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되는 꿈

억지 꿈

by 지금

꿈은

조금씩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게 만드는 자발적 욕망이다.

자신의 손으로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고 또 파고 또 뿌리고 또 뿌리며 싹이 나오길 기다리는 일이다.


하나의 꿈을 이루고 또 다른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분명 건강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


그런데

내가 아닌 세상이 규정한 좋은 삶에 맞춰 꿈을 조작하고

하나의 꿈을 완성할 때마다 타인의 칭찬 스티커를 붙여 자신을 독려하고

타인이 정해 놓은 꿈의 길을 따라 밤낮없이 평생 쉼 없이 헐떡이며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꿈을 따라 내 호흡에 맞춰 걷는 일 쉽지 않다.




억지 꿈


“자기 주도적인 사람”,“창의적인 사람”,“교양 있는 사람”,“더불어 사는 사람”…. 교육을 주관하는 관청의 문을 열면 화려한 꿈의 수식어들이 객을 맞는다. 찬란한 구호의 향연이다. 인성과 실력, 자유와 평화, 글로벌 인재와 자주인까지 그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눈부신 간판 위에는 어른의 욕망만 어른거릴 뿐 정작 아이는 없다. 관가가 내건 구호는 안개처럼 모호하다.


왜, 어른이 꿈꾸는 아이를 만들려 하는가? 아이의 꿈은 아이가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아이가 펼칠 미래를 어른이 주무르는가? 아이의 꿈에 손을 대는 것은 그 삶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자 다가올 미래에 대한 명백한 훼손이다.

왜, 학교에는 어른의 꿈만 넘실대는가?


어떤 아이로 성장할 것인지는 오직 아이의 몫이다. 보편적 가치를 해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의 삶이든 온전히 허용되어야 한다. 아이의 주인은 아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역할은 아이의 꿈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내일을 기대할 수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어른표 꿈’을 들이미는 것은 아이들의 삶을 조롱하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꿈을 빚게 하고 어른은 그 꿈을 지탱할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옳다.


꿈을 접고, 꿈을 지우고, 가슴을 탈탈 털린 채 꿈 앞에서 절망하는 아이들을 본다. 지금의 학교가 과연 꿈을 꾸고 꿈이 자랄 수 있는 풍토인지, 꿈을 펼칠 수 있는 토양인지 묻고 싶다.


아이의 꿈을 짓누른 채 어른이 만든 꿈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어른의 욕망을 주입하고 아이에게서 어른의 꿈을 키우려는 것은 아닌지 답답하다. 꿈꿀 권리마저 박탈된 환경에서 어른이 외치는 꿈은 헛된 기대이며 기만일 뿐이다.


아이는 어른의 분신도 화신도 아니다. 아이는 그 자체로 독립된 인격체다. 아이 각자가 자신의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어른의 욕망이 점령한 곳에서 아이의 미래는 없다. 그곳엔 아이의 탈을 쓴 어른의 미래만 자랄 뿐이다.


아이는 어른의 꿈을 치장하기 위한 장식용 소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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