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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Oct 07. 2022

코로나의 추억 2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시국과 함께한 코로나

2020년 3월 7일. 한국보단 늦지만 이곳(파라과이)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등장했다. 올 것이 왔구나..! 철렁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락다운 결정이 내려졌다. 3월 11일. 4일만의 급박한 결정이었다. 갑자기 내려진 결정에 도시는 숨죽였고, 가게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됐다. 직원들은 출근할 수 없었고, 매출은 반토막 정도가 아니라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집 밖으론 나갈 수 없었고, 경찰들은 도처에 깔렸다.


코로나 이전. 우리 가게는 연일 손님으로 북적였다. 가게 밖까지 늘어선 손님들로 입구는 한여름에도 닫혀있을 새가 없었다. 다양한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먹을 수 있기에 손님들은 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랬던 가게가, 코로나가 터지고 나니 거짓말처럼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되버렸다. 


그 때의 난 매일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현실인지도 모르게 앞이 캄캄하다보니 정말 현실이 꿈이라고 믿어버리게 됐던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믿었어야만 했다. 누군가 몰래카메라 같은 걸 들이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처절하게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다가 꿈이 계속 꿈이라고 생각하다보니 깨고 싶어졌다. 유쾌하지 않아서 그런것도 있지만, 외면하지 못할 현실이 다가오고 있어서였다. 현실은 냉혹한 느낌이 아니라 그냥 냉혹함 그 자체다. 차가운 게 아니라 시린 거다. 시리다 못해 아린 거다.  


직원 월급을 줘야 했다. 코로나로 삶이 위태해진 직원들은 나보다 더 어둡고 무서운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고, 현실을 왜곡되지 않게 또렷하게 보게 됐다. 그리곤 움직이게 됐다. 


맨 처음으로 한번도 해보지 않은 배달을 시작했다. 그동안 넘쳐나던 손님들을 직접 찾아가야 했고, 그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배달업에 대해 공부할 시간도 없었다. 그냥 시작했다. 다행히 오토바이가 있는 직원이 있었고, 그것으로 처음 발을 뗄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도 시작하고, 들어오는 주문은 마다하지 않았다. 찬밥 더운밥 정도가 아니라 생사의 기로에서 선택은 사치 같았다. 주어진 모든 일을 닥치고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 코로나는 다행히 운전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오토바이 배달과 더불어 식자재 구매를 담당하는 가게 차량으로 배달을 다녔다. 스타렉스 봉고차여서 배달로는 부적합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쨔까리따(한국으로 치면 판자촌. 슬램가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해서 현지인들도 꺼리는 곳이다)에도 배달을 갔다. 한참 후에 얘기지만 인간 코로나는 다행히 웃으며 그 때를 회상했다. 어쩐지 분위기가 싸하더라..!


배달만으로 이전 수준의 매출 회복은 어려웠다. 그래도 다행히 직원 월급은 챙겨줄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던 숨통이 조금은 트였다. 그렇게 3월, 4월 두 달이 지났다. 


페리아도(Feriado, 공휴일)로 한창 들떠있어야 하는 5월이지만 코시국의 짙은 그림자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던 그 때. 또 다시 코로나 맥주!가 등장했다.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뻑뻑한 하루에 지쳐가고 있었는데, 코로나 맥주가 덜커덕 오페르똔(oferton! 파격 할인)을 실시한 것이다. 편의점 한가운데 위풍당당 자리한 코로나는 710ml짜리 큰 병 하나가 5,000과라니, 채 1000원도 안되는 놀라운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 홀린듯 2박스(박스당 12개, 그러니까 총 24개)를 사버렸다. 명분도 좋았다. 가게에서 팔아도 되니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냉장고 가득 코로나를 채웠다. 그리곤 마셨다. 다 마실 생각도 없었지만 남길 생각도 없었다. 오늘만큼은 코로나의 위로를 진하게 받으리라! 벌컥벌컥! 코로나는 망설임 없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곤 기억이 없다. 그날 밤 나와 인간 코로나는 그 2박스를 모두 비웠다. 코로나를 비워서 내 몸에 채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 몸을 스스로 코로나로 가득 채워버렸다.


다음날.. 그 2박스를 다 마셨다는 사실에 경악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대로 위력을 발휘했고, 어김없이 가게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코시국을 관통하고 있었고, 현재를 부딪히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고 있었다. 전진해야만 했다. 코로나는 그렇게 바이러스로서 전진을 막아서기도, 나의 영원한 동반자로서 그 전진을 진전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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