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포 Aug 16. 2024

골프여왕 엄마의 우울증

8년 직장생활 끝에 찾아온 달콤한 휴직 기록 3

번잡스러운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월요병 증세가 진짜 심했었는데, 이제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평화로운 월요일 오후,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는 도통 전화할 일이 없었는데 문득 무슨 일이 있지라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빠는 잘 지내냐는 안부인사와 함께 어제 엄마의 골프 얘기를 꺼냈다. 어제 엄마와의 통화에서도 시무룩한 목소리를 느꼈었는데 “패션도 꽝, 골프도 꽝”이라는 아기 같은 투정을 웃어넘겼었다. 

엄마가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50대가 들어서부터였는데,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골프였지만 버디, 이글, 홀인원 못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골프를 잘치셨다. 그리고 골프를 치러 때마다 골프실력뿐 아니라 패션까지 엄청 신경쓰셨는데 패션이 맘에 안들면 그날 골프 컨디션에도 영향을 받으실 정도였다. 그러던 엄마도 60대가 넘어서고부터는 골프 호황기가 지나고 실력에 침체기가 생기기 시작되었다. 더군다나 같이 골프를 치러가는 50대 다른 아주머니들의 젊음과 실력을 부러워하게 눈치였다. 침체기를 끊고 다시 한번 나아가야 계기가 필요해보였다.

아빠 말로는 골프를 치고 온 어제저녁부터 엄마가 너무 우울해하니, 당장 향상할 수 없는 골프실력은 제쳐두고, 패션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당장 백화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패션 취향도 잘 맞고, 서로서로 어울리는 옷을 잘 골라주는 쇼핑메이트이기 때문에 아빠가 긴급 sos를 한 것이다. 하지만 한낮 밖은 어두컴컴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오늘은 어렵지 않을까라고 에둘러 거절했지만 아빠는 끈질기게 오늘 꼭 가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을 해왔다. 그럼 경기도에 있는 백화점에 가지 말고 서울 중심가의 No.1 강남 백화점을 가자고 얘기하였고, 오늘 말고 내일 가자고 설득했다. 아빠는 못내 아쉬워하면서 엄마한텐 아빠가 전화를 한 것을 비밀이라고 하면서 엄마한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전화해서 쇼핑 얘기를 해보라는 부탁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바로 엄마한테 전화하니 역시나 우중충한 장마 날씨처럼 엄마 목소리도 풀이 죽어있었다. 쇼핑가자라는 얘기에 엄마는 쇼핑 갈 때 입을 옷도 없다고, 귀찮다고, 안 가도 된다고 하였지만, 기분전환이나 하자고 나만의 엄마 기분 풀어주기 스킬을 총출동해서 내일 우선 엄마집으로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운전연수 겸 남편을 회사까지 태워다 주면서 엄마집으로 곧장 갈 계획이었는데, 막상 일어나니 몸이 찌뿌둥하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비구름이 가득한 날씨가 운전하는 데에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오늘 가기로 했잖아 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예전 같이 운전을 못할 때라면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걸리는 거리를 쉽게 가지 못했을 텐데, 새삼 스스로가 대견한 마음으로 남편을 회사에 내려주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아빠도 출근하고, 엄마도 운동 나간 빈집에 나 혼자 거실에 드러누우니 이만한 휴양이 없었다. 우리 집의 3배가 넘는 집 크기에, 산으로 둘러싸인 경기도 외곽 아파트라 마음이 확 트이고 서울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는 집에 있다가, 산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거실에 누워있으니 잠이 저절로 들었다. 반쯤 정신이 깨어있는 반수면 상태였지만 그래도 나른한 기분을 느끼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꿀맛 같은 시간은 엄마의 전화로 끝났다. 지금 이제 수영강습이 끝났으니 바로 집으로 간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샤워를 재빨리 하고 머리를 말리고 있으니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가자.”라는 말과 함께. “엄마 어디로?” 나는 어제까지 엄마가 백화점이든 서울이든 가기 싫다고 완강하게 얘기해서 오늘 엄마집에 와서 설득을 하려는 마음이었는데 당장 가자고 하니..그럼 어디로? 라는 말이 바로 나와버렸다. “네가 말했던 강남 백화점” 이렇게 엄마가 바로 얘기하자 나는 “너무 좋아”라는 말과 함께 초스피드 외출준비를 끝냈다. 엄마와의 외출에서 추레한 모습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 백화점에 갈 때에는 더더욱. 최소한의 화장이라도 해야 엄마 체면이 사는 느낌이다.

