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카페 사장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선택지 안에 없었던 소상공인으로 살고 있지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고요.
한 때 꼬마빌딩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에 편승해 꼬마빌딩을 짓기 시작하여, 카페를 운영하는 일상을 공유하려 합니다.
어쩌면 인류의 진보도, 예술의 창조도,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결국 어떤 ‘덕후’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자신의 세계에 빠져 보통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 빈세트 반 고흐의 별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밝혔고, 청력을 잃고도 음악을 잃지 않겠다는 베토벤의 집념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덕후는 단지 자기만의 세계에 미친 이들이 아니라, 자기의 언어로 세상과의 연결을 시도한 사람들이다. 고흐도 덕질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그 세계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모두가 고흐나 베토베이 될 필요는 없다. 어떤 이는 아이돌의 콘서트에서, 어떤 이는 작은 피규어를 모으면서, 또 누군가는 커피향을 맡으며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으니 덕질이 거대한 혁명이나 고뇌하는 새벽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 필수적인 요소는 있다.
한 번 빠지면 끝을 봐야 한다는 집념,
남들이 모르는 차이를 알아보는 안목,
그리고 그 재미에 빠져 밤도 샐 수 있는 열정.
그럼 커피에 빠진 공돌이는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을까?
그의 전공은 기계공학이었다. 기계라는 것이 워낙 광범위하니 제대 후 더 절실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나섰다.
자동차!
무엇보다 좋은 차에 대한 로망이 있어 자동차에 대해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뚜껑 열고 달리고픈 허세로부터 시작된 덕질이었지만 정비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자동차와 관련된 자격증을 모아가며 처음으로 배움에 재미를 붙였다. 자동차의 원리에 대해 알게 되니 이것도 몇 개의 부속을 레고처럼 조립하여 만들어내는 장난감처럼 여겨졌고, 레고에 푹 빠진 어린아이처럼 그 재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요타, 닛산, 혼다 같은 굵직한 기업들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선두였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이 부흥하여 일자리가 넘쳐났고, 더 넓은 무대에 자신을 던져보고 싶었다. 영어보단 일본어가 쉬울 거라는 생각도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않은 남자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두려운 마음을 안고 일본행 티켓을 끊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직장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낯선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지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에서 전철로 몇 구간 떨어진 외곽에 집을 구하고 집과 회사를 오가는 생활에 익숙해질 때 쯤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지하철 역에는 어김없이 도토루카페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카페 문화가 활발하지 않던 2000년 초반이라 한 집 건너 한 집이 카페였던 풍경이 낯설었다.
'무슨 카페가 이렇게 많아?'
처음엔 그냥 지나쳤지만 한 번 눈에 들어오니 자꾸 시선이 갔다. 마음의 여유 없이 시간에 쫒기며 출근하는 자기와 달리 여유롭게 아침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저 사람들은 아침부터 뭘 하고 있을까?
창문 안을 들여다 봤다. 대부분이 혼자였고,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낯선 풍경이었다. 하루는 일찍 출근 준비를 마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출근 전 편의점에 들러 마시던 우롱차 대신 평소 즐기기 않던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썼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일본어 회화 책을 펼쳤다.
’좀 멋진데‘
왠지 그런 자기 모습이 괘 괜찮아보여 출근 전 카페에 들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커피보다 ‘이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도취되었다.
더이상 아메리카노가 쓰지 않았다.
커피중독이 먼저인지 자아도취가 먼저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끝나지 않는 논쟁거리다. 무엇이 먼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커피와 그 공간이 주는 기운, 추억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그곳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다는 것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권태와 외로움이 더 큰 이유였다. 돌아오니 주변에서는 결혼을 서둘렀고 자신의 의지보다는 상황에 휩쓸려 가정을 꾸렸다. 그의 나이 30살이었다.
