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정상 현장 연구 지원과 천문학과 박사과정생 쫑
크리스마스 휴무에 남극인들은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2025년 마지막 날까지 남극에서의 연구는 계속된다. 2025년 12월 31일, 월동연구대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다. 멜버른 화산 우주과학 현장연구 지원과 연말 야외 바베큐 준비다 (개인업무도 물론 해야 한다).
장보고 과학기지의 핵심 연구 분야 중 하나는 우주과학이다. 기지는 지자기극에 인접해 있어 우주에서 오는 다양한 형태의 많은 물질들을 관찰하기 좋다. 장보고 과학기지의 우주과학자와 천문학자들은 기지 근처에서 제일 높은 (2,733미터) 멜버른 화산 정상에 타워와 기계를 설치해 이 물질들을 모니터링한다. 대만에서 온 천문학 박사과정생 쫑이라는 친구는 우주에서 오는 뉴트리노(neutrino)라는 물질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쫑과 함께 이 타워들의 점검과 추가 설치를 위해 월동연구대에서 생물대원인 나와 우주과학대원이 현장 지원을 다녀왔다.
2025년 마지막 날 멜버른 화산 정상의 온도는 영하 17.5도에 풍속은 17노트(31 km/h)였다. 심지어 돌풍이 불면 20노트(37 km/h)까지 풍속이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극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접근이 가능한 여름에 주기적으로 점검 및 확인을 해야 한다. 타워를 지지하고 있는 로프의 강도를 점검하고 약하면 탄탄하게 더 조여준다. 그리고 타워 베이스에 쌓인 눈을 제거하기도 한다. 인공위성과 연결된 기기는 두꺼운 방한 박스 안에 들어 있는데, 이들도 하나하나 열어 신호상태를 확인한 후 테이프로 다시 잘 밀봉해야 한다. 바람에 날아가는 걸 대비해 추가 고정 작업도 필수다. 별거 아닌 작업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남극에서는 매우 고된 작업이다. 춥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코와 입을 막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숨쉬기가 힘든 멜버른 정상에서는 이 작업이 더 고될 수밖에 없다.
미생물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이런 천문학 연구가 참 신기했다. ”우리 눈으로 잘 볼 수 없는 미생물보다 훨씬 더 작은 물질들을 연구하는 과정이 이렇구나…“하면서 쫑이 작업하는 걸 바라봤다. 기기와 타워 설치를 하고, 인공위성과 연결이 되면 휴대폰으로 해당 물질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미생물학자들도 극한 지역에 토양의 유기화학물질과 상태 등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로거를 설치하고 그 주변의 토양을 채집해 연구를 한다. 막상 중요한 미생물 군집은 기지에서 전처리와 실험, 컴퓨터 분석을 거칠 때까지 알 수 없다.
멜버른 화산 정상에서만 약 두 시간을 작업했는데, 너무너무 추웠다. 사진을 찍으려고 10초만 장갑을 벗어도 손이 얼 것만 같았다. 더 추웠던 (영하 20도) 날에도 무려 5시간 현장작업을 한 쫑이 정말 대단해 보일 뿐… 다시 헬기를 타고 타워를 설치할 만한 곳을 정해 작업을 마치고 기지로 복귀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원래 예정 복귀시간은 12시에서 1시쯤이라 점심을 따로 준비해 가지 않았다. 작업이 길어지는 바람에 점심을 거른 상태였다. 다행히 셰프님들이 우리를 위해 식사를 남겨두셔서 우주과학대원과 쫑과 따뜻한 점심으로 몸을 녹였다. 휴대폰 앱을 통해 새로 설치한 타워에서 데이터가 잘 나오고 있다며 흡족해하는 쫑을 보니 우리도 뿌듯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연구를 우리에게 설명해 줬다.
다시 한번 남극 월동대 경험이 참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내가 평소에 잘 접할 수 없는 과학 연구에 참여할 수 있고 현장에 있는 과학자들에게 무한 질문 공세를 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일 뿐이다. 이게 바로 월동연구대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남극에 오길 참 잘했다.
쫑은 나와 동갑내기 박사과정생이다. 2025년 12월 10일 남극에 들어와 2026년 1월 3일에 떠났으니 한 달 정도 남극에 체류하며 연구활동을 했다. 장보고 과학기지의 하계기간 동안에는 외국인이 꽤 있다. 현재는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인도, 대만에서 온 연구자와 헬리콥터 조종사, 엔지니어들이 체류하고 있다. 그래도 쫑은 유일한 동북아시아 외국인으로서 생활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항상 웃으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 왔으니 우리 전통놀이에도 이해가 빠르고 우리말도 조금씩 배우며 기지생활에 잘 녹아들었다. 그런 쫑은 우리 젊은 대원들이 좋아했을 뿐 아니라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에게도 예쁨을 받았다. 쫑과는 최근에서야 많이 가까워졌는데, 초반부터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12월 중순에는 공동업무가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다 보니…라는 핑계를 대면서… 아무튼 이 친구에게 많이 배웠다.
글을 쓰고 있는 당일, 중국 쇄빙선을 통해 쫑을 포함한 많은 하계연구원들이 남극 장보고기지를 떠났다. 한 달 반 동안 그들의 연구지원을 나가고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같이 보내니, 헬기로 올라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월동연구대원들은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