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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Jun 18. 2024

저축

아내의 통장

저축은 

내일에 대한 기대고, 내일을 위한 손짓이며

내일을 위한 관심이다.     


내일의 삶에 대한 참여고, 미지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는 일이며

내일의 안식처를 간절히 바라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내일을 보려는 갈망이고, 어긋난 상태를 바로잡으려는 요구이며

아름다운 인내다.     


겪어 온 상실을 피하려는 의지이고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행위이며

숱하게 찢겼던 희망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다.     





아내의 통장     


아내는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고민에 듭니다.

마치 스님들이 안거에 들 듯 은행 홍보지에 적힌 이율등을 화두로 골방에 틀어박힙니다.

예금이 날지 적금이 유리할지 예금도 적립식이 유리한지 거치식이 더 좋을지….  

     

아내의 통장 수련은 마치 청빈을 서약한 수도자를 닮았습니다.

몸에 걸친 옷은 수년째 변하지 않고 신발도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습니다.  

   

통장을 살 찌우기 위한 아내의 수행은 얼굴마저 소박하게 만듭니다. 

레드, 오렌지, 핑크… 립스틱으로 입술에 힘을 주는 것은 가족의 힘을 빼는 일이고, 스킨, 앰플, 로션, 크림…으로 얼굴을 가꾸는 것은 가족을 팽개치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마트도 아내에겐 통장 수련을 위한 성지입니다. 함부로 들락이지 않습니다. 그냥 가보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물건을 보고 탐심이 동할까 두려워서입니다. 필요한 물건이 쌓이면 그동안 챙겨두었던 마트별 요일별 세일품목을 보고 한 푼이라도 싼 마트를 찾아 성지 순례하듯 마트 순례에 나섭니다.    

  

마트에 들어서면 아내가 꼭 들르는 코너가 있습니다. 유통기한이 가깝고 오래되어 시들고 찌들고 멍든 물건을 저렴하게 파는 판매대입니다.     


“이거 괜찮은데”

“이 정도면 좋은데 왜 여기에 있지?”

“지금 바로 먹을 건데 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치 귀한 물건이라도 발견한 듯 조심스레 카트에 올립니다.   


  



아내가 줄인 욕심은 통장 속 숫자의 몸집을 날로 불립니다. 

그리고 지옥 생활을 닮은 아내의 괴롭고 고통스러운 통장 수행은 가정을 천국으로 이끕니다.   

  

뿐인가요? 가족의 기쁨도 가족의 웃음도 모두 아내의 힘겨운 통장 수행의 결과입니다.

아내의 주린 몸과 비운 마음은 가족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였습니다.     


언제까지라도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이젠 아내가 짊어졌던 고통의 짐을 받아 들어야겠습니다.


가족을 위해 미루었던 바람을 다시 품고 접었던 꿈을 다시 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요. 

그것이 아내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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