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울했는지 그 시작이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우울은 오래다. 혼자 살고 싶다는 마음, 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다음날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들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몰랐고, 가끔씩 감정들이 크게 솟구쳐 올라와 나를 괴롭혔다. 그런 경우는 보통 어떤 사건들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 나를 가장 오래 괴롭게했고 지금도 이따금 괴롭히는 사건은 나를 길러준 외할아버지와 부모님의 갈등이었다.
어릴때 나는 외가에 잠시 맡겨졌던 때가 있었고 부모님이 외가 인근으로 이사와 정착한 뒤로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항상 우리집을 오가며 우리 자매를 돌보셨다. 나에게는 사실 어떤 대가없이 사랑을 준 그분들이 부모님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되지 않아 병으로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혼자가 되셨다. 틈이나면 동생과 함께 외가에 놀러가서 그냥 앉아서 외할아버지와 TV를 같이 보거나 저녁을 먹고 돌아오곤 했고 그게 돈없는 살갑지 못한 손녀인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드디어 직장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아버지는 잠깐 우리집에 기거하셨다. 처음엔 부모님도 신경써서 돌봐드리는 듯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게 어그러졌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말들로 인해 정말 누구의 잘못인지는 혼란일 뿐이었다. 그저 분명한 것은 그 뒤에 부모님은 외할아버지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기 시작했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나와 동생이 받은 정신적 고통은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저 외할아버지가 이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서 편히 살 공간에 머무시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갈등 속에서 우리는 그저 무력하게 눈과 귀를 닫았고 끝없이 죄책감에 빠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외할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나는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면서도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나자신이, 그리고 부모가 끔찍하게 원망스러웠다. 부모님을 이해하려던 모든 노력을 포기했다.
몇 년 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만나뵈려고 한다면 그전에도 뵈러갈 수 있는 방법은 있었을 것이지만 모든 것을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왜 나를 외면했냐고 할아버지가 물으신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랐으니까.
그 어느때보다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나를 길러준 분을 외면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외면받는다한들 할 말이 있을까. 오랜 우울감이 이제 나를 완전히 동여매어 조여온다는 걸 느꼈다.
상담을 받기 시작하고 정신과 약을 처방받으면서 강박과 극도의 우울감은 점차 나아져갔다.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수면 아래 잠겨있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끔 물결이 크게 흔들릴 때마다 다시 올라오고 올라오고. 나를 방어하고 감싸는 마음과 나를 비난하고 질책하는 마음이 싸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서 언제쯤 우리는 놓여질 수 있을까. 어쩌면 더 긴 세월 나는 나의 오랜 우울들과 함께하며, 싸우며 그렇게 버티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