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나만 당당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적막감과 외로움은 늘 나와 함께였으니까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어두운 밤 불빛 하나 없는 구불구불한 작은 시골마을 길을 조심스레 운전하는 내 심정과 같았던 지난 십 년. 어두워서 안 보일 때는 하이빔을 켜고 길만 더 똑바로 쳐다보면서, 옆 나락으로 안 떨어지려고 앞으로만 운전하느라 겁먹은 나는 그저 그 길만 잘 운전해서 벗어나려고 급급했던 그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가끔 보이는 반짝거리는 그것이 불빛인지 눈빛인지 모를 것에 놀라면서도 그저 묵묵히 운전에만 몰입한다. 도착지에 도착하면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순간 나는 내 머리를 운전석에 기대어 한 숨을 크게 내 쉰다.
나는 운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필요해서 할 뿐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내가 모델에서 배우로 전환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20대와 달리 화면에 익숙해지면서 처음보다 자신감이 붙어 시작은 했지만, 필요로 했을 뿐 이 일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쩔 수 없이 일이니까 하고 있다. 성공은 했지만, 내가 이슈를 만들지도 않았고 묵묵히 하라는 것만 하다보니 연기도 점점 나아졌다. 그저 평범해 지고 있는 중이다. 보통 그 이상의 자부심 혹은 자기만족 그러한 것도 존재 하지 않는다. 나는 무얼 위해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을까.
이번 영화는 매회 내가 들어가는 씬이 많아서 대기일 경우가 다반사이다. 오늘도 새벽부터 대기하면서 촬영했는데 시골이라 집에도 못 가고 그저 차에서 대기 중이다. 이렇게 고요한 시골에 있으면 그렇게 옛 생각이 떠오른다. 그나마 가을이라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 대기하면서도 옛 기억에 사로잡힌다.
잠깐 휴대폰을 켜서 옛 사진 들을 보고 있는데, 즐겨보는 포털사이트에서 알람이 켜지면서 오늘의 토픽이 뜬다. '여배우 이하나의 과..'
'응? 내 이름?'
"누님! 어떡하죠? 기사가 떴어요." 그때 매니저가 문을 갑자기 열고 다급히 외쳤다.
"누님과 재하의 이야기가 인터넷에 나왔어요!" 우리 둘만 아는 이야기다.
올 것이 왔다. 세상은 또 남의 이야기로 한껏 떠들 것이다. 십 년 전 이야기다. 나도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사람들은 마음껏 할 것이다.
***
"자기야, 우리 이거 오늘 밤 다 옮겨야겠지? 오늘 하루 종일 날씨가 좋았는데 왜 저녁에 가져다 준건지 오늘 밤에 비 온다고 했는데.."
"그래도 나무가 크고 좋아 보여. 장작이 젖기 전에 얼른 옮기면 좋겠는데.."
"엄마, 아빠! 저녁을 든든히 먹었으니 우리 셋이 금방 할 수 있어요. 내가 도울게요"
나무꾼 테리씨는 8월에 신청한 장작을 10월 말이 되어서야 배달해 왔다. 하필이면 날씨가 따뜻해져서 비가 쏟아졌던 주에 배달을 했기에 저녁에 비가 온다는 소식에 마음만 급해진다. 30분쯤 장작을 날랐을 때 아이는 장작을 집 앞 창문 밑에 쌓더니 달을 보며 쉴 수 있는 침대를 만들었다며 신나 했다. 5살짜리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장작 옮기는 엄마 아빠의 가방에 장작 몇 개 얹어 주거나 작은 가지들을 주워서 박스에 담는 일 혹은 장작을 가지고 노는 일이었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던 10월 초에 장작이 안 와서 걱정하던 우리에게 본인은 내복을 입어 안 춥다며 위로하던 아이다. 초저녁 6시는 노르웨이에서 이미 어두워서 야외용 램프를 켜야 하는 시간대였기 때문에 아이는 머리에는 헤드라이트 그리고 몸에는 반짝거리는 리플렉터 별을 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움직이는 별 아이 같았다. 마침 하늘에도 별이 가득한 참 예쁜 가을 밤하늘이었다.
