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이즈미 씨!

by 파란선

이즈미 씨!


나는 아침에 기상하는 시점부터 오전 9시 즉 운동을 가기 전까지는 보통 메시지도 메일도 읽지 않는다. 궁금해하지 않는 내 성격도 있겠지만 오는 메시지도 별로 없거니와 노르웨이에 와서 휴직한 후로는 정기적인 사회적 접촉을 안 하게 된 것도 있다. 지금은 오로지 아이들 학교에서 오는 메일이나 같은 반 엄마들 '왓츠앱 [whats app]' 모임 정도에만 참여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급히 둘째 아이의 담임에게 보낼 메시지가 있어 평소와 다르게 나와 함께 잠든 휴대폰을 켰는데, 링크드 인[Linked In]의 알람이 켜져 있었다.


'카이 이즈미?'


아, '카이!' 그녀의 페이지에는 그녀가 교장으로 지내는 학교의 교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있었고, 해외에 거주 중인 전 직장 동료들에게 관심 있으면 지원하라는 당부와 부탁의 메시지였다.


카이 이즈미는 내가 15년 전 폴란드에 있는 브로쵸와프 [Wrocław]에서 국제 학교 교사를 시작한 첫 학교에서 만난 동료들 중 하나이다. 유럽의 메인 생산 공장이 많이 지어져 있던 동네라 우리나라 기업들과 일본 기업들이 많은 동네였다. 학교에서는 영어에 자유롭지 못한 일본인 부모들을 위하여 일본인 상담교사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카이는 교사 자격증이 있어 상담교사이자 유치반(만 5세반) 교사로 임용이 되어 들어온 동료였다.


이미 폴란드에서 동양인 친구도 없이 3년이나 외롭게 지냈던 나는 그녀의 등장이 꽤나 반가웠다. 알고 보니 그녀는 교포도 아닌 토종 일본인. 일본인들 대부분이 영어를 유창히 쓰지 못하는데 그녀는 생각보다 괜찮은 영국식 발음으로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동양인 가족들처럼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나와 있는 경우였는데, 그전 근무지가 영국의 리버풀이었고 그곳에서 처음 영어를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당당했고, 쾌활했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초등학교 팀에 금방 흡수되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자주 함께 했으며, 금방 친한 동료가 되었다.


외로운 방랑자 교사들이 많은 국제 학교에서 젊은 폴란드인, 미국인, 영국인, 캐나다인, 뉴질랜드인, 호주인 그리고 한국인인 나와 일본인인 '카이 이즈미'가 자주 어울렸다. 우리는 그때 젊디젊은 20대이거나 30대였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 금요일 밤에 모여 즐겁고 달콤한 술 한 잔을 기울였다.


우리가 수없이 모였던 날들 중에 하루 내 짝꿍이 사람들을 초대했다.

'퇴근 후 Friday Jam session 어때?' 나는 '우리 집에서 노래 부르고 놀자.' 대충 그렇게 알아들었다.

맞다. 나는 잼잉 경험이 없었다.

나는 저녁거리와 술안주를 준비하는데, 짝꿍이 내 눈치를 보았다. 내가 무얼 할 건지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난 노래를 할게! 그랬는데 짝꿍이 쌀통을 꺼내 쌀을 플라스틱 병에 담았다.

금방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각자 악기를 들고 왔다. 나는 그러니까 그게 잼잉[Jamming] 인지 몰랐다. 혼자 연주하는 것 외에 함께 연주하는 것! 멋들어지게 뮤지션이 되어 함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중의 하이라이트는 기타를 치던 짝꿍도, 색소폰을 부르던 음악선생님 '라덱 Radek' 도 아니고, 우쿨렐레를 치며 기가 막힌 노래를 뽑으며 사람들과 함께 잼잉하는 '카이 이즈미 Kaai Izumi' 였다. 내가 국제 학교를 근무하는 초기에 제일 어려웠던 것이 나를 표현하며 어울리는 자리들이었는데, 그것은 근무 중일 때 아이들에게 표현할 때도 그렇고 퇴근 후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그러했다. 영어로 수업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날 짝꿍이 채워 놓은 작은 쌀 통을 흔들던 나는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와 악기 비교를 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당당함 없이 그저 그 어울림이 너무도 어색했던 내가 참 초라했다. 나는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를 어릴 때 배웠기에 음악에 문외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앉아서 공부하기, 그리기, 경청하기만 잘 할 줄 알았지, 남들과 어울리고 웃고 떠들고 뽐내기에는 결핍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고, 30대가 지나서야 사람들과 자주 어울려 노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40대인 지금은 헬스장 프로그램 중 댄스, 줌바 클래스도 간다. 가서 격렬하게 흔들고 온다.


그때 그 '카이 이즈미'는 남편의 발령지가 싱가포르로 발령이 났기에 4년을 나와 근무하고 폴란드를 떠났다.

나는 크게 남의 인적 사항을 물어보는 성격이 아니라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오늘 그녀의 링크드 인[Linked In] 프로필을 보아서야 나이도 오늘에서야 짐작할 수 있었고, 지금 그녀가 일본의 기푸 [Gifu]라는 곳에 머물며 국제 학교 교장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그녀의 근무 이력을 보면서 그중 커버 교사를 했던 기록과 교육 업무를 보았다는 짧은 기록을 보았다.

2020년 8월로 휴직 후 근무지 기록이 없는 나의 경력 기록을 보며 우울했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2021년부터 시작한 국제 학교 파트타임 커버 교사, 스튜디오 수업,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타이틀을 현재 근무 중이라 저장시켰다.


내가 나를 고용하면 되지.

오늘 또 한 번 배우네, 이즈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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