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월동연구대 지원 2️⃣

면접심사 TMI

by 국제방랑청년

2025년 3월 17일 서류접수를 완료하여 4월 8일 서류합격 연락을 받았다. 워낙 뛰어난 지원자가 많을 것 같아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는데, 일단 1차 합격 소식을 받으니 기뻤다. 다음 전형은 온라인 인성검사 및 면접전형이다. 날짜 통보를 받고 참석여부를 결정한 후 4월 14일까지 온라인 인성검사를 완료해야 했다. 인성검사는 약 30분이 소요되는 간단한 절차였다. 4월 15일에 연구소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면접심사는 2025년 4월 24일 목요일 오후 3시 이후에 인천 송도의 극지연구소에서 잡혔다. 당일 2시 45분까지 신분증과 학위증명서 사본을 가지고 도착하면 된다고 했다.

바로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면접이 평일이기 때문에 스케줄을 조정한 뒤 고속버스표를 예매하고 인천 송도에 전날 숙소를 예약했다.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서 인천까지 꽤 걸리기도 하고 면접날 서울에서 일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전날 이동을 하고 면접 당일에 아침운동과 식사를 하고 여유롭게 연구소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준비는 내가 쓴 자기소개서와 직무기술서 내용을 바탕으로 예상 질문 및 답변을 노션(Notion)에 작성하면서 했다. 내 석사논문과 과거 경력을 각각 20 ~ 30초 이내로 설명할 수 있게 서술했고 그동안 극지 미생물학 논문도 읽으면서 관심 있는 연구 또한 발췌 및 요약해 놨다. 서양고전 석사과정에 관한 질문 및 답변도 준비했다. 서류를 작성했을 때처럼 극지와 나의 접점을 최대한 간결하고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서류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 포스팅(남극 월동대 지원 - 서류심사 편)을 참고 바란다.


송도달빛축제공원역 근처에 숙소를 예약했다. 연구소와는 대중교통으로 약 30분 정도의 거리다. 면접 전날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서 고속버스를 탔다. 요 며칠간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한 나에게 생애 두 번째 프리미엄 버스를 선물(?)했다. 프리미엄 버스는 모든 좌석이 플라스틱 박스 안에 설치되어 있어 뒷사람에게 피해줄 걱정 없이 의자를 마음껏 젖힐 수 있다. 요즘에는 비행기나 버스의 좌석을 젖히는 것으로 마찰이 많다고 한다. 면접 전만큼은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프리미엄을 예약한 것도 있다. 좌석마다 커튼도 구비되어 있어 약간의 프라이버시도 보장이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좌석 뒤편에는 테이블도 있어 약간의 업무도 가능하고 커피를 두고 마실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만 원 더 투자하고 4시간 동안 아주 편한 여정을 즐길 수 있었으니.


오후 5시쯤 숙소 체크인을 하고 근처 샐러드집에서 연어샐러드를 픽업해 왔다. 샤워를 하고 면접 실전연습을 간단히 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7-8시간의 충분한 수면 후 아침 러닝을 다녀왔다. 10 km 러닝을 계획했는데 길을 잃어 12 km를 뛰어버리는 변수가 있었지만… 심박수를 한 껏 올리고 땀을 쭉 빼니 긴장도 풀리고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아침식사로도 좋아하는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이보다 더 개운한 아침이 있을까…

1시간 미리 연구소에 도착했다. 출입증(신분증과 교환)을 받고 대기실로 입장하기 전 미리 준비해 둔 청심환을 먹었다. 아침 러닝으로 긴장은 어느 정도 풀렸지만 혹시 면접관들 앞에서 다시 긴장이 올라올까 봐 걱정이 되어 사 왔다. 대기실로 입장하니 사람이 꽤 많다. 수트를 차려입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지원자들을 보니 실감이 확 나기 시작했다. 입구에는 간단한 다과와 물이 제공되었다. 물병을 하나 집어 들고 자리에 앉아 마음을 추스르면서 대기했다.


