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 읽기 1-1:의미의 지도 1

프로로그 1

by 박종규

“지옥에 내려가시어"


"누군가가 어떤 보편적인 문제에 골몰해 있다면, 그 문제를 진정으로 체험했을 터이며 그 고통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그로써 그는 우리를 대신해 자신의 삶에서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고,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 줄 것이다."


나는 흔히 말하는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 성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보수적인 개신교 예배에 참석하셨지만 독단적이거나 엄격한 신앙인은 아니셨다.


그럼에도 대대로 전해 내려온 기독교적 도덕관은 우리 집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 있어 가족 규범과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내 유년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고, 중산층 사회의 규칙과 규범은 본질적으로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정규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기독교적인 규칙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고 따랐다.


내가 열두 살 무렵에 어머니는 나를 정식 기독교인이 되는 관문인 입교 교육에 등록시켰다. 나는 입교 교육이 싫었다. 한 번은 목사님께 성경의 ‘창세기와 진화론’을 어떻게 조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목사님은 그런 고민을 해 보기는커녕 마음속으로는 진화론을 더 그럴싸하게 여기는 듯했다.


안 그래도 입교 교육을 그만둘 구실을 찾고 있던 내게 이 일은 결정타가 되었다. 나는 종교란 나약하고 무지해서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 길로 교회에 발길을 끊고 현대 문명의 세계로 합류했다.(10-11쪽)

한국의 국민일보에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았다. 1. 교회 밖에 대하여 자나치게 방어적이다. 2. 젊은이들이 기독교에 대한 경험이 얕다. 3. 교회는 과학에 대하여 적대적이다. 4. 성에 대한 교회의 지식이 단순하거나 율법적이다. 5. 기독교는 배타적이다. 6. 의심하는 사람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이상의 이유 말고도 교회를, 기독교를 더 나아가 종교를 떠나는 현대인도 많을 것이다. 피터슨의 자전적 경험은 현대인 특히 구미인들에게 일어났던 기독교 인구의 감소 요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유물론적 무신론, 과학적 환원주의, 심리학적 무신론, 생물학적 진화론 등은 전통 신앙을 공격하고 그 토대를 무너트린다. 전통적 가치 규범의 근거였던 가치 질서가 흔들리면 개개인은 보다 실존적 고민 혹은 사회적 고민에 휩싸인다.

그렇다면 교회를 떠난 뒤로 내 마음이 흔들렸을까? 그랬다. 그렇지만 아주 미묘한 수준이라 그랬다는 사실도 몇 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교회에 발길을 끊을 때쯤 나는 때 이르게 정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떤 국가나 개인은 부유하고 행복한데, 왜 어떤 국가는 비참하기 짝이 없을까? 나토와 소련은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사람이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벌인 만행과 같은 짓을 저지 있을까? 이런 구체적인 의문들 위에는 조금 더 광범위한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악이, 특히 집단적으로 조성된 악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것.


유년기가 끝날 무렵 나는 그동안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던 가치체계를 버렸다. 이는 곧 내가 성장하면서 눈뜨게 된 존재론적 문제를 이해하도록 도와줄 사회적으로 구축된 보편적 '철학'이 내 안에 없다는 뜻이었다.


철학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를 온전히 깨닫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나는 당시에 품었던 도덕적 의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온건 사회주의 정당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정당의 기본 방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정당에서는 모든 악의 근원을 경제적 불평등으로 규정했다. 이 불평등을 바로잡으려면 사회 조직을 개편해야 했다. 나는 이 찬란한 혁명에 일익을 담당하며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터였다. 의심은 사라지고 내 역할은 명확해졌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의 내가 어찌나 전형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했던지 놀라울 정도이다. 이성적으로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자, 정치적 유토피아와 개인적 권력을 꿈꾼 것이다. 최근 수세기에 걸쳐 나 같이 이념의 함정에 빠진 사람은 수백만 명이 넘는다.


나는 학생 정치인이자 활동적인 당원으로서 여러 좌파 정당 모임에도 참석했다. 나는 사회주의 지도자들을 닮고 싶었다. 캐나다에서 좌파는 명예롭고 긴 역사를 갖고 있고, 진정으로 유능하고 따뜻한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하지만 정당 모임에서 만나는 하급 당원들은 존경심을 갖고 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려고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직업이 없을 때가 잦았고, 가족도, 학교 졸업장도 없이 가진 것이라고는 이념뿐이었다. 그들은 신경질적이고 성마르며 보잘것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 함께 있으면 대학 운영위원회에서 맞닥뜨린 것과는 정반대의 문제가 생겨났다. 신념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들을 도무지 존경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게 됐는데, 이 책은 사회주의 이념뿐 아니라 이념 자체에 대한 내 믿음을 뒤흔들었다.


영국의 좌파 출판사인 브리티시 레프트 북클럽의 청탁으로 쓰였지만 출판사를 낭패에 빠뜨린 이 책의 말미에는 유명한 산문이 실려 있다. 그 글에서 오웰은 사회주의의 치명적인 결점을 설명하며, 사회주의 이념은 실패에서 비롯된 분노와 증오를 감추는 가면이었다. 내가 만난 수많은 당원들은 사회정의라는 이상을 내세우며 개인의 복수 추구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내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하게 된 건 누구 탓인가? 당연히 부유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존경받는 사람들 탓이다. 복수심과 이념적 정의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다니 정말 편리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보다 운이 좋은 부류에게 보상을 받는 게 당연했다. (13-14 쪽)

피터슨이 기독교에서 사회주의로 그리고 당시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던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것은 필자의 시대적 경험과도 유사하다.


오래전에 조지 오웰은 위의 책에서 탄광 노동자의 참혹한 현실과 단지 이념에 사로잡힌 사회주의 운동가의 괴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풍자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한편으로 재현되고 있다.


정말 좌파들은 공동선을 지향하고 있을까? 아니면 대부분의 정략적 정치꾼들이 하듯이 정권욕에 의해 빈곤층 혹은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 정당이 판을 치고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점점 극우 민족주의적 파시즘의 경향을 띠는 현실에 대한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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