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같은 식당, 같은 메뉴를 먹곤 한다.
이 조차도 다름을 매일 꿈꾸면서도 한 걸음 내딛기를 두려워 상상 속에만 남겨둔 채 간만 보는 조심스럽다 못해 행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다의 표본인 나를 보여준달까.
자주 스치는, 외로움과 쓸쓸함 애절함 그것이 나의 디폴트라서 못나고 작은 나를 애써 이유를 댄 핑계로 안쓰러움을 가장한 현실의 나를 받아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을까 하는 생각.
결국 아무 일 없고 지루하도록 평범한 일상에 만족 못하고 익숙한 우울함에 빠져 울고 싶어 슬픈 영화나 슬픈 노래를 듣고 억지 울음을 짠다. 평범함이 가장 어려운 것임을 머리로는 아는데 불안하기만 한 내 감정을 위해 머리를 속이려 애쓰는 걸까.
20대 때는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인 양 속내를 말하고 위로받으면 그 친구와의 우정은 짙어지고 그 우울도 옅어지는 듯했다. 이제는 알릴 수 없고 알릴 이유도 없다.
전에는 모든 것을 알고 공유해야 그 감정의 깊이가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래도 저래도 다른 사람은 다른 것이고 알게 되더라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그저 약점이 될 뿐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알아가는 초반에는 설렘과 새로움에 잊고 있다가, 점차 가까워지면서는 나라는 사람의 색이 짙어 나에게 물들까 조심스럽다.
나에게 세상은 맞추고 맞춰지고의 연속.
또 새로움과 실증의 연속.
그저 순응하기.
이런 나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목표를 만들어주는 탈출구라 생각했다.
내가 살아갈 목표를 만들어주는 무언가를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나 자라온 환경과 다르게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 것을 위해 산다는 것.
그냥 먼 미래로 생각했었는데 주변 친구들 하나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것을 보니 괜스레 두렵기도 하고 돌이킬 수 없음에 더 얽혀버린 나를 상상하곤 하며 그 또한 환상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걸까.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짊어지고 숨기고 삼키며 웃어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