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그레이프: 제2의 탄생
1. 육체와 마찬가지로 정신도 자라야 한다.
성장소설은 교양소설(Bildungsroman)이라고도 하며 이는 주인공이 그 시대의 문화적 혹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에 이르는 사이에 자기를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이를테면 자신을 내면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소설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성장소설로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다.
성장소설과 마찬가지로 성장영화 역시 청소년기의 방황과 갈등을 주제로 자아의 정체성 찾거나 혹은 성숙한 인격이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영화이다. ‘길버트 그레이프’ 역시 ‘개 같은 나의 인생’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와 같은 일종의 성장영화이다. 모든 청소년들은 그들의 육체적 성장의 이면에 정신적 방황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몸이 자라는 만큼 인격이 따라서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은 이제 성년식을 치루나 정신은 여전히 미숙하다. 그러므로 몸에 맞는 정신으로 청소년들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대표적인 성장소설 ‘데미안’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알은 일차적 탄생이다. 그리고 알에서 새가 되는 것은 바로 이차적 탄생이다. 일차적 탄생은 모체에서 복제되어 나온 것이지만 이차적 탄생은 기존의 세계를 깨트려야만 가능하다.
2. 새롭게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육체적 탄생은 운명적인 것이다. 운명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이다. 남자 혹은 여자 그리고 나아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부모나 내가 자라게 된 환경 역시 일종의 운명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어떤 기존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
모든 사람은 일차적으로 자기가 자란 환경 혹은 문화에 지배를 받는다. 육체는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유전적으로나 아니면 후천적으로나 육체는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환경을 부정하거나 초월하려고 한다.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이 가지 반항의 심리는 자기가 처한 어떤 환경이나 문화에 대한 부정의 심리이다.
주위의 환경이 열악할수록 청소년은 더욱더 반항적이 되거나 아니면 냉소적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그러한 내면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존의 세계를 파괴할만한 새로운 가치관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가벼운 일탈만을 행하고 내면 깊이 불만과 불안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역시 ‘제임스 딘’이 그의 영화에서 행하였던 것처럼 반항적 행위를 쉽게 표출하지는 못한다.
3. 새것이 와야지만 낡은 것이 파괴된다.
알의 내부에서 새가 자라면 알은 저절로 파괴된다. 그러나 새 집을 짓지 않고 헌 집을 파괴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예술가는 일부러 자신의 집을 파괴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집이 있으면 안주를 하게 되고, 안주를 하면 창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집을 가지지 않고 평생 여행을 하면서 길 위에 사는 사람도 있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반항적인 인물도 예술적인 인물도 아니고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청년 가장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 즉 가족에 대한 의무감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항상 새것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있다. 이런 동경은 표면적으로 볼 때 새로운 물건의 소유에 대한 욕구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이 욕구는 자신의 새로운 삶에 대한 희구인 것이다.
베키의 등장은 길버트 그레이프의 인생에 새것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 집이 오면 낡은 집은 파괴되어야 한다. 낡은 집을 상징하던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게 되고 그레이프 가족들은 그런 어머니를 낡은 집과 함께 화장한다. 이제 어머니의 죽음과 낡은 집의 파괴는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4. 낡은 집과 달리 새 집은 움직이는 집이다.
길버트에게 베키는 어머니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집이며 새로운 세계이다. 베키는 캠핑카를 타고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베키와 베키의 그런 이상을 실현하는 캠핑카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 두 상징이다. 우리 인생에 두 가지 종류의 집이 있듯이 루소가 말하는 두 가지 종류의 탄생이 있다. “우리는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 다른 한 번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태어난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제2의 탄생을 맞게 된다. 사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수동적으로 매몰되어 있던 정신, 자아, 인격은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첫발을 디디게 된다. 이 첫발은 루소식으로 표현하면 사람으로 살기 위한 ‘제2의 탄생’을 의미한다.
제2의 탄생을 통해 존재가 아니라 인격이 창출된다. 그리고 이 인격은 생물적 생존이 아니라 인간적 삶을 영위하는 주체이다. 자기의 내면에서 확인되고 또 형성된 자기의 삶만이 바로 인간의 삶이다. 그러므로 제2의 탄생 이전에 살았던 길버트의 삶은 그것이 비록 가족애에 의한 삶이라 하더라도 주체적 삶이 아니었다. 주체적 삶이란 갇힌 삶이 아니라 열린 삶이며 고정된 삶이 아니라 변화하는 삶이기에 길버트가 만난 새 집은 움직이는 집이다. 그리하여 길버트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니가 우린 안 떠나냐고 묻길래, 원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