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월동연구대 여정의 시작

2025년 8월 월동연구대 연구반 첫 모임

by 국제방랑청년

최종합격 소식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반 모임 공지가 있었다. 월동연구대 전체가 모이기 전 시간이 되는 연구반 대원들끼리 간단하게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겸사겸사 올해 진행될 연구에 대해 얘기도 한다고 한다. 출국 3개월 전, 인천 송도의 한 식당에서 시간이 안 되신 기상대원님을 제외한 연구반 전체와 월동대장님과 총무님까지 오셨다. 마침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기계설비 대원 중 한 명도 참석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벌써 5개월 전이지만 기억이 생생하다. 식당에 들어갔을 때는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긴장이 꽤 됐다. 처음 월동대장님을 뵀을 때는 금방 알아봤다. 면접관 중 한 분 이셨기 때문이다. 총무님은 이날 처음 뵀다.


처음 직장 동료를 만났을 때는 어색함이 도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1년 동안 남극에서 함께 살며 일할 직장 동료 이상으로 만났기 때문에 느낌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여기서 누군가와는 방을 같이 쓰게 될 것이고, 같은 사무실을 공유할 수도 있으며, 직무가 비슷할 수도 있었다. 서로에게 궁금한 점이 많아 보였지만 첫 만남이라 다들 말을 아끼는 듯했다. 다행히 대장님과 총무님을 비롯하여 장보고 혹은 세종 과학기지 월동경험이 있는 분들이 몇 분 계셨다. 모두가 궁금했던 월동기간의 소소한 이야기를 해주시며 분위기를 풀어주셨다. 처음 남극에 가는 대원들로서는 안심이 됐다. 사실 연구반에서는 연구반장님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처음이었다. 연구반장님은 연구소에 오랫동안 근무하시면서 장보고 과학기지 월동은 물론 하계연구대로 남극 경험이 이미 상당하셨다. 특유의 차분함과 부드러움으로 우리를 잘 이끌어 주실 것 같았다. 대장님과 총무님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자리에 있었던 기계설비 대원 또한 세종 월동 경험이 있어, 이 분들에게서는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대학교 때부터 분자생물학이나 생화학 전공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다 보니 다른 전공자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대장님의 본업은 대기과학 연구, 우주과학대원, 생물대원 (나), 해양대원, 지구물리대원 (연구반장님), 그리고 대기과학대원이 이렇게 모이니 처음에는 모두 적응이 잘 안 되는 듯했다. 맛있는 저녁과 맥주를 먹으면서 얘기가 트이니 서로의 분야에 대해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매우 흥미로웠다. 이전 화에서도 언급했을 테지만, 남극 월동생활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1년여 시간을 같이 지내면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도 남극에 온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서로 연구 지원을 나가면서 배운 것들이 참 많다. 극야 때는 일이 좀 줄어들기 때문에 같이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도 가지기로 했다.


2차로 시간이 되는 분들끼리 가볍게 맥주 한 잔도 했다. 좀 더 깊은 대화로 이어졌다. 월동 때 목표나 하고 싶은 것들, 남극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 준비해야 할 것들 등등 첫 만남임에도 할 얘기가 많았다. 역시 월동 경험이 있으신 분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한국에서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어 남극에서의 생활이 풍족해지지 않았나 싶다. 다들 성격이 너무 좋아 보였고 취미도 비슷한 사람이 꽤 많았다. 남극 생활에 대한 느낌이 좋았다.


이렇게 남극 장보고 13차 월동연구대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첫 만남이라 아쉽게도 찍은 사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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