다음해 첫 아이가 태어나고, 두 살 터울의 둘째, 둘째와는 세 살 터울의 셋 째까지 자기 혼자만 먹고살면 됐던 청춘은 불과 5년 만에 다섯식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의 무게를 짊어졌다. 맡벌이 부부가 어린 세 아이를 양육하다보니 감정의 온도가 쉽게 끓어올랐다. 사소한 말다툼이 잦아지면 혼자 있을 공간을 찾게 되고, 떠나온 일본에 향수가 생겼다. 지금이야 발이 채일정도로 카페가 흔하다지만 15년 전은 그렇지 않았다. 출퇴근 길에 눈여겨 보았던 새로 오픈한 카페에 갔다.
‘오늘은 에스프레소 콘파냐다.’
한 모금 머금으면 진하고 쓴맛이 혀를 덮지만, 부드럽고 달콤한 휘핑크림이 천천히 쓴맛을 감싸 안는다. 두 모금 홀짝거리니 잔이 바닥을 드러내고 혼자서는 딱히 할 것이 없다. 그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인생이 쓰디쓰다지만 순간 순간 만나는 달콤함이 있으니 견디어지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작은 에소잔에 인생이 담긴 듯 한다.
주말에 가족을 데리고 카페에 갔다. 푹신한 소파에 앉은 아내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잠시 책을 보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꽤 멋진 남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흡족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아내와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 모두 잠깐의 행복을 맛봤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데, 그는 3,000원으로 행복을 얻었다.
남편이 일찍 출근하고 나면 세 아이 등원 준비는 오롯이 아내의 몫이다. 그녀도 출근 준비를 해야하니 매일 아침이 전쟁통인데 자기 몸만 쏙 빠져나간 남편을 생각하니 분노가 차오른다. 아침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출근을 하면 집에 돌아가 해야할 일들로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래서 남편의 사소한 말들이 가시처럼 박혔고, 불만이 하나 둘 쌓여갔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라도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남편을 채근했다. 놀이공원, 키즈카페, 어린이 대공원.. 인증사진이라도 남기자는 생각으로 영혼없이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남편이 커피 한잔 마시러 가자고 먼저 서두른다. 집 근처 신상 카페는 깨끗했고 소파는 편했다. 돌아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을 눈치챘는지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일주일을 바쁘고, 정신없고, 치열하게 살아낸 그녀에게 남편은 잠시의 여백을 선물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기억은 아내의 힘든 한 주를 보상해주고, 피로를 걷어내기에 충분했다. 잠시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들어온 아이들의 표정이 밝았다.
주말이면 특별한 곳에 가서 다른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엄마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그곳이 어디든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원하는 것이었다.
다시 돌아온 주말 또 카페를 찾았다. 그 후로 카페투어는 부부의 취미가 되었다. 처음에는 쉼이 좋았고, 다음엔 공간이 보였고, 커피맛이 알게 된 것은 가장 나중이었다. 커피 값은 맛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 무엇을 더 선물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의 세상은 기계를 다루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차가운 세상이었지만 커피를 만나 적당한 온기를 품게 되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변수를 두려워하기보다 즐기게 되었고, 그 안에서 삶의 미세한 온도차를 느낄 수 있었다. 커피는 끊임없이 작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향과 맛, 그리고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세상과의 소통은 완벽한 공식이 아니라, 서로의 온도를 맞춰가는 느린 추출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카페를 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
꿈은 누구나 얼마든지 꿀 수 있다.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그래서 더욱 달콤하게 느껴지는 허무한 기대라 할지라도 마음에 품는 것을 자유다. 문제는 그 허무한 꿈이 현실을 삼킬 때디. 안 될 것을 되게 하려는 의지가 때론 주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아내는 남편의 꿈을 도저히 응원해 줄 수가 없었다. 응원 받지 못한 꿈을 고이고이 접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불쏘시개가 되어 꿈이 활활 타올랐다. 그 불은 몇 년 간 꺼지지 않았다. 아내가 백기를 들 때까지.
'덕업일치’
좋아하는 것이 업이 된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