아이는 본인이 만든 달 침대에 누워 한참을 달과 별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엄마 별똥별이 떨어졌어요!"
"재하야 그럼 소원을 빌어야지. 눈감고 원하는 소원을 빌어봐."
"엄마 별똥별이 두 번이나 더 떨어졌어요!"
아이는 조심스레 소원을 빌었다. 아이 아빠는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아이에게 일러주었다. 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는데, 아이는 절대 말할 수 없다며 함박웃음으로 답하였다.
그날밤 우리는 장작불을 쬐며 비오기 전에 창고로 다 옮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장작불 때문에 집이 따뜻해져서 너무 좋다며 그 작은 일에 행복했었다.
***
우리는 그때 너무 어렸고, 돈도 없었다. 처음에는 둘 다 공부하는 학생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행복한 미래가 보였기에 우리셋이 뭉쳐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아이가 있어 더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탓하지는 않았다. 모두 내가 선택한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나는 학업을 잠시 멈추고, 한국에서 벌어 놓은 돈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유학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갈까 했던 생각은 수도 없이 했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 참았다. 긴 유학생활로 생활이 넉넉지 않아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식료품과 중고 생활용품을 마련해야 했다. 나는 점점 지쳐왔고 짜증을 자주 내기도 했다. 서로의 미래를 생각하며 웃는 시간은 사라졌다.
다시 인터넷 기사를 들여다보았다.
'여배우 이하나의 과거에는 노르웨이에 두고 온 아들 이재하가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 즈음 나는 학업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꾸준히 모델 소속사에서도 연락이 왔었고, 나는 생활고에 지친 상황이었다. 많은 것을 해 줄 수 없어 아이에게도 미안했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지쳐왔다. 남자 친구와는 잠시 떨어져 한국에서 양육비를 마련해 보내겠다는 것에 동의한 상황이었다. 손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와 떨어지는 것이 어려웠지만, 한동안은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럭저럭 잘 지냈다. 2년 정도 흘렀을 때, 한국에 와서 여배우로 입지를 굳혀가면서 바쁜 스케줄에 쫓겨 지나온 시간이 십 년. 그리고 나는 38살이 되었다. 어느 정도 성공하였으나 나는 남자 친구와 재하와는 다시 함께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남자 친구 또한 노르웨이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도 그대로 그 사람과 남겨졌고, 17살이 된 아이는 이제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때 문자가 하나가 왔다. 아이의 아빠에게서 온 문자였다.
'잘 지내지? 기사가 났다고 하던데. 괜찮아? 지나간 과거지만 행복한 사실이니까. 기운 내. 이거 재하가 예전에 쓴 글이야.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떠나기 전 겨울에 장작 나르면서 별똥별에 소원 빌었잖아. 그날 밤 나한테 말해주면서 한글로 써달라고 했었어. 산타 할아버지에게도 편지 보낸다면서.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것에 대해 자책하지 마. 나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나와 당신이 원하는 것이 달라진 후로는 긍정적으로 마음 정리했고, 우리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때를 좋은 추억으로 남겨두었어. 당신도 지우려 하지 말고 예쁘게 간직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당신이 앞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 예쁜 우리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우리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종이가 가득 차도록 써진 삐뚤빼뚤한 한국어가 찍힌 사진이 올라왔다. 내 눈에 가득 찬 눈물이 왈칵 그대로 흘러내렸다.
나는 십 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지만, 가족을 두고 떠난 나 자신을 외로움으로 벌하려 했다. 돈을 많이 번 성공은 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일 외에는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부터 아이의 소원대로 죄책감을 내려두고 행복하기로 했다.
*리플렉터: 일반적으로 반사판 혹 반사경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