일찍 온 덕분에 앞의 지원자들이 면접을 보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온 시간을 계산할 수 있었다. 면접 시간은 15분 정도인 듯하다. 질문은 몇 개를 할지, 면접관들은 어떤 분들 일지, 어떤 압박질문이 들어올지… 초조해진다. 내 바로 앞의 지원자가 오지 않아 담당자가 나를 불렀다. 이제 내 차례다.


면접실에는 총 다섯 분이 계셨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세종과 장보고기지 대장님 각각 한 분씩, 연구소 박사님, 그리고 인사담당자 한 분씩과 좀 떨어진 책상에서 노트테이킹을 하신 분. 면접실 문을 열던 순간에는 긴장이 꽤 많이 됐는데 인자해 보이시는 면접관님들 덕에 꽤 마음이 놓였다. 과연 타이머로 15분이 세팅되어 있었고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질문은 10개 내외였던 것 같다. 지원 동기, 월동대 업무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석사논문과 연구소 근무 등의 연구 경력, 관심 있는 극지 연구, 기지의 공동 업무, 고립된 환경에서의 나, 월동 때의 생활에 관한 질문을 하셨다.


고립된 환경에서 연구뿐 아니라 12 ~ 13개월을 함께 지내야 하다 보니 질문이 위와 같이 매우 다양했다. 선발 기준은 나도 잘 모르지만, 면접에서 중요한 건 아무래도 인성인 것 같다. 물론 자신의 연구와 하고 싶은 연구를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점은 기본으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연구경력이나 과거 논문등은 서류전형에서 자세히 설명해 놓았고 서류로는 한 사람의 인성을 알아내기는 매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여기에서 난 해군 함정근무 경력과 해외생활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 인터넷과 전화가 잘 되지 않고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생활을 한 적이 있어 문명 세계와 차단되었을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할 수 있었다.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함정근무를 할 때 나는 선, 후임, 동기들과 마찰이 거의 없었다. 몸이 힘들었기 때문에 서로 챙겨줬고 휴대폰과 보드게임이 없어도 웃으면서 재미있게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협소했고 개인 공간은 커튼 친 침대 말고는 전혀 없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예민해지지 않고 지냈다니.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이 중요하고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있는 2020년대에는 상상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남극에서 한 달 정도의 생활을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유튜브는커녕 인스타 스토리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느린 인터넷과 3 ~ 4인실을 쓰면서 개인 공간을 확보하기 힘든 환경에서 사람들은 금방 적응하는 것 같다. 나도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즐겨보던 사람이었지만, 이들이 없는 생활을 꽤 즐기고 있다. 생활 면에서는 슬라이드 폰을 쓰던 중학교 시절로 돌아온 듯하다. 나도 모르게 SNS와 쇼츠에서 몰려오는 온갖 자극들에 지쳐 빠져나오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소중한 경험을 남극에서 하게 되는구나.


(다시 면접으로 돌아와서) 15분의 면접동안 꽤 분위기가 좋았다. 긴장해서 입장해 웃으면서 퇴장할 수 있었다. 홀가분하고 느낌이 좋았지만, 마음을 비우고 다소 초조하게 기다렸다.


소식은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왔다. 4월 29일. 면접을 본 지 5일 만에 합격 문자가 왔다. 이 소식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뻤다. 될 줄 몰랐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을 받다니. 아직 건강검진이라는 최종전형이 남아있지만 힘든 과정은 다 끝났으니까. 평소에 건강관리도 잘하고 있어서 건강검 전형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4월 29일은 내 둘째 조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조카가 태어나고 3 ~ 4시간 뒤에 합격 소식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생과 조카가 모두 건강한 것도 너무 감사한데 좋은 소식이 또 와서 기쁨은 배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각각 8개월과 4살이 돼 가는 조카들를 생각하면 1년 동안 못 놀아주는 게 많이 미안할 뿐이다… 삼촌이 월동 끝나고 많이 놀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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