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글라이딩
'음... 머리가 너무 아프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분명 날아올랐었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이다.
나는 분명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제주도에 갔었고, 마침 날씨가 좋아서 날아올랐던 것인데, 무언가에 부딪쳐서 정신을 잃었다. 머리속도 정신 없지만, 귓가에 들리는 말 소리는 더 정신없는 소리이다.
"속보입니다. 제주도에서 패러 글라이딩을 하던 40대 한 여성이 J사의 딸 이 모씨의 고급 승용차에 떨어져 3중 충돌 사고를 일으켰으나, 다행히 운전자들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운전을 했던 J사의 딸 이 모씨는 빠른 회복 중에 있으나, 패러 글라이딩을 하던 서 모 씨는 혼수상태입니다. "
작게 들려오는 소리가 휴대폰 안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같다.
'응...? 내가 그 40대 서 모 씨인데..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이 여자 미친 여자 아닌가요..? 아니 왜 도로에 떨어져서 사고를 일으킨 거야.. 나이 들어서 패러글라이딩은 무슨... 우리 귀한 딸 큰일 날 뻔했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 혼수상태이니 안타깝네요. 머리를 크게 다치셨다고 하니.. 바람도 심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도로로 떨어진 것인지. 방향을 크게 틀어 내려온 것 같다는데..."
내가 눈을 깜빡이자 누군가 다가온다.
"이지수! 괜찮아...? 우리 보여...? 지수야...?!"
"간호사님!! 여기 좀 봐주세요...!!!"
"이지수 님... 제 목소리 들리세요? 들리시면 눈을 깜빡여 보세요"
나는 그 간호사도 방에 있는 몇몇 어른들도 다 보였고 잘 들렸다. 하지만 상황이 혼란스러워 눈만 몇 번 깜빡이고는 다시 눈을 감아 자는 척을 했다.
"이지수 님 괜찮습니다. 검사 결과상으로도 괜찮아 보이고요. 지금은 두통이 있으셔서 아마도 다시 잠이 드신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까지 지켜보시고 다시 깨어나시면 천천히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내가 이지수..라고?.. 흠... 지수야 내가 왜 네가 된 거니..'
내가 자는 척하는 내내 이지수의 부모라는 분들은 나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였고, 이번 일로 인하여 많이 놀란 듯해 보였다. 지수는 겨우 20대 중반인데, J사의 외동딸로, 경쟁회사인 K사의 아들과 정략결혼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 사고로 인하여 결혼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이지수의 부모는 지수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음..." 나는 간신히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잠에서 깨어나기로 마음 먹었다.
"지수야.. 엄마 보이니? 아빠는? 여기가 어딘지는 알겠어..?" 따뜻한 이지수의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네... 병원이네요. 제가 지수인가요.. 머리가 아파요.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나는 이지수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기에 모르다고 해야만 했다. 이지수의 부모는 소리없이 흐느꼈다. 곧 호출을 받고 들어온 담당 의사는 사고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이라고 단정 지었다. 기억력 외에는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나는 곧 퇴원을 했고, 퇴원 후 도착한 대궐 같은 집과 지수가 가진 재력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수가 대단한 집 딸이었구나..'
지수는 해야만 하는 정략결혼으로 인해 부모님과 사이가 멀어졌었고, 어린 나이에 J 패션 제주 지사의 지사장으로 근무 중이었다. 재벌가의 외동딸로 이미 가진 것은 넘치지만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로이 할 수 없었던 지수였다. 결혼도 일도 하기 싫으면 거절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걸 지수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 했다. 그나마 서울에서 내려와 바다가 보이는 제주에서의 삶이 너무 좋다고 했었고, 이곳에서 나를 만나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이곳을 떠나게 될까 두렵다고도 했었다.
***
"언니, 내 목소리 들려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해변가를 따라 속도를 높여 신나게 운전하는 거잖아요. 오늘도 나랑 같이 와줘서 고마워요!.... 언니"
"뭐라고..? 잘 안 들려 지수야!.. 나 이제 뛰어내린다... 나 보일 거야... 자기가 달리고 있는 도로를 넘어 있는 산에 착지할 거야... 올라와서 만나..!! 알았지? 지수야 내 말 들려?"
"언니... 나... 다시 태어나면 서하은 언니의 동생으로 태어날 거야. 그동안 고마웠어요...!"
"... 지수야!! 뭐라는 거야?"
"... 나 이제 그만하려고 언니!"
"..."
그때 나는 지수가 나를 만나러 올라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감지했다. 그리고는 방향을 틀어 그 아이가 있는 도로쪽으로 뛰어내렸다. 지수는 얼마 남지 않은 결혼에 굉장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고, 맞지 않는 회사 경영문제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다.
***
한달이 지났다.
나는 지수의 방으로 들어가 지수의 생각들과 행동에 일치시켜 보려고 하였고, 지수가 무엇을 원할지를 느껴보려고 했다. 무엇 때문에 나는 너의 몸으로 살아남은 것 일까.
지수의 소극적인 성격 탓에 친구도 없었던 지수는 그나마 친했던 나조차도 단 한 번도 집에 초대하지 않았었고, 그 어떠한 집안 문제를 나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단지 다가오는 결혼과 회사일이 힘들다 정도였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 바닷가가 보이는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는 등 친한 언니 동생으로 지냈다. 내가 좋아하는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마다 지수는 나를 지켜보거나 비디오를 찍어 주고는 했다.
"나도 날아오르고 싶다. 언니, 하늘에서 보는 바다는 어때? 이렇게 국수 먹으면서 바라만 보아도 이쁜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더 멋지겠지? 그런데 난 언니처럼 뛰어내릴 자신이 없어." 지수는 자주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같이 하자고 해도 무섭다고 거절했기에 설득을 할 수도 없었다.
오늘 나는 이지수 이름으로 주문해 두었던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가지고, 높지는 않지만 바다가 보이는 서우봉으로 올라갔다.
'지수야... 너도 날아오를 수 있어. '
전보다 더 힘껏 발돋움을 하고 지수가 바다 위로 높이 날아오르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