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과 질료에 이어서 저자는 형태와 에너지란 주제로 물질의 층위에서 일어나는 개체화 과정을 설명한다. 사실 이 장은 현대 물리학의 결과들과 엄밀하게 연결되기에 다른 학문의 전공자나 현대 물리학의 기초가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아주 어려운 장이다. 현대 물리학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아무리 쉽게 그것의 원리를 설명하는 동영상이 많아도 실제로 깊이 있게 이해하는 사람은 석사 학위 이상의 전공자가 아니면 드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을 생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체화 이론 자체가 추상적 사변이나 추론의 결과가 아니라 현대 과학의 성과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장에서 시몽동은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질료형상론(Hylomorphism)의 도식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hylē)에 형상(morphē)이 실현되는 것을 개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도식은 개체화의 결과만 설명하고 개체화의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벽돌 만들기의 예에서 보듯이 질료형상론은 진흙(질료) + 벽돌 틀(형상) = 벽돌(개체)로 본다. 그러나 시몽동은 이 과정에서 진흙은 정말 수동적인가? 틀은 정말 형상을 일방적으로 부여하는가?라고 다시 묻는다. 그가 보기에 진흙을 틀에 넣는 순간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진흙의 분자적 질서와 틀의 기하학적 경계가 상호작용하며 진흙 내부의 힘들이 틀의 경계 조건에 따라 스스로 재배열되는 과정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형태는 외부에서 부여된 것이 아니라 내부 에너지가 경계 조건과 만나 스스로 안정적 상태를 찾아간 것이다. 형태는 명령이 아니라 해결이다. 에너지가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찾는 과정에서 형태가 출현(emerge)한다. 이제 시몽동은 현대 물리학의 핵심 개념인 준안정성(Métastabilité)을 차용한다. 준안정성이란 완전한 안정 상태는 아니지만 쉽게 붕괴되지 않고 일정 시간 유지되는 상태 즉 에너지가 완전히 최소인 상태는 아니지만 작은 자극으로는 변하지 않는 잠정적 안정 상태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과냉각된 물이 0℃ 이하에서도 얼지 않고 액체로 존재하다가 작은 충격으로 갑자기 얼음으로 전환하는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준안정성의 단계에서 시스템에는 아직 사용되지 않은 에너지(퍼텐셜 에너지) 즉,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에너지 차이가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한다.
시몽동이 예를 드는 물리적 현상은 바로 진자(振子, Pendulum: 좌우로 흔들리는 물체)의 운동이다. 이 운동을 예시하는 이유는 한 점에 매달린 물체가 중력에 의해 왕복 운동을 하는 시스템의 근본 구조가 퍼텐셜에너지의 장이라는 것이며, 이것이 곧 개체화의 과정을 물리학적으로 가장 잘 밝혀내는 에너지 구조이기 때문이다. 진자의 가장 아래 위치는 퍼텐셜에너지의 최소 상태이며 가장 안정한 상태이다. 그러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퍼텐셜에너지가 증가하며 동시에 불안정성의 상태도 증가한다. 진자의 공간은 사실상 일종의 에너지 지형(energy landscape)이다.
예를 들어 진자가 맨 아래에서 정지해 있으면 온동이 없기에 안정 평형(stable equilibrium)의 상태이다. 이때는 더 이상 구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이지만 진자를 들어 올리는 순간 퍼텐셜에너지가 축적되며 시스템 안에 에너지가 축적되고 에너지 차이가 발생한다. 이 순간 이후가 바로 준안정 상태에 가깝다. 왜냐하면 아직 운동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작은 자극만 있어도 운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지한 시계추를 살짝 밀었을 때 경우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이제 진자를 놓으면 퍼텐셜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한다. 그리고 그 운동이 정지할 때 다시 운동에너지는 퍼텐셜에너지로 돌아간다. 시몽동의 개체화 과정으로 연결하면 시스템에는 이미 에너지 차이가 존재하고, 진자에서는 높이 차이 즉 퍼텐셜에너지 차이가 존재하며, 이것은 전개체적 장을 형성하고 있다. 작은 사건 즉 진자에서 손을 놓은 순간, 결정씨앗이 형성되는 순간, 세포 내에 생화학적 반응이 촉발되는 순간을 그는 정보라고 부른다.
다시 물리학적 현상으로 이 개체화 과정을 간략하게 배치하면 1) 안정적 평형 (Stable Equilibrium): 최저 에너지 상태, 교란에 저항하고 원래 상태로 돌아옴, 변화 불가능, 개체화 불가능 2) 불안정적 평형 (Unstable Equilibrium): 최고 에너지 상태, 작은 교란에도 붕괴, 지속 불가능 3) 준안정적 평형 (Metastable Equilibrium): 최저가 아닌 에너지 상태, 안정해 보이지만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전이할 잠재성을 품고 있으며 개체화의 진짜 조건이 된다. 그렇다면 준안정성이 왜 중요한가? 그 이유는 시몽동이 보기에 완전히 안정된 시스템은 변화하지 않으며, 완전히 불안정한 시스템은 지속되지 않고 단지 준안정 상태만이 변환의 잠재성을 품기 때문이다. “개체화는 준안정적 평형 상태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완전한 평형은 존재의 죽음이다.”
