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영화의 영화
1. 영화와 러브스토리
현대의 대중음악처럼 영화도 다양한 장르로 구분될 수 있다. 소위 액션, 호러, 전쟁, 역사, 로맨스, 코미디, SF, 웨스턴, 무협, 에로와 같은 장르의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로망이라고 불리어지는 로맨스란 예술 장르는 원래 로망어로 써진 서정성이 강한 서사시를 의미했다. 그러나 정차 몽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뜻하는 말로 고착되었다.
모든 영화가 로맨스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영화의 중요한 플롯은 바로 남과 여의 관계 혹은 사랑에 관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일생의 많은 시간을 바로 이런 남녀 간의 사랑을 꿈꾸거나 아니면 그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 이야기는 그 자체가 바로 인생 이야기 혹은 더 진지하게 말해서 ‘인간적인 현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지식으로 처리되지 않는 근원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남과 여의 관계를 영화-예술적으로 조망하려는 시도는 모든 영화감독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또한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 ‘남과 여’의 주제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영화 자체라는 점에서 메타-영화 즉 영화의 영화로 불리어질 수도 있겠다. 즉 이 영화는 남과 여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남과 여의 관계란 소재를 통해 새로운 영화 혹은 새로운 예술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 빛과 소리의 예술
영화는 종합 예술이지만 특히 스토리와 영상 그리고 음악은 영화예술의 3가지 기본 구성 요소이다. 작가주의적 영화감독들과 달리 대부분의 상업적 영화감독들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플롯은 선과 악, 지배와 피지배, 정의와 불의, 남과 여와 같은 모순적인 대립 구도이다. 왜냐하면 이런 이분법적 구도야 말로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동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스토리 안에 이러한 이분법이 있다면 극장 안에도 영상과 소리라는 이분법이 존재한다.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대립적 요소의 적절한 갈등과 화해가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원동력이라면 영화감독에게는 영상과 소리를 어떻게 조화하느냐가 또 다른 관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영화 ‘남과 여’는 영상과 소리를 아주 적절하게 결합시킨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빛에 의해 드러나는 색감은 크게 무채색과 유채색이 있다. 흑백영화와 달리 칼라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가시광선의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색감들을 아름답게 채집하려는 욕구를 가진다. 그리고 영화에서 음악은 음악영화를 제외하곤 대체로 대사나 장면의 보조 수단으로 여겨졌지 그 자체가 하나의 영화적 표현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끌로드 를루슈 감독은 흑백과 칼라를 넘어서 모노크롬이란 새로운 표현기법과 대사를 가급적 절제하고 음악으로 대사를 대체한 새로운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영화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3. 예술을 위한 영화, 영화를 위한 영화
예술이 정치와 종교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모색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1935년 프랑스의 작가 고티에는 <예술을 위한 예술 l'art pour l'art>을 예술의 목적으로 정의하였다. 예술미 자체의 창출이 예술의 목적이 되어야지 여타의 종교적 이념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 혹은 상업적 이윤추구가 예술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유미주의적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구분 역시 순수예술이 이와 같은 예술지상주의를 표명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본에서 자유로운 창작이 없고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독립된 창작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술가들은 거대 상업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최소한의 경비로 제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창작을 꿈꾸고 또한 어떤 종교적이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수단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대정신의 표현으로서 예술을 꿈꾼다.
로망이 중세의 종교적 이념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로운 사랑 이야기의 서술이라는 동기에서 시작되었듯이 독립영화란 이름 하에서 행하여지는 많은 실험과 모색들은 예술의 본질인 자유정신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독립영화 혹은 작가주의적 영화가 예술적 완성도를 배제한 자의적 실험이나 망상의 산물이 된다면 영화 역시 예술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영화 ‘남과 여’는 3주간의 제작 기간 그리고 당시 29세 감독의 실험정신과 적은 제작비 등을 고려하여 볼 때 현재의 독립영화 군에서 만들어질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예술적 완성도나 그 후 영화계의 평가는 자본이나 경륜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수 십 년 전에 열어놓은 것이다. 만약 지금도 정말 순수하게 자기만의 새로운 영화미학을 꿈꾼다면 영화라는 장르는 가장 훌륭하게 순수한 창작의 손을 기다리는 영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주제, 남과 여
예술이 자유로운 영혼의 시대적 자기표현이라면 이 표현은 인간이 꿈꾸는 또 다른 유토피아로서 시네마 천국일 것이다.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 천국이라면 영화 속은 몽상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일종의 천국이다. 디스토피아를 표현하는 영화가 있다면 이 영화의 반대편에 천국이 있다.
모든 사람의 가장 일반적인 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천국은 바로 이 함께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곳이다. 꿈의 공장인 영화제작소는 바로 영화 속에서 이러한 천국의 이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남자의 천국은 여자이고, 여자의 천국은 남자라는 단순한 진리를 영상과 음악의 탁월한 결합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