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칙이 반칙이 되는 순간
규칙은 보호다.
개성을, 존엄을, 인간성을 지켜준다.
규칙은 막는다.
불안함을, 억울함을, 불공정을 막아선다.
그러나 규칙이 그 본연의 정의를 잃으면 삶의 존엄 또한 사라진다.
교칙이 반칙이 되는 순간
학교는‘해라’와‘마라’라는 명령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촘촘한 그물처럼 펼쳐져 있다.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는 보이지 않는 사슬이 감겨있고 그들의 표정과 말소리조차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거미줄처럼 설켜 있다.
어른들은 이 사슬과 끈이 아이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보호장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독과 억압, 통제와 감시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순간 규칙의 본질은 왜곡된다. 존엄을 잃어버린 규칙은 아이들의 삶을 지키는 울타리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무너뜨리는 흉기가 될 뿐이다.
***
“비밀번호!”홍 선생은 당연하다는 듯 외쳤다. 어떤 거리낌도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채무자를 몰아세우듯 당당한 표정으로 아이를 닦달했다. 강요 끝에 비밀의 문을 연 선생은 아이의 생활을 샅샅이 뒤졌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험한 말들이 쏟아졌다. 아이의 얼굴은 수치심에 빛을 잃었고 어깨는 불판 위 오징어처럼 돌돌 말려 들어갔다. 휴대폰을 제출하지 않은 대가치고는 너무나도 가혹한 값이었다.
비단 휴대폰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 선생 앞에만 서면 아이들은 발가벗겨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겉부터 속까지 선생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범죄자를 취조하는 수사관이 되어 아이의 영혼을 털고 또 털었다. 많은 이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그것은 다름 아닌 ‘공개 처형’이었다.
자신의 속을 바닥까지 토해 낸 아이들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진 몸을 질질 끌며 교무실을 나섰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파헤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쁨과 희망을 주어야 할 선생이 그것을 빼앗고, 아픔을 달래야 할 선생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안기는 것은 아닌지 참담한 걱정이 앞설 뿐이다.
교육은 인간의 존엄함을 전제로 하며, 그 존엄함을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한 숭고한 사회적 행위이다. 가르침은 아이가 존엄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존엄을 지원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학교의 규칙과 규정 또한 마땅히 아이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안전장치여야 한다. 지금의 규정이 아이들의 존엄을 뒷받침할 만한 격을 갖추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일방적으로 만든 규정을 무기로 들이밀며, 어겼다는 이유로 아이를 몰아붙이는 것은 이치에도 교육에도 어긋난다. 야비한 규정은 야비한 아이를 만들고, 미천한 규정은 미천한 아이를 만들 뿐이다. 규칙이 먼저 존엄을 갖추어야 비로소 아이도 존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존엄한 규정이 비로소 존귀한 아이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