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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지식 제공자’에서 ‘진로 설계자’로 진화하다

고교학점제 바로알기 No.33

by 황은희

고교학점제는 단순한 교육제도 개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능성과 삶의 방향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는 철학입니다.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누적되어 학점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결국 학생 스스로 ‘배움의 여정을 설계하는 주체’로 서야 함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까요? 더 이상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업 공간’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학습 경로를 함께 설계해주는 ‘학습 설계 센터’로의 진화가 필요합니다.



1. 학생 중심 교육과정 운영의 핵심은 ‘설계’


고교학점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설계’입니다. 학생이 어떤 과목을 듣고 싶은지를 고르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진로 방향과 관심사를 반영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조합하고 조율해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항공정비사를 꿈꾸는 한 고등학생은 물리학, 기계공학 관련 교과뿐만 아니라 영어 회화와 기술과목을 조합하여 자신의 학습 여정을 설계합니다. 학교는 이 학생이 단순히 과목을 수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이 과목이 필요한지, 어떤 흐름으로 이수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안내해줘야 합니다.


이런 설계의 출발점은 바로 진로 탐색입니다. 고1 시기의 진로탐색 과목과 상담 활동은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닌, 향후 과목 선택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학생은 설계 → 실행 → 피드백 → 조정이라는 순환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배움의 지도를 그려가게 됩니다. 이는 한 해 한 해 수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과정’을 설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학교는 ‘설계 센터’로 어떻게 전환되는가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학교는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먼저 시간표 편성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학생이 동일한 시간표에 묶여 수업을 듣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A반의 철수는 생명과학을 듣고, B반의 영희는 미적분을 듣는 방식으로, 개인 맞춤 시간표가 운영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이동 수업’과 ‘공동교육과정’입니다. 예컨대 한 고등학교에서 심화 화학을 개설하지 못하더라도, 인근 학교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학생이 해당 과목을 수강할 수 있게 연결하는 것입니다. 또한 블록 수업처럼 수업 구조를 유연하게 만들어 깊이 있는 학습을 가능하게 해야 합니다.


교사의 역할도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교사는 더 이상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학습 설계 컨설턴트’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의 과목 선택과 학습 결과를 함께 분석하고, 진로 변화에 따라 과목 조정을 조언해주는 역할입니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진로 정보와 교육과정 이해도를 높이고, 학생 상담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행정도 이 변화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과목 간 연계 로드맵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거나, 성취도 기반 학점 이수 시스템을 도입해 학생이 자신의 학업 이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계’라는 말을 현실화하기 위한 행정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3. 설계 기반 교육의 미래 가능성


이러한 변화는 학생에게 단순한 학습 기록을 넘어선, ‘학습 설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줍니다. 어느 대학에 지원하든,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자신이 어떤 경로로 이 지점에 도달했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기록이 되는 것이죠. 자기주도 학습력은 물론이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문제해결력과 자기관리 능력의 기반이 됩니다.


대학과 사회는 이제 ‘단순 암기형 인재’보다 ‘설계형 인재’를 원합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본인의 선택과 계획, 조정의 경험을 쌓아온 학생들은 전공 적합성과 진로 연계성을 더 명확히 보여줄 수 있습니다. 결국 고교학점제는 우리 교육이 ‘한 줄 교육과정’에서 ‘맞춤형 경로 지도’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작점입니다.



마무리하며:

고교학점제가 여는 설계형 교육의 시대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결국 학교가 ‘배움을 주입하는 공간’에서 ‘배움을 설계하고 안내하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데 있습니다. 교사는 컨설턴트가 되고, 학생은 설계자가 되며, 학교는 이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는 구조입니다. 이 변화가 제대로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학생 주도 학습’이라는 말을 진정으로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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