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의 첫 번째 야외 바베큐
2025년 12월 31일 월동연구대의 두 번째 임무(?)는 연말 야외 바베큐 준비 및 바베큐를 즐기는 것이다. 하계연구대 22명의 출남극이 사정상 지연되어 예정보다 많은 인원이 기지에서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남극이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같이 생활을 하고 연구활동 지원을 나가면서 그들과 정이 많이 들었는데, 2025년 마지막 날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오늘은 우리 월동연구대에게도 아주 특별한 날이다. 겨우 한 두 달 남짓의 짧은 남극생활이지만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입남극, 인수인계, 연구활동, 쇄빙선 아라온호 보급과 연구물품 하역, 주변기지와 교류 등 여러 지원 및 활동으로 정신없이 2025년의 마지막 두 달을 보냈다. 그때는 내 생활을 돌아볼 정신조차 없었다.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같이 남극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나를 보면 참 인복이 많은 것 같다. 7월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들과 일하게 될까 걱정이 꽤 컸는데, 8월 월동연구대 첫 모임, 9월 직무교육, 10월 소양교육 및 발대식 그리고 극지적응훈련을 같이 받고 같이 남극 생활을 시작한 지금은 사람에 대한 걱정은 거의 없다. 남극과 같은 고립된 환경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중요한데 다행이다. 다들 너무 열심히 일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며, 취미도 비슷해서 어울리기 좋다.
다시 바베큐 얘기로 돌아와서, 지난 화에서 언급한 천문학 박사과정생 쫑과 13차 우주과학 대원과 멜버른 화산에 다녀와 늦은 점심을 먹으니, 다른 대원들이 바베큐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마늘을 좀 까고 고기와 반찬을 옮겼더니 바베큐 먹을 시간이 다 됐다. 대장님과 총무님의 짧은 격려 및 축하 말씀이 있고 다 같이 고기를 즐겼다. 한국에서도 가끔 삼겹살을 즐겼는데 여기서는 고기가 워낙 귀해 통 못 먹고 있었다. 연말이기도 해서 고기가 마침 먹고 싶던 참이었다. 점심을 늦게 먹었는데도 계속 먹었다. 눈 속에서 자연보냉된 주류도 같이 즐겼다. 같이 고생한 사람들끼리 즐기니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신다. 남극에서의 모든 순간들과 추억들이 고스란히 바베큐의 맛에 녹아들어 아주 복합적인 맛이 났다.
바베큐 파티 후 2차로 식당에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남극 야외 바베큐라 너무 오래 있으면 춥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번거로워져 안전상 이렇게 일정을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은 새해를 맞을 때까지 기다릴 사람들이 많을 테니 평소에는 늦어도 23시까지 반드시 끝내야 하는 술자리가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대장님이 특별히 허락해 주신 것이다. 바베큐 파티 뒷정리를 하고 본관동에 돌아오니 고국의 가족들과 이탈리아에 있는 여자친구가 생각난다. 평소 같았으면 한창 연말을 같이 보내고 있을 텐데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가고 싶어도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에 있다. 따뜻한 밥 한 끼 대신 영상통화로 만족해야 한다.
마침 오늘은 인터넷이 풀리는 날이다. 고국의 가족들과 친인척들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도록 기지의 통신대원님이 며칠 전부터 인터넷 사용량을 제한하고 2025년 마지막 날에는 평소보다 높은 속도로 풀어주신 것이다. 평소에는 카카오톡 메시지도 보기 힘들고 페이스타임과 페이스톡은 꿈도 꿀 수 없어 인스타그램으로 겨우겨우 영상 통화를 한다. 통신대원님 덕에 오늘은 안 끊기고 페이스톡이 잘 되어 가족들과 통화하기 좋았다. 기회다 싶어 부모님 뿐 아니라 조카들, 친척들과 조부모님께도 영상통화를 걸어 새해 인사를 드렸다. 1년 동안 남극에 간다고 출국 전에 잘 챙겨주셨는데, 지난 두 달 동안 인터넷 사정으로 사진은커녕 연락도 제대로 못 해드려 죄송했었다. 남극의 하계기간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모든 하계연구원이 귀국하고 18명의 월동연구대만 장보고 기지에 남는다. 그때는 인터넷이 꽤 빨라질 테니 사진도 많이 보내드리려고 한다…
남극에서의 내 첫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연말은 참 따뜻하고 즐거웠다. 황량한 사막과 같은 남극에서도 이런 연말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차가운 빙하 위에서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한 따뜻한 이야기가 피어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