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은…

상실은 이기적 삶을 다듬는 따뜻한 손길이다.

by 지금


시간이 없어서라 말하지 마라. 시간을 죽이려 빈둥대는 건 자신이다.

일을 잃었다 가슴 치지 마라. 일이 아니라 의지를 잃은 거다.

그의 떠남을 아파하지 마라. 등을 떠민 건 자신이다.

잃은 자유를 안타까워하지 마라. 자신만의 것으로 독점하려 한 업보다.

사랑을 잃었다 원통해하지 마라. 사랑은 구걸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이 어둡다 불평하지 마라. 마음을 열어 세상을 밝히는 건 모든 이의 의무다.

실패했다 엎어지지 마라. 자신을 만난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다.






상실은 이기적 삶을 다듬는 따뜻한 손길이다.


마음이 허하다.

북적이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소신도 용기도 의지도 열망도 열정도….


다른 생각이 누르고 다른 의견이 지배적이면 내 생각과 의견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그 생각이나 의견에 대한 합리성 여부는 개의치도 않은 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픈 소신이 사라졌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일지라도 사회적 비난이나 불이익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옳은 길을 가로막는 장애를 극복할 의지도 용기도 없어졌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유혹에 저항하지도 못하고 내일이 아닌 오늘의 달콤함에 만족하고 ‘해야 하는 일’을 뒤로한 채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린다. 인생을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도 사라졌다.


이러저러한 소망은 수없이 늘어놓으면서 그를 위한 어떤 의지도 노력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 소망 성취에 대한 간절함도 없어졌다.


삶에 생기와 의미를 부여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만한 대상도 사라진다. 좋은 삶을 위해 찾아 나설 그 무엇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


따짐도 없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이건 이것이 저건 저것이… 옳은지 그른지, 정당한지 아닌지, 참인지 거짓인지 묻지도 않는다. 가치 평가에 대한 관심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상실은 마음에 이타적 씨앗을 뿌리라는 세월의 배려다.


주의력이 없어졌다. 며칠 전 읽었던 책의 행방이 묘연하고 수개월 이 생각 저 생각을 적어 놓은 작은 노트도 종적을 감췄다. 늘 쥐고 살던 빨강 파랑 볼펜이 눈에 띄지 않고 분명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이어폰도 사라졌다. 이것저것 곁을 떠나는 일이 잦다. 그럼에도 어차피 내 물건 아니었던 듯 무심하다.


지난 일에 대한 정서적 감정도 무뎌졌다. 위로였고 기쁨이었던 그녀가 떠난 자리엔 잡초만 무성하고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는 먼지만 날린다. 많은 이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지만 지속할 수 있는 인연의 한계려니 그들의 떠남에 무덤 하다.


수 십 년 세월의 흔적이 깃든 곳에서 오래되었으니 쓸모없다며 떠밀렸을 때에도 으레 그렇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되면 머물던 대합실을 떠나는 이들처럼, 그곳 그 시간 그 삶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는 사회적 판단에 특별히 다른 방식을 고려하지도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다.


거친 고통이 웃음을 집어삼키기라도 한 걸까, 웃어본 기억이 아물 하다. 혼자 웃는 실없는 웃음조차 사라졌다. 매사 시큰둥하다. 관심도 흥미도 없다. 입가엔 한숨이 지배하고 긴 목구멍은 밖으로 뱉지 못한 말로 팽팽하다.

쉼 없던 시선도 발길도 끊겼다. 전화기조차 연중 휴무다. 이 눈길, 저 발길이 들락이던 삶이 어느 순간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로 변했다. 내 눈길, 내 발길도 폐허에 묻혔다. ‘오고 감’의 통로가 바람조차 숨 막힐 만큼 막혔다. 동맥경화다.




이 끝없는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는가?

그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나는 존재다.


상실은 다시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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