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속으로: 원시반본(原始返本)
1. 연어와 인간
연어와 인간의 공통점은 회귀본능이 타 생명체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남대천의 연어는 알래스카 베링 해협까지 수천 키로의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산란을 위해 모천(母川)으로 회귀하여 생을 마친다. 인간 역시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찾아서 끝없이 여행하는 일종의 회귀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어에게는 모천의 기억이 뚜렷한 반면 인간에게는 모천 즉 근원에 대한 기억이 연어만큼 분명하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육신의 부모나 관습적인 문화가 자신의 정체성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젊은이의 방황이 시작된다.
만약 부모의 양육만으로 혹은 기존의 체제에 대한 교육만으로 젊은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방황하는 청춘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서 꾸준히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듯이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에” 인간에게는 중생(重生) 즉 거듭남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젊은이들은 집을 떠나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2. 로드무비
목적지가 분명한 여행이 있는가 하면 정처 없이 떠나는 여행도 있다. 대체로 사람들이 무작정 떠난 여행도 사실 알고 보면 내면적 동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존재 이유 혹은 존재 가치를 찾기 위함이다. 로드무비는 바로 이러한 내면적 동기에 기인한 여행을 소재로 다룬 영화이다.
감독 숀 펜은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라는 청년의 짧은 일대기를 소재로 '야생 속으로(into the wild)'란 제목의 로드무비를 완성하였다. 로드무비란 대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여행의 형식을 통해 만든 영화 장르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로드무비로서는 ‘삼포 가는 길’이나 ‘고래사냥’ 그리고 ‘세상 밖으로’ 등이 있으며 해외에서는 ‘이지라이더’ 나 ‘아이다호’ 혹은 ‘파리 텍사스’ 등이 있다.
대개의 로드무비에서 집이나 직장은 기존의 체제, 문화, 관습, 가치를 상징하고 길 위에서의 여행은 부정과 반항 혹은 비판 또는 모색을 상징한다. 따라서 길 위에서 여행을 계속하는 주인공은 무엇인가 새로운 가치를 찾아서 헤매는 과정 속에 있는 인간의 삶을 의미한다. 그런데 ‘야생 속으로’의 주인공은 집의 반대편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야생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로드무비와 그 시대적 배경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3. 야생의 의미
자연(自然, nature)이란 말이 포괄적으로 모든 생명의 원천 혹은 근원이라는 말로 사용되는 데 비해 야생(野生, wild)이란 말은 주로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문명과 대립적인 영역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감독이 자연이라는 말 대신에 야생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기존의 서구 문명이나 문화 혹은 제도에 대한 일차적 거부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의 여행은 자기가 속한 세상을 완전하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한시적으로 택한 방황이며 방랑이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더 깊이 자연 속으로 들어간 결과 주인공은 점차 자신의 내면과 일치하는 야생의 상태를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이 마지막 기착지로 택한 알래스카는 단순히 미개발지역이 아니라 연어의 모천처럼 인간의 존재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고 또 발견할 수 있는 그리하여 누구나 결국은 회귀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자연 혹은 원초적인 자연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영화가 가지는 기본적인 구도는 근원과의 화해이다.
4. 근원과의 화해
여행이 계속되면서 주인공이 방황하는 일차적 원인이 바로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로 말미암은 것이란 사실이 드러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일차적으로 바로 부자 문제 혹은 가정문제에서 발단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이 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단순히 부모의 잘못된 만남 때문에 방황을 택했다는 것은 일종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기에는 주인공의 능력이나 지성은 많은 문화적 혜택을 받아서 성장된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여행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 속에서 부모와의 심리적 화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주인공의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그가 죽기 전에 발견한 ‘나눔의 가치’에 관한 것이었다.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이 평범한 말이 그가 마지막으로 책에 적은 글이다. 이제 영화의 관점은 야생-자연에서 다시 인간-사회로 환원된다.
사람은 결국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야생 속에서 발견했다면 그리고 야생 속에서 철저하게 격리되어 산 결과 발견하였다면 나아가서 야생 속에서 죽어가면서 발견했다면 이 깨달음은 주인공이 자신의 일생을 진지하게 방랑에 던져서 거둔 유일한 열매일 것이다.
5. 원시반본(原始返本)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이 인간은 존재 의미의 근원으로 회귀하려 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떠나고 문명을 떠나 산속으로, 자연 속으로, 야생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사람의 존재 이유를 자연이 아니라 어떤 사회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그런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