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수긍과 꺼지지 않는 불씨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늘 자신의 삶에서 매듭짓지 못한 것들을 다음 세대에 넘겨 그 책임과 의미를 이어나간다. 그것이 유한한 삶을 대하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숭고한 가치 행위이자, 달리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절벽에 다다른 운명적 수긍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절벽에 다다른 기성세대가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 세대에게 문화적, 사회적 자산을 넘겨주는 것은 그리 순탄한 과정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그 작은 불씨들은 수천 년 역사에 걸쳐 면면히 이어져왔으며, 앞선 세대의 소망과 애환이 담긴 그들의 작은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가슴 한편에 살아 숨 쉰다.
이 땅의 오천 년 역사는 자주를 지키기 위한 한 민족의 끈질긴 투쟁의 역사이며, 그 여정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거대한 제국들의 파고가 거칠게 몰아치던 시절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이 땅의 자주적 뿌리를 사수했다. 일제강점기엔 비록 운명적인 자주 선택권과 인권을 박탈당한 채 유린당했으나, 그 암흑 속에서도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국민들은 불꽃을 지키려는 굳센 의지와 절규 어린 울부짖음을 생생히 남겼다.
1948년 이후, 수차례의 독재정권 하에 민주주의의 혹독한 성장통을 겪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세대를 거쳐 그 숭고한 정신을 끈질기게 이어 나갔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손에 들려 있던 작은 촛불들은, 역사의 정신이 결코 멈추지 않음을 온 세상에 외치는 증거였다. 우리의 작은 촛불들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불의를 응징하고, 촛불 혁명이라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음을 분명히 선언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의 잔혹함을 직접 겪지 못했던 지금의 젊은 이들의 가슴속엔 무엇이 있기에 그들을 다시 광장으로 나아가게 했으며, 불꽃 투쟁의 역사를 이어나가게 만들었을까. 이것이 韓민족의 거대한 불꽃 이야기의 서사이며, 세대와 시대를 관통하며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어둠의 시대에 대항하는 우리의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될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나를 지적 탐구의 세상으로 인도한 한 교수님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삶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던 때였다. 과연 학문에 대한 열정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학생들이 있었고, 그들의 물음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
교수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내 삶의 내면이 바뀌었는데 외부의 삶이 바뀌지 않을 리 없고, 내 안의 가슴이 뜨거운데 내 삶의 온도가 어찌 변하지 않으랴."
이 말을 들은 내 가슴이 어찌 뛰지 않을 리 있으며, 그 말을 듣기 전의 삶과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 삶과 역사에 대한 불꽃의 긍지를 스스로 저버리지 않는 한, 우리의 유한한 불꽃은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어 영원토록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