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밤이 찾아올 장보고 과학기지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의 1월과 2월은 여전히 연구활동으로 분주하다. 특히 1월 말에서 2월은 기지 앞바다의 해빙이 녹고 바다가 열리는 시기이기 때문에 바다에 나갈 일이 많다. 월동연구대 해양대원이 할 일이 굉장히 많고 수중 탐사팀과 해도제작팀도 바다에 자주 나간다. 월동연구대는 하계 연구 지원 임무가 있기 때문에 모두 지원을 많이 나갔다. 생물대원인 나에게도 이 시기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바로 미생물 연구를 위한 토양 시료 채집과 pH, 온도, 광합성 광량, 수분함량 등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는 로거 유지/보수를 하는 일이다. 한국에 보내기 위한 전처리도 해야 해서 낮에는 동료 2명과 함께 샘플 채집과 로거 보수를 하러 기지 주변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새벽까지 실험을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야간당직을 서는데 놀랄 정도로 해가 꽤 낮아져 있었다. 달도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지평선에 걸쳐져 있는 태양과 달이 좀 잘 보이는 게 무슨 대수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남극 장보고 기지의 여름은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백야 상태가 계속된다. 해가 지평선에 가까워졌다는 건, 백야가 곧 끝나가고 24시간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가까워짐을 의미한다.
항상 있던 해가 저물어가니 기분이 묘하다. 남극은 공기가 워낙 맑고 건물 같은 인공 장애물도 많이 없다 보니 날씨가 좋을 때는 시정이 매우 좋다. 인공 빛이라고는 별로 없는 남극에서 시력에 의존하는 우리에게는 태양빛의 존재감이 매우 크다. 장보고 기지 주변을 밝혀주던 빛이 점점 사라지면서 조금 을씨년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수면에도 악영향이 있을 것 같다. 해가 24시간 떠있다고 해도 워낙 야외업무가 많아 피곤한 데다가 침실 커튼을 3중으로 치면 잠이 잘 온다. 주 1회 밤을 새우는 야간 당직 근무를 쭉 했지만, 수면 패턴에는 별로 영향이 없었다. 극야가 오면 야외업무도 줄어들고 눈에 태양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잠을 못 잘 것 같다. 비타민D 영양제는 다행히 많이 챙겨 왔다.
그러나 기대되는 점도 많다. 우선 문명권에서는 보기 힘든 은하수와 오로라를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날씨가 허락하는 한에서) 약 4달 동안 질릴 만큼. 이렇게 생각하면 4달 동안 태양빛을 못 본다고 크게 아쉬워할 것도 없는 것 같다. 그의 입자가 지구의 대기와 충돌해 생기는 ‘오로라‘라는 다른 형태로 우리 눈으로 들어올 테니. 수천억 개의 별들과 오로라가 극야 때는 큰 위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