우리는 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제일 빠른 길로 백화점에 도착했다. 1시 30분쯤 된 애매한 시간이라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밥과 커피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을 생각했다. 엄마는 젊은 얘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하였지만, 그렇다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정말 젊은 애들로 가득 찬 곳은 안된다. 음식의 맛이든 분위기든 새로운 곳이면서도 어느 정도 분위기와 매너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나는 재빨리 브런치 레스토랑으로 엄마를 데리고 갔다. 나이스 타이밍으로 우리는 마지막 남은 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웨이팅도 엄마의 기분을 망칠 수 있으니….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산물 파스타와 파니니, 디카페인 커피를 시키고 분위기를 탐색하는데 엄마는 음식점이 고급스러워서 좋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 또는 부잣집 아주머니들이 많이 자리한 분위기였다. 서울 커피맛은 역시 다르다는 엄마의 우스갯소리와 함께 한바탕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엄마가 대뜸 셀카를 찍자고 한다. 한 번도 엄마가 셀카를 찍자고 한 적이 없었는데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다.

추측하건대, 엄마와 나는 이효리가 엄마와 함께 단둘이 여행 가는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거기서 이효리 엄마가 처음에는 늙은 모습이라 사진을 찍기 싫어하다가 점점 여행이 무르익자 이효리가 불어준 자신감과 칭찬으로 이효리 엄마는 사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 건가… 연결고리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사진을 찍자고 했고, 우리는 여러 장의 셀카와 음식 사진을 찍었다. 물론 엄마가 계속 찍으라고 했다. 원래 그런 적이 없었는데 엄마도 나와의 데이트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하긴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나는 종종 백화점 데이트를 즐겼고, 딱히 뭘 사지는 않더라도 둘이서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자체의 시간을 즐겼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난 이후에, 내가 서울로 이사를 온 이후에는 엄마집과의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생겼던 것인가. 이런 데이트 시간이 많지 않았었구나 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우리는 명품매장인 1,2층은 건너뛰고 3,4층을 샅샅이 훑으며 엄마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랐지만, 정말 없었다. 이상하게 엄마는 다른 아주머니들이 어울리는 옷들이 왜 이리 안 어울리는지,,, 그렇다고 젊은 애들이 입는 옷도 아닌 건데…그 중간 사이 엄마한테만 어울리는 옷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포기할 때쯤 아빠가 퇴근하고 백화점으로 합류했다. 하나도 옷을 못 샀다는 얘기를 듣자 아빠도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젊은 애들이 많이 찾는 해외수입편집숍 브랜드 매장에 발걸음을 멈췄다. 특이한 옷이었는데 엄마하고 잘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입어보면 또 다르기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은 듯이 엄마한테 입어보라고 권했다. 다행히 엄마가 오늘 입은 치마와 한 브랜드인 것처럼 찰떡인 탑이었다. 매장 직원은 너무 친절하게 이 옷이 프랑스에서 수입한 옷이며, 특이한 어깨모양 등 세세한 부분을 설명해 주며 지금 40% 세일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마지막 피스라고 귀띔해주었다. 엄마의 표정이 다시 밝아지면서 우리는 그것으로 골랐고, 매장 직원은 옷을 열심히 봐주는 아빠가 정말 자상하고 보기 좋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돌아가는 길에 하얀색 리넨같이 편하지만 고급스러운 투피스를 발견하였고, 그 옷 한 벌까지 득템하여 백화점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장장 4시간 동안의 쇼핑이었지만 정말 엄마한테만 어울리는 옷을 사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기뻤다. 나는 내 차를 끌고, 엄마와 아빠는 아빠차를 타고 각각 집으로 향했는데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피곤이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 3년쯤 지났을 때인가 엄마는 아빠가 네가 결혼하고 아빠가 우울증을 2년 동안 앓았다는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늘 가정에 헌신하고 자상한 아빠였지만 그래도 자주 얼굴도 보고 밥도 먹었어서 결혼 후에 허전함을 느낄 거라고 생각을 못했었다. 그때부터 엄마 아빠를 조금씩 걱정했는데 다행히 미국에 8년 동안 있었던 친언니가 코로나로 인해서 마침 한국에 귀국하였고, 엄마 아빠 곁에 언니가 그래도 2년 동안은 함께해 주었다. 그러던 중 언니도 작년 말에 결혼을 하면서 올해부터는 진짜 엄마 아빠 단 둘이 되었다. 다시 아빠와 엄마가 걱정되기 시작했었다. 엄마 아빠 둘이서만 지내면 그 큰집이 적적할텐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연락을 자주 하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 엄마 아빠가 예전처럼 맡이 다투지 않고 여가생활도 하며 잘 지내시는 것 같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아빠가 엄마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종종 얘기하기 시작하였다. 아빠는 엄마의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건 할 수 있는데 해결해 주는 것까지는 많이 어려운 것 같았다. 그때마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월요일 전화가 그중에 하나였다. 그때마다 나는 아빠의 걱정도 덜어주고 엄마의 문제도 해결해주려 하였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특히 회사에 다닐 때에는 더더욱.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역시 이래서 딸이 필요하구나 생각도 하면서…. 그럼 아들도 없는 아빠는 어떻게 마음을 풀어나가는지 문득 의문도 들었다. 이번 휴직기간에 그동안 못했던 데이트를 엄마와 아빠와 더 많이 하면서 지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장롱면허 탈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