이제 시몽동은 열역학적 근거를 향해 이론을 전개한다. 사실 기초과학의 기반이 튼튼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설명은 아니지만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사람이나 인문계 출신이라면 접근하기 쉬운 영역은 아니지만 다시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엔트로피와 형태의 관계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우선 열역학(熱力學, thermodynamics)이란 열이 힘과 운동으로 어떻게 변환되고 이동하는지를 연구하는 물리학의 한 분야이다. 열역학 법칙은 2 → 1 → 3 → 0 순서로 발견되었다.
가장 먼저 발견된 열역학 제2 법칙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열은 저절로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엔트로피(에너지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퍼진 정도, 에너지가 얼마나 균등하게 분산되었는가를 나타내는 물리량: 무질서로도 번역)는 열의 역학의 원리에서 사용한 만큼 증가한다.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그렇다면 형태(질서)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일리야 프리고진은 엔트로피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왜 질서와 구조를 계속 만들어내는가? 하는 근본 물음을 던졌다. 왜냐하면 열역학 제2법칙과 모순되는 것과 같은 생명과 소용돌이 그리고 화학적 패턴과 생태계에서 이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는 소산 구조 (dissipative structure: 에너지 흐름이 있을 때 질서가 스스로 생성되는 구조)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 이론은 시몽동과 동시대에 별개로 전개되었지만 프리고진의 소산 구조는 거의 유사한 순서로 진행된다. 즉 준안정성-비평형에서 개체화-자기 조직화 그리고 공명-구조 형성을 거쳐 다시 잠재 에너지-에너지 흐름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마치 시몽동 이론의 물리학적 증명처럼 보인다. 열역학은 다행히 우리가 학교에서 접한 물리이론이라서 어렴풋하게나마 흔적을 가지고 있기에 조금만 들어다 보면 이해할 것이다. 이제 시몽동이 소개하는 구스타프 타만의 물리화학에서 나오는 결정체 형성 이론은 시몽동이 물질의 층위에서 가장 많이 예를 드는 이론이기에 이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타만은 물리화학자이면서 동시에 금속학과 재료과학(소재과학)의 분야에서 큰 기여를 한 학자이다. 특히 그는 금속과 용액에서 결정이 어떻게 생성되고 성장하는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즉 그의 연구 주제는 '왜 어떤 조건에서 갑자기 결정이 생기기 시작하는가?'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미 시몽동의 개체화 과정에서 알아본 것처럼 타만 역시 과포화(supersaturation) 상태에서 결정 형성이 생기는 잠재적 경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가 관찰한 결과 결정이 생기는 계기는 핵 생성(nucleus formation)에서 결정핵 (crystal nucleus)으로 넘어가는 패턴을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소금 용액의 경우 과포화 상태의 용액에서 아주 작은 소금의 결정 씨앗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작으면 녹아버리고 일정 크기를 넘으면 안정 상태에서 다른 결정 구조를 형성하는 핵이 된다. 이 중간을 그는 임계핵(critical nucleus)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현상에서 핵 형성 속도와 성장 속도가 온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결정생성속도=핵형성속도 ×성장속도이며, 온도가 높으면 핵 형성은 느리지만 성장은 빠르며, 온도가 낮으면 핵 형성은 빠르지만 성장은 느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 온도에서 결정이 가장 잘 형성되며 이 과정을 나타내는 원리를 타만 곡선(Tammann curve)이라고 부르게 된다. 시몽동은 타만의 이론과 그와 연관된 브라베의 결정 이론을 세세하게 파고든다. 그러나 우리는 더 어려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타만의 결정 형성 과정과 시몽동의 개체 형성 과정을 간략하게 비교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과포화 용액-전개체적 장, 결정핵-정보, 결정 성장-개체화, 결정 구조-개체로 변환하면 전체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시몽동은 개체에 대한 과학적 고찰에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한다. "개체는 두 가지 근본적 역동성을 내포한다. 하나는 에너지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적인 것이다. 개체의 안정성은 그것들의 결합의 안정성이다. 이제부터 이와 같은 탐구가 주장할 수 있는 실재의 등급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즉 그것[개체적 안정성]을 실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고찰해야 하는가? 반대로 그것은 실험과학을 특징짓는 것으로 보이는 지식의 상대성에 종속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개체가 내 앞에 있다. 통상 우리는 그것이 내 앞에 나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생각하거나 믿는다. 우리 대부분은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소박한 실재론자이다. 