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신체검사 그리고 최종합격
면접 합격 후 지원자는 채용후보자로 선정된다. 최종합격자 선정을 위해 신원확인과 자격사항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1년 동안 문명세계 밖에서 지내며 병원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정밀신체검사도 받아야 한다. 참고로, 서류전형에도 간단하게 질병과 처방약에 관한 문항이 있다.
꽤 신속하게 진행이 됐다. 면접 합격 당일 극지연구소 기지운영실에서 전화가 왔다. 먼저 면접 합격을 축하해 주셨고 그다음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신원확인 및 자격사항 검증을 위해 병적증명서, 학위증명서, 주민등록본 등의 서류들을 2025년 5월 16일까지 등기우편으로 제출해야 했다. 신체검사 날짜 조정을 마친 후 인천 가천대 길병원에서 2025년 5월 13일 예약이 잡혔다. 검진이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니 지방에 거주하는 후보자들은 출장신청도 가능하다.
인천에서 먼 곳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날 인천으로 올라가 길병원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일정이 바쁘고 잠을 잘 못 자면 피검사나 소변검사에서 약간 뒤틀린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중요한 건강검진인 만큼 최대한 숙면을 취하고 가야 했다. 숙소 체크인 후 가볍게 이른 저녁을 먹고 침대에서 책을 보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덕분에 검사 당일 컨디션은 좋았다. 피검사, 위내시경, 간단한 치과 검진, 엑스레이, 소변검사, 운동부하검사 등이 진행됐다. VIP 검사라 그런지 간호사 한 분이 항시 옆에서 안내해 주셨다. 여러 검사로 건물 간 이동이 많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신기했던 건 운동부하 검사다. 서른이 넘었으니 건강검진을 몇 번 받아봤지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검사다. 상체 곳곳에 측정 기기를 붙이고 러닝머신 위에서 할 수 있을 만큼 계속 뛰는 것이다. 점점 속도와 경사를 올리며 최대심박수를 측정했다. 평소에 달리는 걸 좋아하는데, 내 스마트 워치는 실시간 심박수가 나오지 않는다. 애플 워치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스트라바 유료구독을 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내 평소 심박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다른 러너들과 대화하다 보면 심박수가 꽤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마침 달릴 때의 실시간 심박수가 궁금해지던 참이었다.
한 21분 정도 뛴 것 같다. 중간중간 간호사 한 분이 스피드와 경사를 수동으로 올려주셨고 내 심박수 데이터를 프린트하셨다. 검진복이 완전히 땀으로 흥건했다. 심박수는 180까지 올라갔고 총 거리와 경사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더 뛸 수 있었지만… 피도 뽑아야 하고 내시경 수면 마취도 받아야 하니 이쯤에서 끝냈다.
중간중간 나와 같이 간호사님을 따라다니시는 검사자 한 분이 더 계셨다. 알고 보니 장보고 과학기지 13차 해양분야 채용후보자였다. 검사 결과 브리핑을 받을 때 세종 39차 대기과학 채용후보자와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간단한 인사와 대화를 나눴다. 장보고 기지에서는 생물대원과 해양대원이 실험실을 공유하고 협조 업무도 있다. 그래서 하계기간 기지에 체류인원이 많을 때는 같은 숙소방에 배치된다. 우리는 건강검진 때 처음 만나 같이 최종합격되어 지금은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검진 결과는 2주 뒤 카카오톡으로 수령했다 (5월 말). 결과는 딱히 나쁘지 않아 안심했다. 그러다가 6월 16일, 기지운영실에서 허리 재검 요청이 왔다. 전문의에게 허리 정밀검진을 받고 진단서를 받아 연구소에 보내기만 하면 됐다. 남극에 의료대원이 동행하지만 모든 의료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연구소에서도 채용후보자의 건강에 대해 확실히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내 나이대에 흔히 보이는 허리질환이라 전문의 진료를 받고 진단서를 신속하게 보내드리는 것으로 해결됐다.
그리고 드디어 7월 23일, 극지연구소에서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월동연구대 최종합격 연락을 받았다. 채용공고에 따르면 6월 말에 최종합격 연락을 준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어떤 이유로 늦어진 것 같다. 나도 늦어진 최종합격 소식에 걱정이 좀 됐는데, 문자를 받고 안심했다. 이제 남극행이 확정된 것이다. 축하 메시지와 함께 향후 (잠정) 일정을 보내주셨다. 직무교육, 소양교육 및 발대식, 극지적응훈련, 출국 예정일 등이다. 중간중간 개인짐 보내기와 월동대 모임 등의 준비과정이 있다. 절차가 많은 걸 보니 역시 사람이 극지로 가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채용이 됐으니 설렘에 궁금한 게 많아졌다. “다른 17명의 대원들은 어떤 분들일까? 모두 전문분야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매우 다를 텐데 고립된 환경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어떤 준비를 하면 될까? 미생물학 외에 극지 연구 논문을 두루두루 읽어봐야 할까? 체력적으로는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 남극에 관해 어떤 대중서적과 전문서적이 있을까?”
이제 출국까지 약 3개월 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