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구의 끝으로 가는 길

by 국제방랑청년

남극과 연을 맺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극지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희박했다. 내 일상, 연구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고 어차피 갈 수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극지는 나와 별로 상관없는 곳이었고 내 일상에서는 관심을 크게 유도할만한 기폭제는 없었다.


그나마 ‘지구의 끝‘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정도가 극지와 나를 이어주는 얇은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주 뜻밖에 극지 연구를 접했다. 독일에서 토마토 식물뿌리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에 관한 석사논문을 마쳐갈 무렵이었다. 그들의 전장유전체 분석을 하다가 동종의 전장 유전체가 한국의 극지연구소에서 학계에 보고됐다는 걸 알았다. 이 세균이 남극에도 살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 극지를 연구하는 곳이 있었나?” “게다가 미생물 연구를 한다고?”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남북극 여러 생물 연구를 비롯해 빙하, 해양, 대기, 우주과학 등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박사로 바로 가지 않고 몇몇 실험실에서 석사 후 연구원이나 인턴으로 일을 할 연구소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극지연구소에 바로 연락을 했다. 그렇게 석사 졸업 후 극지연구소의 미생물 생태 실험실에서 짧게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극지와 인연이 되어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월동연구대 생물대원으로서 1년 동안 일하게 되었다. 미생물이 지구 끝으로의 길을 내게 터준 셈이다. 이와 더불어서 내 우주생물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남극에 대한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런 모험을 여행이 아닌 전공을 어느 정도 살려서 올 수 있었다는 게 영광일 뿐이다.


남극 여정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극지탐험 및 연구를 하는 우리 인간들에게도 흥미를 가지게 됐다. 극지 탐험 초기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오는 것 자체가 위험이 크다. 지금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위험도는 현저히 낮아졌지만 여전히 극지로 오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그토록 우리를 끌어당기는 극지의 매력은 무엇일까? 극지만의 미묘한 아름다움일까? 혹은 활동에서 나오는 경제적 가치일까, 아니면 극지 여정에서 얻는 영광과 영예일까?


나를 남극으로 끌어당긴 것은 새로운 경험과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다. 운이 좋아 지난 10년간 타국 생활을 하며 매우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사춘기 때보다 더한 격동과 혼란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 문화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가족들과 현지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 덕분에 어찌어찌 그 시기를 잘 이겨내고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이 경험이 30대의 나에게 아주 탄탄한 기반을 준 것 같다. 20대 중반 때는 꽤 두렵게 느껴졌던 인생의 무게가 지금의 나에게는 압박이 훨씬 덜하다. 그래서 남극 월동연구대에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원했다. 남극에서 1년 동안 버틸 수 있음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큰 성장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위에서 짧게 언급한 우주생물학과 극한 미생물에 대한 연구적 흥미다. 프롤로그에서는 이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후일 포스팅을 따로 하나 하려고 한다.


위의 질문을 인간 전체의 범위로 넓힌다면, 답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직 입남극한지 불과 19일밖에 되지 않아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아직은 남극의 모든 게 신기할 때다. 남극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느낀 거는 이 고립감이 주는 상쾌함, 고요함, 해방감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빙산책과 등산을 가면서 감탄하는 대자연과 그에 대한 경이로움은 살면서 느낄 기회가 별로 없다. 극지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감동할 때 내가 인간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남극 월동연구대 생활은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얻은 배움과 여정을 이 브런치북에 기록하려고 한다. 2026년 12월 월동이 끝날 때쯤에는 위의 질문에 어느 정도 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