그러나 이 상식을 뒤집은 사람이 바로 칸트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실재(현상)는 우리 주관의 형식에 의해 구성된 내용이고, 그 이면에 있는 본체는 인식의 한계 너머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흔히 칸트의 이런 발상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마치 천문학에서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뀐 것처럼 칸트 이후 근대철학은 대상 중심 인식에서 주관 중심 구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비철학도를 위해 간략하게 칸트의 구성론을 설명해 보자. 가장 쉬운 예는 어부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경우이다. 어부는 일정한 크기 이상의 고기를 잡기 위해 수산부에서 규정한 치수의 격자무늬 그물을 던진다. 여기서 잡힌 물고기를 어부는 다시 수량과 크기로 분류하여 배의 창고에 저장한다. 그물을 던지면 격자 치수 안에 들어온 것만 포획되지 물과 그 크기 이하의 물고기들은 당연히 빠져나간다. 우리의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인식의 바다에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성의 형식이란 그물을 던지게 된다. 그러면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는 그 그물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서양의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영혼의 불멸성, 신의 존재 여부와 세계의 유/무한성을 논증하여 왔다. 그러나 칸트의 분석에 의하면 이 대상들은 우리 인식의 한계 너머에 있기에 논증하려는 순간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우리 안에 들어온 시공이란 감각의 형식을 통과한 현상들 역시 12 범주로 측정되는 것만 인식이 가능하다. 어부가 고기를 분류하는 것을 예로 들면 크기(치수)와 단위(마리수)와 종류별로 분류한다. 무작위로 근해의 바다에 그물을 던지면 도다리도 우럭도 돔도 노가리나 쥐치와 같은 성어들이 잡히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분류하는 것을 칸트식으로 표현하면 주관에 내재한 오성의 형식인 12 범주(잣대)이다. 칸트의 이런 주관 중심의 구성론은 피히테와 쉘링을 거쳐 헤겔의 절대 관념론(이상론)에게서 완성되며 흔히 철학사에서는 헤겔을 근대철학의 완성자 혹은 서구철학의 체계 총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헤겔 이후의 서양철학은 대부분 거의 반헤겔적 방향, 즉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주의주의(主意主義)와 실존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그리고 콩트와 카르납과 같은 실증주의 철학의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어서 프로이트와 다윈이 가세하여 이성적 주체로서 인간관이 서서히 분열되고 해체되기 시작한다. 이제 시몽동과 칸트의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자. 앞에서 본 것처럼 칸트는 이미 완성된 주체를 전제하고 인식의 조건을 설명한다. 그러나 시몽동은 주체 자체가 먼저 생성되는 과정(개체화)을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칸트의 질문은 <개체는 어떻게 생성되는가?>라는 시몽동의 질문으로 전환된다.
칸트는 그의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를 한 번도 떠나지 않고 평생 3대 인간이성의 비판 즉 순수이성비판(지)과 실천이성비판(의)과 판단력비판(정)이란 과제를 수행하였다. 그가 탐구한 진선미(眞善美)야말로 철학의 탄생지인 희랍에서부터 지속된 인간 이성의 이정표였고 그는 그것을 3대 비판서에 담았다. 칸트는 단지 철학사에 매몰된 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당대의 물리학과 수학과 천문학과 생물학 그리고 과학 전체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론적으로 인간 지식 자체의 한계를 설정하였다. 시몽동 역시 주관성에게서 개체성으로 중심을 이동하기 위해 근현대 과학의 여러 성과들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실마리를 발견한다. 그러므로 일반 독자들을 넘어서 동아시아권의 학자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시몽동이 칸트에 대하여 언급한 구절들을 해석하고 마치기로 하자.
"감성적 경험의 조건(시간과 공간의 형식)들은 물리적 실재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금한다. 그러나 감성의 선험적 형식들의 존재들로부터... 상대주의를 도출할 수는 없다. 실제로 본체(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물자체: 시공과 범주에 속하지 않는 실체)들이 순수 실체가 아니라 관계들로 구성된다면(에너지 교환이나 실재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구조들이 이행하는 것처럼)... 진정한 인식은 관계이며, 두 형태들 간에 비교에서 보이는 단순한 형식적 연관이 아니다. 진정한 인식은 주체-대상의 관계라는 주어진 조건들 안에서 가능한 사장 커다란 안정성에 상응하는 인식이다."
이제 이 말은 프리고진과 타만의 이론과 더불어 연결하면 훨씬 설득력이 있게 독자들에게 들릴 것이다.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 그리고 그 현실성이 개체로 다시 그 개체가 잠재성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은 단순히 반복적 순환은 아니다. 행성의 주기는 일정하지만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팽창하는 우주와 그 공간의 밀도를 균등하게 유지하는 암흑에너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물리적 변화에서 지구상에 나타난 생명의 생성이 연결되어 있으며 앞으로 어떤 것들이 새롭게 생성될지는 수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발견은 필연이지만 그러나 생성은 필연 가운데 나타난 우연이고 이 필연과 우연이 만나서 새로운 관계의 장을 형성한다. AI가 나타난 것은 컴퓨터의 등장 이후 예견된 것이지만 이렇게 빠르게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때론 위협적인 도구로서 때론 충실한 조력자로서 생성될 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