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

선생의 필요

by 지금

같은 편이 된다는 건


기꺼이 마음의 짐을 나누는 일이다.

각박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우리가 맞이할 가장 눈부신 풍경을 함께 상상하는 일이다.

운동장 한 편의 평범한 느티나무를 오랜 친구라며 웃으며 소개할 줄 아는 넉넉함이다.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은 결국 축 처진 어깨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일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면 서로의 체온으로 시린 손을 녹이며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일이다.

시간은 때로 더디지만 결국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 달콤한 열매를 선물할 거라 의심 없이 믿어주는 일이다.

그렇게 그의 고독 곁에 가만히 서 있어 주는 일이다.




선생의 필요


언젠가부터 아이들과‘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앓이’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다.


‘나’라는 존재가 구속 없이 기지개를 켜며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곳

숨겨진 재능을 찾아 떠나는 탐험과 모험의 장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다움’만으로 충분히 귀한 곳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도 지지를 받고 서툰 발걸음조차 축복받는 따뜻한 요람

저마다의 영혼이 고유한 빛과 향으로 타오르는 성소


우리가 기대했던 학교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학교는,


등급으로 줄 서기를 강요하고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를 교정해야 할 오류로 규정하고

‘나’에게는 눈을 감은 채 끊임없이 ‘타인’을 바라보라 강요하고

오늘의 설렘을 내일로 모레로 끝없이 유예시킨다.


***


학교가 포기를 배우는 학습의 장이고 꿈을 매몰시키는 무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의 꿈엔 균열이 생기고 결국 조각조각 떨어져 나간다. 아이에게 남은 것은 배움의 경이로움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느끼는 무력한 패배감뿐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다시 가방을 메고 운동화 끈을 조인다. 손과 발이 칭칭 동여매진 채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도 교문을 들어선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라는 사회의 서슬 퍼런 잣대가 무서워서다. ‘어느 학교야?’라며 위아래로 훑어 내리는 차가운 시선이 두려워서다.


***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전사가 된다. 부서져 내리는 자아를 지키기 위한 고독한 투쟁이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해진 마음을 눈물로 씻어내고, 흩어진 꿈의 파편들을 어떻게든 이어 붙이려 사투를 벌인다. ‘누군가’를 흉내 내는 삶이 아닌 ‘나다움’을 찾기 위해 소리 없이 싸운다.


이 싸움은 조각난 꿈의 조각을 줍는 일이다. 세상이 정해 놓은 ‘정답’ 사이에서 ‘나라는 오답’을 당당히 지켜내는 용기다. 무덤 같은 교실에서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오려는 처절한 발버둥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마음을 부여잡고 홀로 견뎌내는 위태로운 분투, 이토록 외로운 아이에게는 지금 ‘아이의 편’이 되어 온기를 나눠줄 누군가가 절실하다.


선생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아이의 고독한 싸움터에 기꺼이 참전하여 함께 비를 맞아주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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