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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준파 Jul 27. 2024

오퍼를 거절했다

솔직해지기로 했다.


여러 군데의 인터뷰를 동시에 진행하는 상황도, 그 와중에 한 곳으로부터 오퍼를 받아본 상황도, 아니 그냥 간단히 말해 미국에서 취업 시장에 뛰어든 상황 자체가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 알고 있는 답이 없었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역시나 미국의 취업 시장에서는 아주 흔한 상황이었고, 그만큼 다양한 사례와 각기 다른 대처 방안들이 있었다.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 자체뿐 아니라, 본인이 그 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회사에서는 당신을 얼마나 강하게 원하고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을 고려해야 했다.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굉장히 전략적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활용하여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 딱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나의 상황을 냉정하게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스타트업에서는 Offer를 받은 상황. 온사이트에서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음.

2) 애플에서는 On-site 면접을 통과해야 하고,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 가능만 하다면 가장 가고 싶은 곳

3) 대략적인 타임라인을 고려할 때, 애플의 결과를 알기까지는 지금부터 약 한 달 정도 시간이 필요함,

4)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나의 결정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 (오퍼를 놓칠까 두려움)


정리는 했지만 여전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없는 상황이었고, 다른 여러 가지 사례들을 찾아보던 중 눈에 들어온 한 글귀는,

Be Honest


상황을 이용하기보다는 최대한 솔직해져 보기로 했다. 솔직하게 상황을 공유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Offer를 유지할 것인지의 결정은 그들이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거짓말로 시간을 질질 끌면서 그들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Offer에 대한 답장 Email을 보냈다.


[바쁘신 와중에 하루 종일 시간을 내어 온사이트 인터뷰에 참여해 주시고, 저의 채용을 검토해 주신 당신과 직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만장일치로 저를 선택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기쁩니다. 당사의 신규 채용 시급성을 고려할 때, 신중히 검토해 제안해 주신 Offer에 대한 저의 의견을 최대한 빨리 드리는 것이 마땅하나, 저의 현재 상황을 솔직하게 공유드리고 가능하다면 결정을 유예할 수 있는지 문의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현재 다른 회사와도 동시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온사이트 인터뷰를 통해 당신 회사의 비전과 업무 적합성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미국에서의 첫 경력에 대한 결정이니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판단한 후 결정하고 싶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현재 인터뷰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있으며, 결과가 확인될 때까지는 약 2주에서 최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까지 결정을 기다려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버지니아 주립대 중앙 잔디 광장

떨리는 손으로 Sent 버튼을 누르고, 버지니아 주립대학교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조용한 장소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문득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새로운 기회들이 하나씩 열려가고 있었다.

그래 어찌 되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한 거겠지.


하루 뒤 스타트업의 CEO한테서 온 답장은 정말 뜻밖이었다.


[당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는 처음 말씀드린 Compensation에서 연봉 10% 및 Sign-on Bunus를 인상한 새로운 Offer를 당신께 제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말씀하신 기한까지 신중히 고민하시고 결정이 되면 알려주세요.]


혹시 화를 내면 어떡하나 그래도 어쩔 수 없겠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상황을 이해해 줄 뿐 아니라 인상된 연봉 Offer를 제안받다니. 이게 바로 미국 취업 시장 연봉 협상의 유연성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 2주 후 온사이트 인터뷰 통과 소식을 들은 후, 애플에 입사하기로 최종 결정했고, 이 사실을 스타트업 CEO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정중히 알렸다. 그는 축하하고 응원한다며 기분 좋게 답장을 해주었다.

참 멋진 사람으로 기억한다.

오퍼를 최종 거절한 후 스타트업 CEO에게서 받았던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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