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을 서성이는 아이들
학교가 싫어서다.
능력, 꿈, 관점, 생각... 을 알아주지 않아서다.
멸시와 외면 그리고 경시가 일상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를 꺼리는 것은
학교가 아이를 부인하기 때문은 아닐는지.
학교 밖을 서성이는 아이들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공간이 있다. 안기듯 편안한 의자가 있다. 입뿐 아니라 온몸과 마음이 감동하는 음식이 있다. 입을 때마다 신이 나고 계절이 지나 옷장에 넣을 때마다 아쉬움에 한 번 더 걸쳐보는 옷이 있다.
인간을 존중하는 손길이 거친 결과다.
편안하고, 좋고, 아름답고, 멋지고, 맛있는 것은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만든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없이 만든 공간은 불편하다. 그런 공간은 들어서기 꺼려지고 속히 떠나고 싶다. 이용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없이 만든 의자는 몸을 움츠러들게 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없이 만든 문구는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한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없이 만든 음식은 입맛을 잃게 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없이 만든 옷은 옷장만 차지하다 결국 버려진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과 만나면 기쁘다. 즐겁고 미소가 인다. 헤어짐에 아쉬움이 크다.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과 만나면 불편하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감정은 한여름 식혜 상하듯 금세 맛이 간다.
인간은 누구든 존엄하다.
말의 가치 그리고 행위의 쓸모는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데 있다.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으로 대우할 때 그 말과 행위는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말하고, 행하고, 생각하는 일은 곧 상대를 인간으로 존중하고 대우하는 일이어야 한다. 상대가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편안하게 느끼면 그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이고 불편해하고 꺼리면 그에 대한 인간적 대우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말과 행위의 의미나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상대를 인간으로 존중하고 대우하는 것이냐에 있다.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어떻게 행하든지 그것은 그 자체로 인간을 존중하는 행위여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내 말이 그리고 내 행위가 인간을 존중하고 대우하는지….
학교 밖을 서성이는 아이들이 증가한다.
학교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공간부터 불편함 투성이다. 매년 뭉칫돈으로 치장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물론 만족할 만한 학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오래 머물기 꺼려지는 공간이 있고 앉기 망설여지는 책걸상이 즐비하다. 교실 풍경도 살벌하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부착물의 내용도 인정머리가 없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태도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다. 만나는 친구들이나 선생은 그 자체로 무기다. 스칠 때마다 냉기가 흐른다. 서로를 밟고 올라설 적으로 여긴다. 서로에 대한 존중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서로가 자신의 길에 놓인 장애물일 뿐이다. 교실은 누군가를 딛고 일어설 힘을 기르는 연병장이다. 피도 눈물도 없다.
인간성이 사라진 교실, 인간미를 잃은 학교, 인간의 존엄이 사치가 된 관계. 인간이 없다. 학교 그 어느 곳에서도. 학교에서 인간의 존엄을 찾고 인간다운 대우를 바라는 것은 천둥 치고 번개 번쩍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환한 달빛을 기대하는 일만큼 허황한 일이다.
학교 밖을 서성이는 아이들,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교문을 들어서고,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치고, 편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어울리고, 희망을 안고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무성한 나뭇잎이 진한 그림자를 드리울 쯤이면 교문을 나선 두 아이가 생각난다.
지울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그들의 발길을 돌리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 된다.
아이를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일, 그것이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