티의 성장은 서구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아시아가 도약하는 현상을 가장 완벽하게 설명해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2020년에는 35곳에 달하는 메가시티가 등장했고 그중 20곳, 즉 거의 60퍼센트가 아시아에 있다. 그러나 어떤 메가시티도 삶의 질이란 기준에서 상위에 있지는 않다. 도쿄는 깨끗하고, 도심에서 멀지 않은 거주 지역이 무척 조용하여, 대중교통도 모법적이고 범죄율도 아주 낮다. 그러나 주택은 비좁고, 통근 거리가 무척 멀어 고생스럽다. 중국의 메가시티는 대기의 질과 수질이 좋지 않고, 주민들은 끊임없이 감시받아 사소한 사회규범 위반도 허용되지 않는다. 서울의 경우는 어떨까? 저자는 서울은 메가시티에 오르지 않은 도시이기에 분석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는 사람이란 주제에서 국가란 주제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