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전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고전적인 형상-질료 도식에서는 형태를 부여하는 작용은 주체(형상)가 객체(질료)에 투여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개체화 이론에서는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질료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형태화의 내재적 가능성 혹은 긴장 상태에 있다. 대리석은 광산에서 캐어 나올 때 이미 쪼개어져서 일정한 균열과 조각하기 좋은 재료로 변형되는 과정에 노출된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대리석이 가지고 있는 재료적 특성에 따라 조각상으로 생성되는 가능적 에너지로 충만하다. 여기에 조각을 하는 순간 발생하는 사건이 바로 정보이다. 그러므로 정보는 이미 조각가의 머리 안에 있는 형상적 이미지가 아니라, 조각을 주문한 외뢰인과 조각가 사이에 먼저 발생하는 소통의 사건이고 이어서 질료 안에 내재한 어떤 잠재적 형태를 해방시키는 사건이기도 하다.
저자의 글을 읽어보자. "정보의 효율적 수용, 특히 이 경우에는 제작의 질서라는 이미 주어진 조건-개인 상호 간의 소통 속에서-에 의해 중개된 데서 유래한다. 두 사회적 실재들 사이의 이러한 소통, 기술적 적용의 조건에 해당하는 이러한 수용의 적용은 기술적 작용의 한가운데서 양극단의 형태들-형상과 질료-에게 상호소통을 가능하게끔 해주는 어떤 것을 감추고 있다. 이는 [감추어진 것은] 정보이고, 작용의 '지금, 여기'의 특이성이며 출현 도상에 있는 개체 차원에서의 순수 사건이다."
시몽동은 사건으로서의 정보가 어떻게 기술적 형태갖추기의 물리적 작용으로 작동하는 지를 목수가 자신이 원하는 자질의 나무를 찾는 것이나, 물리학자가 파동을 측정하기 위해 적절한 결정체를 선택하는 경우로 설명한다. 목수가 자신의 목공을 위한 목재를 찾기 위해 숲에 갈 경우 우선 그는 아무 나무나 무조건 베지 않는다. 그는 나무의 곧음, 나이테와 결, 수분 상태, 강도, 뒤틀림 가능성을 보고 나중에 건축할 목조주택의 구조와 공명할 수 있는 나무를 찾는다. 여기서 발생하는 개체화의 과정은 집의 구조 요구와 숲 속 나무들의 잠재적 성질에 의해 적절한 나무 발견하는 순간이 중심이 된다. 이 순간이 바로 정보의 사건이다.
물리학자가 파동을 측정하기 위해 적절한 결정체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X선, 음파, 전자파를 측정하려면 특정 격자 구조와 특정 공명 주파 그리고 특정 대칭성을 가진 결정체가 필요하다. 여기서 개체화 과정은 측정하려는 파동이 결정의 격자 구조와 맞물려서 공명(resonance)이 발생하는 정보의 사건이다. 이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회절과 간섭과 증폭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그것이 측정가능한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란 어떤 사물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잠재적 구조들이 만나 공명하면서 새로운 구조가 나타나는 사건이다. "마치 목수가 숲에서 적당한 나무를 찾는 것과 같다. 물리학자는 이런저런 파동을 가진 X선을 분석하기 위하여 결정을 선택할 때, 결정망의 고리가 연구해야 할 복사 파동의 크기의 등급에 속하도록 선택을 한다."
이제 정보 사건과 내적 공명이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다시 앞에서 시몽동이 말한 개체의 발생을 논리적인 네 가지 단계로 배열한다면 먼저 어떤 실재의 준안정적 체계(système métastable)에서 불일치 / 이질성 (disparation)의 단계로 그다음 내적 공명 (résonance interne)에서 변환 (transduction)의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L’individuation ne peut se produire que dans un système métastable possédant une résonance interne, 개체화는 내부 공명을 지닌 준안정적 체계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La résonance interne du système permet la propagation de la structuration, 체계의 내부 공명은 구조화가 체계 전체로 전파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적 공명의 개념은 사실상 시몽동 존재론의 핵심 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물질 개체화, 생명 개체화, 정신 개체화, 집단 개체화의 전 층위에서 일종의 '체계의 공명' 구조를 반복되기 때문이다.
현대 철학에서 <사건(event)>이란 개념은 다른 현대 철학자에게도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우리는 잠시 시몽동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질 들뢰즈와 알랭 바디유의 사유와 비교해 보기로 하자. 작은 부분만 들여다보면 큰 흐름을 놓치게 된다. 논문과 달리 에세이의 장점은 거시적 시각과 미시적 시각을 교차로 전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사건에 대한 사유의 틀이 다른 철학자들에게 어떻게 변형되는 지를 살펴보자. 물론 비교 철학은 장단점이 다 있다. 장점은 숲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고 단점은 나무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비교 종교학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과연 중립적인 관점에서 두 문화의 핵심 패턴을 바라볼 수 있을까? 과학처럼 철학도 가치중립적 태도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나중에 라투르의 철학을 개관할 때 다시 논의하기로 하자.
