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룡마카세

고명에 관하여

by 안성룡

고명: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서양의 음식에서는 잘 찾아보기 어려우나, 한국에서는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동네 백반집의 뚝배기에도 기사식당 불고기에도 어슷 썰은 대파나 통깨가 올라가 있다. 특히 궁중음식에서는 정갈하고 깔끔하게 손질된 계란 지단, 실고추, 잣가루 등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런 고명이 오로지 맛과 색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동남아시아가 아닌 타 문화권의 요리에서도 일반적인 기법이었어야 할 것이다.


고명은 '이 음식은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라는 상징성을 부여한다. 누구도 이 음식을 더럽히지 않았으며, 오직 당신의 첫 수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중국의 영향으로 유교문화가 일반적이었던 동남아시아에서는 연장자가 첫 술을 떠야만 했으며, 이를 증명하는 좋은 장치가 고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 정갈하고 아름다운 고명을 헤집어 놓을 수 있는 자. 폭력적인 권력이다.


고명의 상징성을 가지는 장치가 재밌게도 코로나와 함께 다시 발생하였다. 배달용기에 붙은 안심 스티커이다. '이 배달음식은 아무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놀랍도록 동일한 목적성이다. 다만 타인에 대한 존경심이 아닌 의심에서부터 출발한 행위이다. 혹시 스티커를 떼어냈다 다시 붙였다면 어쩌냐고? 무슨 상관인가. 여러분은 안심하고 맛있게 먹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모두 행복할 것이다. 그것이 고명이다.


이런 고명은 한식에서 빠질 수 없는 기법으로, 현재 한식조리기능사 실기 시험에도 빈번히 요구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며, 다른 재료와 섞이지 않아 온전히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요리사의 기본적인 요리 실력을 가늠하기에 아주 좋다. 고명끼리의 길이나 두께가 맞지 않거나, 계란 지단에 색이 나거나 하면 바로 감점이다. 양식조리기능사 수업을 모두 듣고 한식조리기능사 수업을 듣는 중,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고명이다. 솔직히 맛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데, 손질하기는 너무 어려워서 한풀이로 쓰는 글이다. 고명하신 선생님의 고명은 예술인데, 나의 고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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