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나태와 자기파괴의 시대
양시론: 맞서서 내세우는 두 말이 모두 옳다는 주장이나 이론
양비론: 맞서서 내세우는 두 말이 모두 틀렸다는 주장이나 이론
세종의 측근이자 조선의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황희 정승은 “네 말이 옳고, 네 말도 옳다”는 말로 포용과 인자함의 상징처럼 회자된다. 그러나 이 일화를 단순히 인간적 미덕의 예로만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솔직히 말해보자. 황희처럼 사대부 중에서도 최고위직에 올랐던 인물이, 당시 사회에서 가장 하층에 속했던 종들의 사소한 말다툼에 진지하게 개입할 이유가 있었을까? 조선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고, 유교적 이상과 덕목을 중시했다 한들, 사대부 역시 이 계급질서를 수호하고 정당화했던 체제의 수호자였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황희가 계급을 초월한 시선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고 진심으로 중재했을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다.
현대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산, 직업, 학벌이 사실상의 계급처럼 작동하는 지금, 가장 부유하고 권위 있는 이들이 빈민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갈등에 관심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수의 고위 권력자나 엘리트들이 하층의 논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황희의 사례는 판단회피와 지적나태의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양비론의 폐해
양시론이 판단회피와 지적나태의 일종이라면, 양비론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양비론은 모든 입장을 부정하는 무차별적 냉소를 통해 판단 능력 자체를 마비시키며, 결과적으로 사회의 판단 구조를 붕괴시킨다.
한국 사회에서 양비론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언론의 자유와 동반된 권력화 과정과 관련이 깊다. 언론은 한때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는 사명 아래 사회의 등불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후 언론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확대되었고 그 속에서 정당한 감시 기능을 넘어선 비판 중독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권력을 견제한다는 명분 아래, 어떤 정책이나 현상도 ‘양쪽 모두 틀렸다’는 식의 냉소적 프레임으로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견제받지 않는 제3의 권력으로 떠올랐고, 지식의 중개자가 아니라 지적 혼란을 조장하는 존재로 변모해갔다. 한국 언론은 사건을 다각도로 비판하는 능력은 갖췄지만, 그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한지,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중심 없이 모든 것을 비판하는 태도는 결국 대중의 판단력을 파괴하는 데 일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언론의 양비론이 단지 담론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인식 속으로 침투했다는 점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기준이 흐려지고, ‘모두 틀렸다’는 인식이 일종의 안전지대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은 특히 윤석열 정권의 ‘내란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적 행보를 두고 일부 지지자들은 “잘못이지만 민주당의 탄핵 시도가 더 큰 문제”라며 상대적 비교에 몰두했다. 이 글은 이번 내란사태와 민주당의 탄핵행위에 대해 누가 더 정당한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이제 상식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선택조차도 포용하려는 변질된 너그러움, 즉 광기의 수용력을 사회가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참혹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비론은 단지 정치적 쟁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을사오적 이완용조차 ‘선택의 문제’로 이해하려는 일부 흐름은, 역사적 반역행위조차 상대화하는 무책임한 태도의 단면이다. 동시에 그들은 김구와 같은 인물을 폄하한다. 이런 이중적 수용 태도는 포용이 아니라 편향된 자기 확신의 또 다른 형태이며, 결국 지적 파산을 초래한다.
우리는 이미 양비론의 파도 속에 있다. 객관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점점 줄어들고, 비난과 냉소가 일상 언어로 자리잡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 틀렸다’는 마취제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옳은가’를 따지고 밝히는 지적 용기와 균형 있는 판단력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고 진실을 분별하는 능력은 이제 단지 지식인의 책무가 아니다. 국가 교육의 과제이며, 언론의 도덕적 의무이다. 언론은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 정론직필의 사명을 회복해야 하며, 교육은 가치 판단과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의 감각조차 상실한 사회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