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호 4: 남극에서 2026년 새해를 맞다

남극에서의 새해는 어떨까?

by 국제방랑청년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의 새해는 다소 늦은 오전에 시작되었다. 2025년의 마무리가 새벽까지 이어져 늦잠을 자는 대원들이 많았다. 오늘도 크리스마스 당일과 같이 각종 대회로 가득하다. 크리스마스 대회에 우리 전통 놀이를 조금 추가했다. 2:2 스타크래프트, 오목, 당구, 알까기, 제기차기, (국자와 밥그릇 등 랜덤 채로 하는) 탁구 단식전과 (본인의 탁구채로 하는) 복식전이 있다. 상품은 한국 쇄빙선 아라온호 퍼즐, 문구류, 생활용품, 추가 주류 (맥주) 등 다양하다. 그리고 각자의 자존심이 걸린 대회. 대원들은 점심을 먹기 전부터 제기차기와 스타크래프트 등 몸풀기에 들어갔다.


대회 접수는 이렇게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었다. 시간상 여러 대회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식당 여기저기서 볼거리가 쏠쏠했다. 당구장은 중장비동(본관동에서 도보로 약 5분)에 있어, 식당의 한쪽 끝에 있는 스크린으로 당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고, 그 앞의 테이블에서는 스타크래프트, 식당 중앙에서는 제기차기, 오목, 알까기 등이 진행되었고, 다른 끝에서는 탁구경기가 있었다.


월동대 대원 한 명씩 각 대회 진행을 맡았다. 난 스타크래프트 팀전, 알까기, 오목, 제기차기에 출전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연구반장님과 한 팀으로 출전했다. 크리스마스 대회 때보다 출전 팀이 얼마 없어 운 좋게 우승했다. 지난 대회에서 우승/준우승을 한 종목이 하나도 없었고… 가끔 친구들과 즐기는 스타크래프트의 예선에서 떨어져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우승을 한 번이라도 해서 다행이다… 다른 종목은 압도적으로 발렸다(?).


스타크래프트 예전전에 들어간 기상대원과 전기설비대원
슬리퍼가 당첨된 인도 출신 연구원

대회의 성적은 아래와 같다:

알까기: 유지반장님 (압도적으로 우승), 캐나다에서 오신 헬리콥터 부조종사 (준우승)

제기차기: 유지반장님 (우승), 월동대장님 (준우승)

오목: 대기과학 대원 (우승), 하계연구원 (준우승)

랜덤채탁구 단식: 빙하팀 (우승), 인도에서 오신 빙하 박사과정생 (준우승)

스타크래프트 단체전: 연구반장님과 나 (우승), 기상대원과 전기설비대원 (준우승)

당구 단체전: 공사팀 (우승), 기상대원과 헬리콥터 부조종사 (준우승)

탁구 복식: 기상대원과 대기과학대원 (우승), 통신대원과 쫑 (준우승)


대회로 분주한 장보고 과학기지


장보고 기지는 아주 크지는 않지만, 하계 때는 각자 일이 바쁘다 보니 다른 팀들과 교류를 활발하게 하지는 못한다. 크리스마스와 새해의 각종 대회가 교류하기에 참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또 승부욕도 생겨 재미도 더하고 (이번 기회에 각 종목 연습을 좀 더…) 일상생활에 굉장한 기분전환이 된다. 이렇게 장보고 과학기지의 새해 대회가 마무리되었다. 남극에서의 새해도 역시 북적북적하고 바쁘게 지나갔다.


남극에서 새해 그리고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은 나에게 어떨까? 일단 처음으로 ‘일출이 없는 새해’를 맞았다. 백야라 해가 지지 않아 일출이라는 게 없다. 해가 뜨고 지는 게 있었다면 근처 봉우리로 아침 일찍 해돋이 등산을 갔을 텐데, 이 점은 아쉽다. 게다가 (남반구가 처음이기 때문에) 새해를 겨울이 아닌 여름에 맞았다. 그렇다고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밖을 활보할 수 있는 날씨는 아니지만… (기온은 영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흔히 보이는 참새와 귀여운 반려견 곁을 떠나 펭귄과 물범의 곁에서 새해를 맞았다. 가끔은 연구활동을 위해 헬기를 타고 기지로부터 멀리 떠나 대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있다. 연구 장비와 연구원들이 타고 온 헬기 말고는 생명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극도의 황량함과 고립감을 감상할 수 있다. 옆 사람과 말을 하지 않으면 바람소리 말고는 소음이 전혀 없다. 사람이 없어도 새소리와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문명권의 자연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미생물 전공자로서 팩트 폭행을 하자면) 미생물로는 가득하겠지. 기술 발달로 미생물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내 귀가 연구 장비만큼만 좋았어도 소음이 가득할 것이다. 하긴, 이러한 연구장비가 없어도 (눈을 한 움큼 먹으면) 내 면역세포들은 여기에도 미생물로 가득하다는 걸 알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이 무생명으로 가득한 이 얼음대륙에서는 오직 인간의 감각기관에만 의지해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 생명의 경계에 대해 사색하기 참 좋은 곳이다. 조만간 백야가 끝나고 극야가 찾아오면 은하수와 오로라로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몇 달을 보낼 예정이다. 남극은 지구 자기장이 수렴하는 곳이라 우주의 고에너지 입자가 지구 대기에 있는 산소와 질소 등과 만나고 충돌한다. 이 현상이 우리에게 오로라로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지구와 우주의 상호작용을 보면, 지구상에서 우주와 가장 가까운 곳은 아닐지라도 가장 맞닿아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곳에서 새해를 보낼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영광스러울 뿐이다. 짧게나마 여러 연구활동을 하다 보니 남극에서의 새해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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