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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Mar 27. 2023

봄 손님

추억 한 페이지 추가

“오.. 숀이 이렇게나 어렸네.. 그땐 정말 개구쟁이였는데. “

“말해 뭐해…2017년, 그 학년은 반별로 말썽 피운 아이들이 하나씩 있었잖아. “

“어머 내 얼굴 좀 봐.. 하하”

“그 당시 이어 북을 구입 안 해서 나는 이 사진들을 못 봤는데… 재밌다. “

“아 K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지?, 지금은 몸아 조금 나았으려나?”

“아직도 후유증 때문에 고생 중이라고 하더라고. “

”참, S 선생님은 지금도 1학년 담당하고 있어? “

“아니 그분은 코비드 19로 캐나다에서 안 돌아왔어. “

“아 그럼 이삿짐 챙기러도 안 왔고? “

“우리가 대신 챙겨서 보냈어. 아제르바이잔 국경이 오랫동안 닫혀서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거든. “

“2020년  너희가 떠난 후 다른 많은 교사진들이 돌아오지 못하거나 다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바쿠를 떠났어.”

“사택 관리인 알리는 아직도 그대로야?”

“과일가게 파라즈는 잘 지내지?”

“비서는 그대로야?”  

“벌써 3년이 되었네.”


오래된 *이어 북(School Year Book)을 뒤적거리는  L과 C는 함께 근무했던 아제르바이잔의 2015년부터 2020년 여름까지의 기억을 몽땅 소환하는 중이었다. 톰슨 씨와 C는 같은 리더십팀에서

근무했던 터라 함께 일했던 비서와 교장단의 이직 이야기로 한참 동안 안부를 물었다. 저학년 미술교사였던 나와 1학년 담임이었던 L은 그 당시 개구쟁이 남학생들 이야기로 웃고 떠들었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아제르바이잔에서 보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카스피안 해의 풍경 뷰가 유난히 좋았던 사택 아파트의 발코니, 의지했던 동료교사들, 싱싱하고 저렴했던 로컬 식재료들, 즐거웠던 각종 모임들 등 행복했던 기억들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L과 C는 3년 전 코비드 19로 예상 밖의 많은 동료교사들과 갑작스러운 작별을 했다. 2020년 3월 해외로 춘분절 휴가를 떠난 30여 명이 넘는 교사진은 6개월 넘게 국경이 닫힌 아제르바이잔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자녀가 있는 교사진들은 대기상태에서 각자의 고국행을 선택하여야 했다. 뉴질랜드로 휴가를 떠났던 L과 C는  한참 지난 8월이 되어서야 돌아왔고, 결국 노르웨이행이 예정되어 있던 우리 가족은 아제르바이잔으로 돌아오지 못한 교사진들과 아쉬운 비대면 줌 송별회를 하였다.  




아제르바이잔의 춘분절 휴가는 늘 부활절 휴가보다 2주일 앞서서 시작된다. 그곳의 봄이 되자마자 노르웨이의 겨울을 보겠다며   L과 C, 두 명의 옛 동료 교사가 놀러 왔다.

스키를 좋아하는 뉴질랜드인 싱글 교사 두 명은 일주일을 노르웨이의 산속 깊은 스키 리조트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콩스베르그로 왔다.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 갑작스레 높은 기온과 함께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눈을 보겠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온 그녀들은 녹는 눈을 붙잡을 수 없어 실망을 했지만, 마침내 봄이 올 것 같다며 나는 햇살을 몰고 온 그녀들이 반가웠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영상기온이 그동안 내려서 몇 겹으로 쌓인 눈을 조금씩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비가 오는 것인지 아님 눈이 녹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지붕에서는 물줄기가 콸콸 쏟아 내리기 시작하였다. 얼음과 눈으로 뒤섞인 앞마당은 홍수로 물이 넘칠 상황까지 되었다. 물로 변한 눈을 언덕 밑쪽으로 흘러 보냈다. 그러면 어떠랴.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사실은 그녀들이 몰고 온 봄기운 때문에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총 5년, 동고동락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매일 같은 학교로 출근하고, 퇴근까지 같이하며 같은 사택(아파트)에서 지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했다. 인구가 적은 뉴질랜드에서 온 사람들을 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날 확률은 낮은 편이고, 그로 인해 톰슨 씨는 그녀들과 비슷한 생각과 여가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인 나는 뉴질랜드인 남편 덕에 ‘뉴질랜드에서 왔다’ 하면 같은 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뉴질랜드인과 한국인은 무조건 반가운 사람들이다.


다양한 국가의 국제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만이 아는 것이 있다.

새로운 나라에서의 ‘다름‘이다. 해외거주를 오랫동안 한 사람들은 문화충격과 다름을 견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주한다.

다른 잣대, 다른 시선,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음식, 다른 시스템.

모든 것이 다르고 새로운 그 나라에 적응하는데 보통 2년에서 3년이 걸린다. 다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일 년 만에 떠나기도 한다. 적응하는 3년을 잘 견디면 5년, 10년은 행복하게 즐길 수 있다.  

3년 만에 노르웨이를 떠나기로 결심한 우리에게  L과 C는 이유를 묻지 않고 토닥이며 말했다.

“그동안 고생했어. 고향에 가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야.”

 



그녀들이 따뜻한 햇살을 몰고 온 지 이틀 만에 눈이 펑펑 쏟아졌다. 밤새 내렸던 모양인지 초록빛이었던 나무들은 모두 하얗게 물들었고, 따뜻했지만 흐렸던 날씨는 하늘만 보아서는 여름일 수도 있을 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파랗고 뜨거워 보였다. 일요일 아침 서머타임이 시작된 바람에 늦게 거실로 나와 가득히 쌓인 눈과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면 환호성을 질렀다.

“윈터 원더 랜드!!! 성탄절로 되돌아간 것 같아. 꿈을 꾸는 것은 아니겠지? 이걸 보려고 노르웨이에 왔구나. 와!!!”

“사슴이 왔었네. 발자국 봐봐.”

“영하 4도! 눈이다!!!”

“우리를 위해 눈이 온 건가?”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노르웨이식 와플을 구웠고, 브라운 치즈, 잼, 바나나, 시럽을 함께 대접했다. 톰슨 씨가 뜨거운 커피 4잔을 가득 담아 왔다.

“자 노르웨이식 아침식사 합시다. 커피 먼저.”

“어머나.. 노르웨이 와플!? 얇은 게 특징이네. 와! 이 브라운 치즈는 어떤 맛이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아침 장작소리. 창밖의 넘치는 눈 풍경. 고소한 노르웨이 와플. 호기심 가득한 옛 동료. 행복한 퍼즐이 맞추어졌다.

3월에 찾아온 봄 손님은 외로운 우리에게 따뜻한 기억과 시간을 되돌려 주었다. 함께한 추억이 있으니 커피 한잔을 나누면서도 흐뭇하다.

우리가 함께하는 노르웨이의 모든 것은 몇 년 후에 또 다른 추억 한 페이지가 되겠지.

   


* 이어 북(School Year Book): 매년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진을 사진 찍어서 만드는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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