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사건
벌써 11월이라니.. 올 한 해가 두 달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마침 원고를 넘기고 기분이 좋아서 어제저녁에는 모처럼 쇼핑을 했다. 주변 지인과 가족들에게 보낼 선물을 고르니 기분도 좋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두 달 전 운전 중에 대시보드에 브레이크 벨트 교체 알람이 떴다. 작은 시골 마을이기도 하고 특별히 자가용 수리할 곳이 없어 새 차를 전시해서 파는 곳에 같이 붙어있는 서비스센터를 두 달 전에 예약했고, 4시간 후에 차를 찾으러 오라고 해서 아예 구석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11월부터는 겨울용 타이어로 바꿔 끼어야 하는 시기라 겸사겸사 온 터이다. 이어폰을 가져오지 않았지만, 월요일 오전에 자동차 전시실로 찾아오는 이가 적어 소파를 차지하고 앉아 여유 있게 커피도 마시고 일할 수 있는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한참을 컴퓨터를 붙잡고 글을 쓰고 있는데, 큰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갑자기 들어온 그 남자는 나이가 지긋이 드신 할아버지이셨는데, 빠른 속도로 끓임 없이 말을 하면서 본인 휴대폰을 찾았다. 서비스 센터 직원들도 차를 파는 딜러도 어리둥절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듣고만 있었다. 얼마 전 동네에 있었던 사고로 여러 명이 목숨을 잃은 터라 모두들 수상한 사람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모두들 그 노인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면 도망갈 자세로 몸을 낮춘 상태였다. 본인이 오전에 잠깐 이곳에 들렀는데 휴대폰이 없어졌고, 테이블에 두었는지 떨어뜨렸는지 모르겠단다. 분명 차에 있거나 주머니에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가 찾을 수가 없다고, 본인 번호로 전화를 해 달라며 소동까지 피우더니 나중에는 손님용 커피 기계에서 커피까지 뽑아 한잔 마시며 큰소리로 떠든다.
"내가 말이야 젊을 때는 잘 나가는 카 레이서였어. 돈도 잘 벌고 집사람도 좋아했었지. 사고가 나서 카레이서를 그만두고 나니까 모두들 나를 무시하더라고. 모른 척 해. 응 그런데 말이야. 내 휴대폰이 사라졌어. 아들한테 전화해야 하는데. 그놈이 조금 아픈데 나 아니면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콜택시라 전화로 접수를 받는데 큰일이야. 젊은이 내 번호 010-1234-5678로 빨리 걸어봐. 나가서 울리는지 찾아볼 테니." 그러고 보니 그 몸이 삐쩍 마른 노인네의 얼굴에는 수술 자국인지 모를 흉터가 오른쪽 뺨부터 목까지 보였다.
그 노인네의 뻔뻔함이 그저 시끄럽고 짜증이 났고, 나는 가만히 앉아서 글에 집중하는 척했다. 밖에서도 휴대폰을 못 찾았는지 점점 더 시끄러워졌지만,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와 눈을 굴리며 모른 척했다. 갑자기 오래된 담배냄새가 풍겨왔다. 그 노인네가 내 귓가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을 건넸다.
"아가씨 휴대폰 못 봤어요? 혹시 소파에 깔고 앉은 것은 아닌지 봐 줄래요? 내 휴대폰이 크고 얇아서, 요 리모컨 사이즈예요. 내가 늘 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데 없어졌어요. 갑자기 사라지니 연락할 길도 없고, 볼 수도 없으니 불안해 죽겠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이게 없으면 큰일인데 말이죠. 난 택시기사라 휴대폰이 정말 중요한데.. 어디 갔나 모르겠어요!! 누가 좀 찾아 주세요"
어쩌면 휴대폰을 찾고 있기보다 어린아이를 잃어버려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또한 고함에 가까운 그 노인네의 말이 이상하리 만큼 힘이 있었다.
나는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 보여 주었고, 그 노인네가 얼른 휴대폰을 찾아 떠나 주기만을 바랬다.
그때, 중년의 서비스 센터 직원이 다가왔다. "어르신 식사는 하셨어요? 내년 달력 나왔는데 가져가세요. 휴대폰 찾으면 집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저희는 이제 괜찮아요. 어르신도 일 다시 하셔야지요. 어르신 탓이 아니잖아요. 기운 차리세요..."
"그렇게 말해 주셔서 고마워요. 직원 양반"
30여분 이상을 시끄럽게 들락날락하더니, 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
그 남자는 30대 후반으로 십여 년 전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보고 되었다. 큰 도시에서 이곳 가족이 있는 시골 마을로 이사온지는 6년 전으로 얼마 안 되었고, 서울에 비하면 시골이지만 큰 병원과 보건소들이 꽤나 잘 되어있는 중소 도시라라서 이 남자도 관리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신분열증이 경미하게 보이던 사람이라는데 부모와 전 여자 친구까지 부엌 도구로 위협해서 접근 금지 처분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서 멀어진 그는 점점 난폭해졌고, 접근 금지로 가족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터라 보건소나 복지관에서만 24시간 관리를 하기에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사건이 터지는 날도 이웃집 사람들을 위협하는 듯한 난동을 부려서 한바탕 한 날이었다. 그날 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에게 묻지 마 폭력을 휘둘러 다치게 하거나 목숨을 잃게 하였다.
다 큰 성인이지만 아들을 그렇게 내버려 둔 것이 본인 탓이라며, 경찰들에게 붙잡혀 나가던 아들을 보며 눈물 흘리는 아버지를 주변에서는 안타까워했다. 그동안 나이 드신 노인네가 어렵게 콜택시 기사로 일하면서 아픈 아들을 금전적으로 돌보았다고 한다.
***
그 노인네가 떠나자 옆에서 새 차를 기다리던 젊은 남자가 저 노인네도 노인네 아들처럼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다며 혀를 찼다. '그 사건 이후 동네 가게마다 들러 저렇게 소지품을 찾으러 다닌다고 하니 오늘은 휴대폰이군. '
'정신이 이상하다니.. 그 사건이 혹시 그 묻지 마 살인사건?!' 무고한 마을 주민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게 되어 그 사건은 우리 마을을 들추었고, 새삼 이웃집 주민에 대한 경각심까지 갖게 한 큰 사건이었다. 순간 온몸이 오싹해 왔다. 모두들 그 남자와 그의 가족을 욕하고 경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치지 않을 수가 없지 싶다. 평생 지켜온 고향을 떠날 수도 없고 아마도 남은 가족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 노인네 뒷모습이 보였다. 눈물을 훔치는 것 같기도 했고 왠지 모를 슬픔이 가득한 축 쳐진 모습이었다. 그 노인네는 아마도 아들 때문에 놀란 동네 주민들을 보러 기웃거린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에게도 위로가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 일을 저지른 것은 그가 아닌 아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