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엘리 Mar 23. 2023

워라블의 유혹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

블로그에 글을 쓴 것이 다음 달이면 3년이다. 시작은 모텔 홍보 목적이었지만, 하다 보니 아무 말 대잔치 블로그 같기도 하다. 여전히 모텔 홍보의 목적은 잊지 않아서, 일상을 드러내는 것에 모텔 홍보를 위함이 내재되어 있다. 마치, 좀 덜 유명한 또는 정상급이 아닌 연예인들이 인기와 홍보를 위해 사생활을 공개하는 관찰형 예능에 출연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밥 먹은 이야기, 커피 마신 이야기, 돌아다닌 이야기 같은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써 놓고, 보는 사람들이 휘티앙가에 오면 이런 곳을 방문하고, 이런 일을 할 수 있음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글에 담겨 있다. 나의 숨은 의도를 알던 모르던, 블로그 이웃님들은 공감의 하트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준다. 내향적인 성향인 나는, 잘 모르는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댓글을 달려면 수십 번 생각하고, 썼다가도 등록을 하지 않고 지워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면서도, 나의 블로그에 달리는 이웃들의 댓글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럴 때, 블로그는 마치 “우리 점심 같이 먹을래?” 하고 먼저 말 걸어 주는 친구 같다. 외로운 이민자의 삶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홍보인지 개인 만족인지 모호한 정체불명의 블로거의 길을 걷고 있다.


시작은 블로그였다. 그러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기웃대며 글을 쓰다 보니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에는 블로그보다는 정제되고 완성된 글을 쓰려고 한다. 조금 더 생각을 넣고, 글에 집중하다 보니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쓸 때보다 몇 배의 시간이 든다. 운이 좋게도, 지난 계절에 쓴 브런치 북 ‘남태평양 푸른바다 파란모텔’은 브런치에서 추천하는 브런치 북으로 선정이 되어 브런치 메인 화면에 걸리기도 했고, 꾸준히 ‘좋아요’가 쌓이고 댓글도 심심치 않게 달린다. 브런치에서의 ‘좋아요’와 댓글의 기쁨은 계속 쓸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차곡차곡 쌓이는 용기를 발판 삼아, 다른 브런치 작가들과 공동 매거진을 쓰기로 약속하고 꼬박꼬박 마감을 지켜 쓰느라 애쓰고 있는 요즘이다.


시간이 걸리고 공을 들여야 하는 쓰기, 읽기와 달리 한눈에 이미지가 들어오는 인스타그램도 하고 있다. 이름부터 “인스턴트”인 만큼, 사진이나 이미지로 빠르게 전달되는 간결한 메시지가 인스타그램의 매력이다. 이것이 진화해서 지금은  릴스라고 부르는 1분 정도의 영상을 올리는 것이 대세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적인 이미지의 느낌이 좋다. 그래서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블로그나 브런치에 늘어놓는 숨은 의도나 일상, 속마음은 없이, 거의 제목만 쓰고 직접 그린 그림 위주로 업로드를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휙휙 지나가는 소비성에 나의 민낯까지 드러내는 것이 아직은 (블로그와 브런치에 이미 다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편하지가 않다. 내가 업로드하고 있는 그림들이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즐거움이라는 것도 그림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쓰지 않는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추어라 해도 더 잘 그리고 싶어, 요즘 난생처음으로 제대로 된 그림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선생님은 나에게 인스타그램에 더 적극적으로 나의 메시지를 넣고 스토리를 넣으면 사람들에게 더 많이 다가가고 그림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엘리님은 생업이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로 블로그와 브런치에 이미 사생활을 어느 정도 공개하고 계시잖아요. 인스타그램에도 스토리를 넣어서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내야 수익의 길로 넘어갈 수 있어요. “

“선생님. 그림으로 수익이 생기면 물론 기분 좋은 일이겠지만, 과연 그림이 생업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취미가 생업이 되면 더 이상 취미가 될 수 없잖아요. 아시잖아요.“

“아니요. 요즘에는 워라밸이 아니라 워라블이라는 말을 써요. 일(work)과 삶(life)이 섞였다는(blending) 뜻으로, 즐거운 일을 해서 생산성을 높이며 질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거죠. “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실현하고 있는, 내게는 빼박 MZ 세대로 보이는 이 젊은 그림 선생님의 확신에 찬 발언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워라블이라니, 이 신조어는 또 무엇인가?  그림 선생님의 말처럼 정말 워라블로 사는 것이 좋은 또는 나은,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인 것일까? 그림을 그려 돈이 되면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행복할까? 그림이 생업이 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한동안 워라블이라는 말과 그림 선생님의 “그림 수익화” 설명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스무 살의 나는 난이도 최하의 일, 과외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쉽게 돈을 번 것인데, 그 쉬운 일을 하면서도 느낀 점은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에 넣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 진리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세월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성비라는 말이 최근에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은 오히려 옛날보다 더 주머니를 꽉 틀어쥐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내가 정말 그림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나의 그림을 보고 누군가가 기꺼이 지갑을 열만큼의 노력과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나 스스로도 남의 주머니에서 내 주머니로 넘어온 돈에 떳떳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취미가 생업이 되어 워라블의 삶을 살려면 취미의 수준이 프로페셔널의 정도(남의 지갑이 기꺼이 열릴 정도)여야 할 것이다. 남의 지갑이 열리는 순간, 기쁜 마음으로 한 번은 열렸다 해도, 두번 째 지갑이 열리도록 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겠는가?


그림 선생님의 말처럼, 누군가는 어디선가 분명 워라블의 삶을 즐기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림으로 돈 벌기, 취미로 돈 벌기‘같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처음 그림 수업을 시작하던 그 첫 마음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남의 그림 모작은 그만하고, 그리고 싶은 대상을 내 스타일로 그리기’, 그거면 되었다. 아직은 내 마음의 만족이 최고다. 거기에 ‘좋아요’와 댓글이면 더 신날 것이다. 부자 되긴 글렀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당한 인간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