그러면 시몽동의 이론에서 영감을 받은 질 들뢰즈는 이 정보 사건을 어떻게 재해석했을까? 그는 사건을 존재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순수한 생성으로 해석한다. 들뢰즈에게 사건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 위에서 발생하는 생성이다. 우리가 흔히 "나무가 자란다, 작은 도시가 소멸한다, AI 혁명이 일어난다"라고 말할 때, 이때 사건은 물질적 사건의 차원이 아니라, 의미적 변화의 차원을 뜻한다. 들뢰즈에게서 혁명은 단순한 역사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장이며 그러기에 사건은 곧 생성이다. 그러나 바디유는 들뢰즈와 달리 사건을 훨씬 다른 사유로 접근한다. 그는 사건을 존재 질서를 깨는 단절로 본다. 그는 존재가 일종의 수학적 집합 구조를 가지기에 이 구조 안에서는 모든 것이 계산가능하다. 그러나 사건은 이 구조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 발생이기에 기존의 질서로는 설명되지 않는 존재 질서의 파열이다.
이제 사건에서 공명으로 시선을 돌리자. 공명은 정보의 사건이 발생하는 체계의 내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물질 층위에서 공명은 구조 변화가 매질 전체로 전달되는 과정이다. 여기서는 국소적 변화가 전체로 확산되어 시스템 내부에서 상호 반응 발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앞에서 수 차례 예를 들었듯이 소금 결정의 과정은 과포화 용액 존재에서 작은 결정 씨앗 등장하고 그 이후 결정 구조가 주변으로 확산된다. 여기서 씨앗이 정보의 계기라면 확산 과정이 바로 공명이다. 이 구조는 물질 층위에서 끝나지 않고 같은 메커니즘이 생명과 정신 그리고 집단으로 확장된다. 생명의 층위에서 정보가 유전 및 환경 신호라면 공명은 세포의 네트워크 반응으로 볼 수 있다.
"내재적 형상이 이미 존재한다고 해도 형태갖추기는 질료와 형상이 유일한 체계 안에서 준안전성의 에너지 조건에 의해서 결합되는 경우에만 이루어진다. 이 조건을 우리는 체계의 내적 공명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는 퍼텐셜에너지가 현실화되는 동안 변환역학적 관계를 세운다. 개체화의 원리는 이 경우에 개체화하는 체계의 상태이자, 모든 특이성들을 포함하는 에너지 복합 내부의 이러한 변환역학적 관계의 상태이다. 진정한 개체는 기술적 작용이 이루어지는 순간 동안에만 존재한다. 즉 그것은 형태갖추기가 지속되는 한에서 존재한다. 이 작용 이후에도 존재하는 것은 진정한 개체가 아니라 하락하는 결과이다."
이 글을 다시 목조주택의 건축 과정으로 예를 들어보자. 목조주택을 짓는 경우에 설계도(형상)와 목재(질료)가 있어도 습도와 목재 상태와 장력과 연결 방식이 맞지 않으면 집은 건축되지 않는다. 즉 형상과 질료와 에너지 조건이 맞아야 건축이 발생되는 것이다. 시몽동은 이것을 '체계의 내적 공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공명은 체계 내부의 요소들이 서로 맞물려 변화가 전체로 전달되는 상태이다. '퍼텐셜에너지가 현실화되는 동안 변환역학적 관계를 세운다.'는 말은 가능성으로 있던 에너지가 실제 구조로 바뀐다는 뜻이다. 개체는 관계 속에서 생기는 것이며, 그런 한 진정한 개체는 과정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결과로써 완성된 사물은 이미 끝난 과정의 흔적일 뿐 그것은 진정한 결과가 아니라 하락하는 결과가 된다. 사물은 이미 있는 형상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재료와 조건이 공명하면서 잠재 에너지가 구조로 변하는 과정 속에서 생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진짜 개체이다,
시몽동의 이야기를 압축한 가장 적절한 시가 떠오른다. 그 시는 로마의 서정 시인 호라티우스가 사용한 카르페 디엠이 나오는 구절이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붙잡아라 내일을 너무 믿지 말라." 이 시는 바로 시몽동이 "개체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형성되는 순간이다."라고 말하는 뜻과 연결된다. 존재는 완성된 결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지금의 사건 속에 있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이상하게 들리지만 조금만 마음을 비우면 시간은 시계의 시침이 표시한 위치의 공간 이동에 불과하고 실재하는 것은 지금만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이라고 하는 순간 이 지금은 <아까: 조금 전, 방금 전>으로 밀려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