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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Aug 20. 2023

에필로그, 여행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기록을 준비하며

2003년 미국에서 해외살이를 시작한 이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부터 매해 새로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시각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후 동서양에서 온 그들과 인연을 만들었다. 또한 F 소셜 미디어를 접하게 되었다. 국제학교 교사들의 특성상 매년 6월 동료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떠나가는 인연들이 생길 때마다 F 소셜 미디어에서 친구 맺기가 순식간에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내 일상을 아무에게나 오픈하는 것이 살짝 두려웠던 그때는 비공개 계정이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고심하며 친구 맺기를 허락하였는지 모르겠다(그래서 친구 리스트가 상당히 짧다). Z세대와는 다르게 나의 20대는 남의 시선과 평가에 꽤나 민감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지금처럼 빠른 스마트 폰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 피시 접속을 해야 나의 일상을 공개할 수 있었다. 인터넷 통로를 통해 찍어둔 사진을 한꺼번에 업로드하곤 하였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올렸던 결혼사진, 여행사진, 가족사진들이 즐비했다. 그 당시 나에게는 F 소셜 미디어 사진첩이 유일한 기록이었다. 다행히도 이야기가 생략된 수많은 사진들이 그 시간들의 추억을 잠깐이나마 기억하게 도와준다.


2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의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노르웨이의 이주는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여러 개의 공개형 SNS와 비공개 계정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휴직을 신청하고 노르웨이로 이주한 첫 해 코비드 19로 인한 일상적인 만남과 소통에 제한이 생겼다. 인구가 적은 노르웨이에는 사람보다 나무와 새들을 보는 일 더 잦았다. 첫 6개월 정도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았다. 한두 달은 휴가를 온 것처럼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집안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노르웨이로 오기 전 맞벌이와 육아를 하느라 온라인 활동은 물론 취미도 없었다. 독서는 미루고 드라마를 보기 일쑤였다. 갑자기 생긴 텅 빈 시간을 채우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였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글쓰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일을 하며 행복한 유럽 생활을 했지만, 결국 나에게 남은 기록은 F 소셜 미디어 사진첩이 다였다.


일 년의 휴직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전에는 시도하지 않은 시간제 일이었다. 하루 중 잠깐이나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제 일이라 하루를 꽉 채우기에는 부족하였다.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였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만남과 일상을 글로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정말 얼마 전 일이다.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고 브런치에 보이는 글을 올리기를 시작한 1일이 불과 2년도 되지 않는다. 100편이 넘는 짧은 글을 썼다.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하루가 꽉 차기 시작하였다. 나는 글쓰기가 손에 익도록 짧은 글을 자주 썼다. 나의 생각이 드러나는 노르웨이의 일상을 일기로 남기고 혹은 사실을 기반으로 둔 정보성 글도 올렸다. 사실은 일상 기록이라는 단순한 목적으로 시작했던 짧은 글쓰기였다. 종종 마음만 앞선 내 글을 읽고 자신감이 극도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혼자 글 쓰는 것이 힘들어질 때쯤, 온라인에서 글 동무도 만나 글을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보았다. 그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배움도 있었지만, 함께하면서 나아갈 수 있었다. 축 쳐진 나의 글에 대한 응원은 보너스였다. 


글쓰기는 해외에 고립된 나에게 한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이들의 글을 읽고, 상상하며 글동무가 한없이 가깝게 느껴졌다. 글 동무와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글 속에서라도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쓰는 글마다 유난히 멋들어지고 시크한 리엘리님과 매거진을 함께하니 더 용기 내어 쓸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북이나 매거진으로 '나'라는 사람이 구석구석 드러나고 있는데 이상하게 두렵지 않다. 글을 쓰면서 힘들었던 시간이 잘 정돈된 과거가 되어 가고 있다.


얼마 전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로 이사를 왔다. 매거진을 함께 쓴 리엘리님을 직접 만났다. 리엘리님의 시선 속 바다, 모텔의 보석 켈리 씨, 푸른 모텔, 모텔 근처 카페, 알버트 거리, 야자수등을 만났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또래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온라인에서 만난 글 동무라니 반갑기 그지없다. 우리는 크게 많은 것을 말로 나누지 않았는데 서로에 대하여 꽤 알고 있었다. 마치 자주 만난 것처럼 크게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글에서만 일상을 상상했는데 현실을 마주하니 다시금 매거진 속 글들을 들추게 된다. 그녀가 묘사한 손님들, 모텔 리셉션, 전화기, 실 외 테이블, 식물들, 모두가 정겹다. 이미 많은 것을 만나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에피소드에서 나온 별점리뷰도 읽어보았다.   


매거진 '그들의 남겨진 조각 '에서 나는 노르웨이에서의 만남을 짧게 담았다. 사실은 더 길어질 수 있는 매거진이었는데, 나의 뉴질랜드 이주로 끝맺음을 했다. 유럽생활 마지막 해에 기록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F 소셜 미디어  사진첩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 브런치 매거진에도 기록을 추가했으니 든든하다. 17년이라는 긴 여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노르웨이에 대한 기록을 마치고, 이제 뉴질랜드에서의 새로운 챕터를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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