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갈라치기 방어법?

망상

by 동욱

우리는 통합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실제로 인간은 통합을 통해 가혹한 위기들을 버텨왔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인들은 철저한 분열을 통해 이득을 본다.

영남과 호남, 남성과 여성, 기성세대와 청년.


세상을 반으로 나누고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면 결속력은 다져지고 표는 인력에 이끌리듯 쉽게 모여진다.

이 달콤한 갈라치기의 맛을 본 정치인들이 나서서 사회를 꿰매줄까?


비가 새는 지붕을 가진 사람이,

“비가 많이 오네.. 빨리 그쳤으면..”하는 것과 다를게 없지 않은가?

비가 그치기를 바라지 말고 지붕을 고치는게 현명하다.


하지만 개인의 힘과 지성으로는 이미 망가진 지붕을 고칠 수 없다.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이미 찢어진 천을 억지로 엮어서 너덜거리는 걸레가 되느니

아예 천을 수십 만 개의 실로 분해해 버리면 어떨까?


사회가 둘로만 나뉘어 있을 때는 양측의 거대 정당이 엄청난 힘을 얻는다.

51%만 차지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사회를 2개가 아니라 100개, 1,000개 그 이상으로 나아가며 갈라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건이면서 원자력 발전소를 반대하는 20대 페미니스트 여성

비트코인에 투자하면서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40대 남성


이런 ‘극단적 갈라치기’에서는

그 어떤 정치인도 단순한 혐오 선동이나 흑백 논리만으로는 다수의 표를 얻을 수 없다.

각 부분의 세력이 너무 작아졌기에 혼자서는 아무 힘을 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매번 각기 다른 소수 집단들을 설득하고, 양보하고,

복잡한 이해 관계를 구성해야 한다.


절대적인 권력과 절대적인 혐오가 사라지는 셈이다.


물론 이 방법을 쓰면 사회 구성원들이 흩어져 극도의 개인주의와 외로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서 사회적 합의가 멈춰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다.

거대 권력이 세상을 나누어 조종하며 자기 배만 채우는 짓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갈라진 사회야말로 독재를 막아서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갈라치기의 끝은 소멸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모일 수 있고, 언제든 다시 흩어질 수 있는 모래와 모래성 같은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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