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
어느 날 아침
전화가 잠이 덜 깬 듯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2년 전쯤 졸업한 제자였습니다.
“아이고 승주”
“살아 있었구나! 잘 지내지?” 귀찮은 듯 덜덜거리는 전화에 대고 고함을 쳤습니다.
“선생님, 저 군에 가요.”
그렇고 그런 영혼 없는 문답이 몇 차례 오간 후 승주는 느닷없이 ‘군’을 내뱉었습니다.
“엉! 군대”
“네”
.....
“고생하겠구나.”
“아니에요, 선생님”
“아무리 편해졌다 해도 군대는 군대잖니”
“군복의 무게가 만만찮을 텐데”
“아이고, 학교도 다녔는걸요. 이미 훈련은 마친 거나 마찬가지예요.”
“학교보다 힘들겠어요.”
...
자퇴
예, 영, 단, 규, 미,…, 린! 린! 린은?
이름을 부르다 한 아이의 이름 앞에서 턱 막혔다.
자퇴란다.
“몰라요.”
왜?라는 질문 뒤에 따라붙는 남은 아이들의 거친 답변
이유를 알 수 없는 친구의 자퇴, 그러나 그 결단만큼은 부럽단다.
정교하고 교묘하게 고안하고 측정한 숫자의 울타리에 갇힌 아이들
그 숫자의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하는 아이들
교문을 나선 그 아이의 앞날을 응원한다.
누구나 다녀야 하는 의무가 된 곳
오늘의 삶을 걸고 내일의 풍요를 기대하는 곳
나아지고, 높아지고, 많아지는 환상 속에서 비정함과 반동적인 게임이 작동하는 곳
원치 않는 자리에 앉아 있기 불편했으리라.
원치 않는 이야기 듣기 불편했으리라.
원치 않는 모습 보기 불편했으리라.
학교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을 때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눈앞에 버티고 선 재앙과 맞선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가 “학교는 모든 사람을 체계적으로, 또 근본적으로 노예화한다.”라며 학교 없는 사회를 외친 것은 1971년이다.
오늘 우리의 학교를 돌아보게 하는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