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
이 문제는 단지 사회주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이념 자체의 문제였다. 이념의 틀로 보면, 사람은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념의 신봉자들은 불쾌하고 용납되기 어려운 자신의 환상과 소망을 이념으로 가린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자 사회주의 이념은 물론, 이념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더불어 그 이념을 바탕으로 세운 인생 계획도 흔들렸다. 이를테면 더 이상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가려낼 수가 없어졌다. 누구를 지지하고 누구에게 맞서 싸워야 할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태는 단순히 철학적인 문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나는 기업 변호사가 되고 싶었는데, 이에 따라 로스쿨 입학시험을 치르고, 2년짜리 로스쿨 예비 과정을 수강한 터였다.
사회주의에서 적으로 간주하는 기업의 생리를 터득한 뒤에 정치계에 입문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 세상은 변호사가 한 명 더 있든 없든 별 차이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더 이상 나 자신이 지도자가 될 만큼 세상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14-15쪽)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사유재산제를 악으로 여겼다. 그는 사유재산제가 철폐된다면 계급이 사라질 것이고 그 이후는 당연히 만인이 평등한 미래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제도에 의해 많은 부를 소유한 소위 유산자 계급의 저항이다. 그러므로 악은 제도에서 계급으로 전환되고, 계급투쟁이 선악의 대결로 인식된다는 점에 있다.
누군가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해서 그가 악한 것은 아니다. 부자가 정당하게 부를 축적했다면 그는 악인이 아니다. 하지만 계급투쟁의 이분법으로 보면 만일 그가 사유재산제를 고집한다면 그는 노동을 착취하는 자이며 동시에 사악한 자이다.
사실의 모순이 가치의 모순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제 자연스럽게 진영이 나누어진다. 당신은 계급적으로 혹은 이념적으로 어느 편인가? 초기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너무 단순하게 진영과 계급의 차이를 부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사회 정치적 관계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특별히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의 내부는 더 복합적이다.
동시에 당시 전공이던 정치학에도 환멸을 느꼈다. 정치학을 택한 건 인간의 신념 체계를 배우고, 앞서 언급한 대로 정치계에 입문하기 위해서였다. 정치학은 2년제 대학에서 정치 철학의 역사를 배울 때까지만 해도 아주 흥미로웠다.
하지만 앨버타 대학으로 편입한 후에는 흥미가 싹 사라졌다. 정치학에서는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인간의 신념과 행동은 경제적 동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충분치 않아 보였다. 상품, 예를 들어 '천연자원'에 내재적인 가치가 있다는 말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렇다.
상품에 내재적인 가치가 없다면, 그 가치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 혹은 개인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나는 상품의 가치란 어떤 사회나 문화, 개인이 받아들인 도덕 철학의 결과로 결정된다고, 다시 말해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16쪽)
최초의 근대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도덕철학 교수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그의 주저 ‘국부론’은 ‘도덕감정론’이라는 저서 이후에 나온 책이다.
이기적 개인이 어떻게 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인간이 가진 공감능력을 이야기한다. 공감의 감정에 위해 이기적 개인들의 이윤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이란 시장 질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피터슨이 이야기하는 천연자원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도덕적인 문제라는 것은 앞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경제적 가치를 도덕적인 것이 어떻게 매김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